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19> 주식은 원래 투자 수단 아닌 위험 회피 수단
누군가로부터 주식투자를 한다든가 주식 투자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그 사람을 위험을 선호하면서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치부할 것이다. 이런 반응은 최근 우리가 주식투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쉽게 확인시켜 준다. 즉 주식은 투자한 원금 자체를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만약 이익을 얻게 되면 통상적인 수준 이상의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방편이다. 하지만 원래 주식은 이처럼 투기 내지 투자의 수단으로 부각되면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안되었다.

지금도 국제 거래를 수행할 때는 국내 거래를 수행할 때보다 훨씬 큰 위험을 수반해야 한다. 늘 알고 지냈던 사람과 거래를 할 때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거래를 하는 것이 더 위험하듯이, 언어도 다르고 거래 방식도 사뭇 다른 외국인과 거래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해당 외국인이 누구인지. 그가 그간 어떠한 방식으로 거래해 왔는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거래 상대방이 가져온다는 물건은 제때 적합한 형태로 전달될 수 있는지 여부 등이 모두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국제 거래에 참여한 초창기 상인들은 이러한 거래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거래 상대방과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상대방을 탐색할 시간을 갖고자 숙식을 함께 하며 거래에 필요한 제반 정보를 취득하고는 했다. 대표적으로 상인들이 함께 숙식을 하며 서로간의 신뢰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거래를 도모한 곳은 13~14세기경 플랑드르 지방의 브뤼헤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오늘날 엑스포와 박람회의 기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부분적으로 위험 부담을 낮출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 숙식을 통해서 신뢰를 형성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불편과 그 과정에서 형성된 신뢰라는 것이 가지는 한계 또한 컸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인들은 위험을 회피하는 또 다른 수단으로 재산을 문서화해 거래하는 방식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장거리 운송 위험의 분산

재산적 가치가 있는 내용을 증권화해 위험을 회피하고자 한 첫 시도는 바로 장거리 운송이었다. 지중해를 넘어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지로부터 필요한 물품을 수입해 오는 과정은 중간에 해당 물건이 유실될 가능성이 높다. 해적이나 산적 등에게 필요한 물건을 빼앗길 수도 있으며, 운송 과정에서 물건이 파손되거나 손상될 여지도 크다. 300명의 선원을 싣고 네덜란드를 떠나 아시아로 출발한 배가 아시아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해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왔을 때 선원이 고작 80명 내외인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이러한 장거리 운송의 위험을 특정 개인이 모두 부담할 경우 치명적인 손실을 고스란히 혼자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비슷한 거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공동으로 배를 소유하고 이를 통해 거래를 수행할 경우 이러한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본인들이 출자한 금액과 그로 인한 권리를 증명할 방편이 필요했고 이로 인해 등장한 것이 바로 증권이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거래를 수행하면 위험을 분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래가 무사히 성사되었을 경우 높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또 거래가 최종적으로 성사되기 전에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은 얼마든지 중간에 자신의 권리와 재산적 가치를 표현한 증서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었다.

16세기 증권거래소 등장

국제 간의 거래를 증권화해 거래를 수행할 때 커다란 편리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인들은 이를 보다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먼저 상시 증권을 거래할 수 있는 별도의 장터를 형성했다. 16세기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은 그런 점에서 초창기 증권거래소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상인들이 자신의 물건을 직접 들고 와서 거래를 하는 곳이 아니라 특정 물건의 권리를 표현하는 일련의 증서들을 가져와 거래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증서를 거래하는 장터가 형성된 이후 증권 거래는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비슷한 형태의 상거래를 빈번히 하는 상인들 간에 새로운 움직임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문서 내지 어음을 거래하는 상인들 중에는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향신료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상인들, 아프리카 지역에서 원료를 수입하는 상인들 등 비슷한 품목을 비슷한 곳과 거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비슷한 거래를 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투자하고 함께 운송하여 이익을 나누어 갖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게 된다. 굳이 비슷한 거래를 지속할 사람들이 한 차례 거래를 하고 다시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번거로움과 위험 부담을 지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그 유명한 동인도회사다. 동인도회사는 네덜란드와 인도 간의 교역을 수행하는 상인들이 모여 함께 투자하고 자신이 투자하여 설립한 회사다. 이들은 자신들의 투자 내용을 문서로 표시하여 자신이 이 회사에 얼마만큼의 권리를 갖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이는 오늘날 주식에 해당한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을 관리하고 이를 거래할 수 있는 별도의 회사도 설립하는데, 암스테르담에 설립된 이 회사는 오늘날로 치면 초창기 증권회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설립 운영되고 있는 동인도회사는 곧이어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인도까지 항해하여 교역할 수 있는 독점권마저 넘겨받게 된다. 이 과정 역시 네덜란드 정부가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투영된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해외 식민지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위험 부담을 고스란히 자신들이 부담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정부 역시 원거리에 놓여 있는 식민지를 운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널뛰기 반복하던 초창기 주가

이처럼 초창기 주식은 상인들은 원거리 무역의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정부는 식민지 통치의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주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동성을 보인 시기였다. 원거리 무역을 떠나는 특정 선박에 투자한 증서의 경우 해당 선박이 중간에 해적을 만났다든가, 태풍으로 인해 물건이 많이 유실되었다는 등의 소식이 전해지면 곧바로 가치가 폭락하곤 하였다. 반대로 동인도회사의 성과가 한창 좋을 때는 해당 주식이 몇 배씩 올라가기도 했다. 주식 가격이 급변하게 되면서 투기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주식에 잘만 투자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투기 분위기는 당시 주가의 변동폭을 더욱 높이는 원인이 되었다.

주식을 기반으로 한 투기 분위기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역사상 가장 큰 금융투기 사건 중 하나였던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했다. 16세기 터키로부터 들여와 처음 유럽에 소개된 튤립은 그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삽시간에 유럽 각 지역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당시 투기 분위기가 만연한 유럽에서는 전혀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꽃 종자에까지 이르게 된다. 특히 튤립은 아직 금융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그 시절, 주식과는 달리 실물을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기존에 주식 투자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마저도 튤립에 대한 투자는 적극적이었다. 튤립 투기는 당시 3년 가까이 전개되다, 결국 튤립 꽃의 실제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부터 폭락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마무리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높은 수익을 기대하며 주식 투자에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에서 살펴봤듯이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19> 주식은 원래 투자 수단 아닌 위험 회피 수단
원래 주식은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편 속에서 발전하고 성장해 왔다. 때로는 주식이 위험을 줄이는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