죽음은 삶의 끝일까?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일까? 인간이 사유를 시작한 이래로 죽음과 삶에 관한 의문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죽음에 관한 사유는 그 자체가 철학적이기도 하고 또 종교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 고등학생이 다루기에 조금 무거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논술 문제로 계속 출제돼 온 것도 이 같은 주제의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2011년 연세대 수시 기출 죽음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식
2008년 서울대 모의 문제 절명시(絶命詩)를 통해 본 삶과 죽음의 관계
2007년 서강대 정시 기출 삶과 죽음에 관한 한국인의 인식적 특성


▧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

공포와 두려움은 죽음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리스 고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만물의 근원을 원자(atom)로 본 원자설(原子說)의 창시자이다. 물질의 본질을 ‘원자와 그 운동’으로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려 한 만큼, 원자의 운동이 소멸하는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었다. 따라서 사후세계를 상정하지 않았고 죽음은 부패와 악취를 가져오는 물질의 변형일 뿐이었다. 2011년 연세대 기출 제시문을 통해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을 살펴보자.

사람들이 부패를 피하는 것은 부패하는 것들의 악취와 추악한 모습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건강과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들이라도 죽으면 그런 상태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 [중략] …… 밀론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있었다 해도 죽으면 얼마 안 가서 해골이 되고 결국에는 최초의 자연으로 해체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체를 묘지로 보내는 것이다. 건강하지 않은 안색이나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이는 마찬가지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들어갈 곳이 장차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한 호사스러운 묘가 아니라 간소해서 볼품없는 묘라는 것을 예측하고 비탄에 빠지는 것은 지극히 우매한 일이다. [중략]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생각 자체를 기피하는 것은 삶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이 애착은 삶의 즐거움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죽음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일 때, 죽음은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유언을 써놓는 것조차도 두려워하며 죽음에 사로잡히게 되고,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곱빼기 식사를 꾸역꾸역 집어넣을 수밖에 없게 된다.”

▧ 죽음은 또 다른 시작, 영혼의 자유

데모크리토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옛 풍습을 거역하도록 사주한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후, 제자들이 탈주를 돕고자 했지만 그는 죽음을 선택한다. 죽음이 그에게는 육체에 갇힌 영혼을 해방시킬 수 있는 해탈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플라톤의 ‘파이돈’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의 대화이다.

“정화란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시 말하면 육체의 쇠사슬로부터 영혼이 해탈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그렇습니다.”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고 해방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요.”

“늘 육체와 싸우고, 영혼과 더불어 순수하게 되기를 원했다면 말일세. 그런 곳으로 떠나려 할 즈음에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떨고 싫어하는 것처럼 모순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큰 환희 속에 저승으로 떠날 것이 아니겠는가?”

“확실히 그렇습니다.”

“사리가 이렇다고 하면,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당치 않은 소리일 거야. 나는 독약을 좀 늦게 마신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이미 죽을 목숨을 좀 연장시키고 거기 매달린다는 것은 내 자신이 보기에도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네. 그러니 내가 말하는 대로 해 주게.”


▧ 제사는 슬픔이 아닌 축제

죽음을 자유와 해방이라고 보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동양의 제사풍습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죽음은 생의 끝이 아니며, 죽은 자는 영혼의 연속성을 통해 산 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죽은 자를 매장하는 것은 그를 영원히 곁에 두고 그리워하고 존경하기 위함인 것이다. 사자(死者)에 대한 경외와 존경은 제사라는 형식을 통해 그 절정에 달한다. 2007년 서강대 기출 제시문을 통해 살펴보자. 이청준의 ‘축제’의 일부이다.

“할머님을 모시는 일은 어제 원일이 너한테 여러 번 말한 그대로다. 형식보다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모시려는 것이다. 이런 일에는 흔히 뒷말이 따르게 마련이니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편안하시고 욕스럽지 않게 해드리려면, 그 할머님께 대한 우리들의 마음과 정성이 특별히 따뜻하고 정성스러워야 한다. 원일이나 청일이나 늘 그런 마음가짐으로 할머님 곁을 잘 지키거라.” [중략] 우리 전통의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보듯이 우리 조상들이 신으로 숭앙받고 대접을 받는다. 우리 조상들은 죽어서 가족신이 되는 것이다. 그처럼 유교에서 말하는 효라는 것은 조상이 살아 있을 때는 생활의 계율을 이루고, 조상이 죽어서는 종교적 차원의 의식 규범을 이룬다. 제사라는 것은 그러니까 죽어 신이 되어 간 조상들에 대한 종교적 효의 형식인 셈이고, 장례식은 그 현세적 공경의 대상이었던 조상을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유교적 방식의 이전(移轉) 의식, 즉 등신(登神) 의식인 셈이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뜻깊고 엄숙한 일이냐.

▧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2011년 연세대에서 기출된 죽음과 관련한 다음 실험을 통해 살펴보자.

[실험1]에서는 50명의 피험자를 무작위로 집단 ‘갑’과 집단 ‘을’로 나누고. ‘갑’에 배정된 피험자에게는 ‘배설물’에 대한 동의어를 세 개 쓰도록 했다. 반면 ‘을’에 배정된 피험자에게는 배설물이나 죽음과 전혀 상관없는 것을 떠올리도록 했다. 잠시 후 두 집단의 피험자 모두에게 미완성된 12개의 단어를 동일하게 주고 완성하도록 했다. 그 12개에는 죽음과 연관시켜 완성할 수 있는 단어가 6개 포함돼 있었다. 예를 들면 ‘시○’는 ‘시체’로, ‘○례’는 ‘장례’로 완성할 수 있다. 이러한 12개 중 몇 개가 죽음과 연관된 단어로 완성됐는지를 세었다. [실험2]도 이와 유사한 실험이다. 집단 ‘갑’은 방금 ‘화장실’에서 나온 학생이고, 집단 ‘을’은 ‘화장실’과 멀리 떨어진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이다. 두 집단 모두에게 미완성된 5개의 단어를 동일하게 주고 완성하도록 했다. 이 5개 중 2개는 죽음과 연관시켜 완성할 수 있는 단어였다.

[아는 만큼 쓰는 논술] (21) 죽음과 삶
실험결과는 배설과 관련된 상황에 노출될수록 죽음에 대한 사유와는 멀어지는 특징을 보여준다. [실험1]에서는 실험대상자가 ‘배설물’이라는 표현에 노출됐을 때 죽음과 관련된 단어를 잘 연상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실험2]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화장실’에서 방금 나온 학생들이 죽음과 관련된 단어를 완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연상 작용은 ‘배설물’이라는 표현에 간접적으로 노출됐을 때보다, 배설과 관련된 보다 직접적인 상황(화장실 앞)에 직면했을 때 훨씬 더 감소했다. [실험1]에서 죽음과 연관시켜 완성한 단어 수가 표본집단의 35%인 데 반해, [실험2]에서는 29%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배설과 관련된 상황에서 죽음을 연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죽음은 인간의 동물적 본능인 배설과는 반대방향에 있는 신성하고 초월적인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즉, 배설이 형이하학적인 것이라면 죽음은 형이상학적인 관념이다. 따라서 피험자들은 배설과 같은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상황에 놓일수록 죽음과 같은 철학적 사고와는 멀어지게 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죽음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징으로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죽은 자를 매장하고 장례를 치르는 의식을 거쳐 사자를 애도하고 추모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음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문명이 발전해 왔다. 서양의 피라미드나 미라는 죽은 자에 대한 신성화과정을 잘 보여준다. 동양의 제사풍습도 죽은 자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이렇듯 인간은 죽음을 통해 악취와 부패를 떠올리기보다는, 고인을 추모하고 삶 그 이상의 피안을 생각하며 숙연해진다. 그리고 이것은 동물과는 구별되는 인간만의 사유방식이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