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서열화· 교육 양극화 막을 수 있어"

"학생·학부모의 교육선택권 부정하는 것"

[시사이슈 찬반토론] 자사고 선발권 폐지는 옳을까요
교육부가 2015학년도 고교 입시부터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지원 시 성적 제한을 없애겠다고 밝힌 데 대해 찬반 논란이 치열하다. 교육부는 지난달 13일 일반고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현 중2가 고교에 입학하는 2015년부터 서울 등 39개 평준화지역 자사고는 성적 제한 없이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학생을 뽑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자사고의 학생 선발권을 사실상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현재는 중학교 내신 상위 50% 이내에 드는 학생만 자사고에 지원할 수 있다.서남수 장관은 “어떤 식으로든 학생을 선발하게 되면 성적 서열화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생긴 지 4년밖에 안 된 자사고를 이처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게 옳으냐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일반고등학교 교육 부실의 책임이 마치 자사고에 있는 것처럼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자사고의 선발권 폐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찬성론자들은 자사고 도입 후 불거진 학교 서열화와 일반고 황폐화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반기고 있다. 추첨으로 학생 선발을 하더라도 자사고가 얼마든지 학교 이념에 맞게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면 큰 무리가 없을 거라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사고 선발권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다른 일반고 지원대책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며 “지금은 반발하는 목소리가 주로 나오고 있지만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찬성 측 목소리가 더 힘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반고의 상당수는 자사고가 무력화돼 숨통이 트였다는 입장이다. 일반고 내에서 특목고나 자사고 수준의 수월성 교육을 하는 것이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시내 한 공립고등학교 교장은 “교사들이 이제 한번 해볼 만하다는 이야기를 한다”며 “애초 출발점이 다른데 특목고나 자사고와 비교되면서 교사들 사기가 많이 꺾였는데 희망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성병창 부산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고교 다양화 정책에 따라 특목고 및 자사고가 늘어나면서 교육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해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은 문제”라며 찬성의 뜻을 밝혔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 역시 “특성화고 정책 시행 결과 학생의 학교 선택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지 않았고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교육기회 차별화만 강화됐으며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는 입시 명문고로의 지향만을 강화시켜 왔다”고 지적했다.


반대


당연히 가장 반발하는 것은 자사고들이다. 자사고교장협의회장인 김병민 중동고 교장은 “자사고는 잘하는 학생을 뽑아 더욱 우수한 인재로 키워내는 수월성 교육에서 출발하는데 성적 제한을 없애면 일반고와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입시에 고교 교육과정이 종속된 현 체제에서 지금보다 자율권을 확대한다고 해도 일선 학교가 특별히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자사고 등록금이 일반고의 세 배에 달하는데 우수한 학생을 받을 수 없다면 지원자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자사고가 생긴 지 4년밖에 안 됐는데 정책이 또 바뀌면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에게 혼란이 온다”고 비판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부의 이번 조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교육 선택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는 “자사고의 학생 선발권이 반드시 성적 우수자들에게 국한돼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현재와 같이 교육부가 선발권 자체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은 일종의 전횡”이라고 꼬집었다.

김복규 군산 중앙고 교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사고 지정 당시 고시된 내용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 학부모는 “자사고는 비교적 우수한 학생들이 오는 만큼 학습 분위기가 좋다는 게 큰 장점인데 일반고를 키우려고 자사고를 죽이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는 견해를 보였다.


생각하기


[시사이슈 찬반토론] 자사고 선발권 폐지는 옳을까요
교육정책에서 수월성이 우선돼야 하는지, 학교 서열화 금지가 더 중요한지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양쪽 모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두 가지를 어느 선에서 조화시키느냐의 문제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어떤 쪽에 기울더라도 상대방 쪽에서는 그 단점을 더욱 부각시키며 반대해왔던 게 지금까지의 과정이었다. 그래서 사실 자사고처럼 특성화 학교를 많이 세워야 하는지, 고교를 그냥 단순하게 일반고 체제로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해선 현 단계에서 뾰족한 해답을 찾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어느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세우든, 그것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대입, 고입 할 것 없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끊임없는 실험만 거의 매년 되풀이하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면 입시제도가 바뀌고 교육부 장관이 바뀌어도 정책이 달라진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안 바뀔 때조차 수도 없이 거의 매년 달라지는 게 바로 교육정책이다. 1969년 예비고사가 도입된 후 대입 제도의 평균 수명은 1.2년에 불과하다. 1969년 예비고사를 치른 이후 2014년 입시까지 46년간 38회나 제도가 바뀐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대입 내지 고입제도의 잦은 변경은 수험생과 학부모를 혼란에 빠뜨리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만 부추긴다. 사교육 비용이 높아져 입시학원과 컨설팅사의 배만 불려주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교육정책의 내용보다는 지속성이다. 한번 정한 정책은 최소 10년은 지속하는 정도의 안정성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손바닥 뒤집기식으로 교육제도를 바꾸느니 아예 바꾸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