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국애족의 프레임
많은 학생들은 민족은 확고부동한 것이고, 특히 우리 한민족은 단일민족으로서 순수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또한 민족의 개념은 국가의 개념 위에 있는 숭고한 것이라고 (특히 우리 한민족은) 생각한다. 이런 고정관념(프레임)은 어려서부터 가족, 동네, 학교, 청소년, 지역사회, 국가로 퍼져나가는 동심원적 집단소속감을 심어주고, 그에 대한 애정을 강요했던 교육의 영향 때문에 더욱 강화된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는 학생들은 아래와 같은 문제들을 적절하게 풀어낼 수 없다. (출제자들은 종종 학생들의 고정관념을 건드리는 문제를 낸다)
2010 경북대 수시2-2 - 세계시민주의와 애국주의
2008 연세대 정시 -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는 민족 혹은 민족 정체성 개념
2007 동국대 수시 2 - 민족의 개념
▧ 민족의 개념
일반적으로 민족이란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언어·풍습·종교·정치·경제 등 각종 문화내용을 공유하고 집단귀속감정에 따라 결합된 인간집단의 단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개념은 설명과는 달리 명쾌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데 내 민족이냐 다른 민족이냐의 구분이 외부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있어서도 명확하지 않은 이유는 민족이 공유하는 것이 혈통이 아니라 문화이기 때문이다.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언어다. 우리는 보통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의 집단을 한민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어라는 범주는 의외로 꽤 자의적이라서 한국어 안에는 각종 지역 방언들이 섞여 있고, 교통과 통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그 이질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유독 그 이질감이 오늘날에도 부각되는 방언이 바로 제주도 방언인데, 예를 들어 괸당(→친척), 비바리(→처녀), 소나리(→남자), 지슬(→감자)과 같은 제주 방언의 어휘들은 표준 한국어와 음운상의 차이가 심하게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학자에 따라서는 제주 방언을 한국어의 방언이 아닌 독립된 언어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따른다면 역사적으로 제주도민은 한민족의 문화를 공유하지 않은 다른 민족으로 분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의 모든 도서지역 주민들을 모두 당연하게 우리 민족으로 인식한다. 왜 그럴까.
다른 예를 들어보자. 스칸디나비아의 3개국(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의 언어는 현재 제각각 다르게 발전해 각각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스웨덴어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이 언어들의 음운상 차이는 표준한국어와 제주도 방언 사이의 차이보다 작은 정도라서 한 나라의 말을 알면 다른 나라의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정도로 가깝다. 왜냐하면 이 세 나라 사람들은 중세 시절엔 북부 유럽에서 국경이 명확하지 않은 채 노르드어(Old Norse)라는 같은 말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와 제주도의 언어 차이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언어 차이보다 크다. 그런데도 전자는 하나의 민족이고 후자는 다른 민족이다. 그 이유는 정치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했느냐의 여부가 언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민족이냐를 가르는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제주도와의 언어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줄곧 하나의 정치 공동체를 이뤄왔기 때문에 한 민족으로 분류되는 것이고,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언어상의 차이가 작은데도 각기 다른 정치 공동체를 이뤘기 때문에 다른 민족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렇듯 민족을 나누는 개념상의 기준은 ‘문화’지만, 현실상의 기준은 ‘국가’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애매하고 정치적인 민족 개념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민족이란 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 공동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 민족을 구분하는 시선
민족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지배적이면서도 명확한 기준은 없다. 시각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내려질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구분된 민족 사이의 경계를 합리화하기 위해 기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민족을 근원적인 성격을 가진 집단으로 본다. 이것은 혈통과 혈통이 전해주는 형질에 의해 민족은 전해진다고 보는 견해로서 근원주의라 한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민족이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인식, 태도, 감정의 결과물이라 본다. 어떤 집단의 정체성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민족의 범위는 유동적이고 그 집단의 이해관계와 정치 사회적 목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다. 이런 시각을 상황주의라고 한다. 또 다른 주장에 의하면 민족이란 공동 선조를 기원으로 하는 혈통집단도 아니고, 그 시대의 정치 상황에 따라 범위가 결정되는 강한 유동성을 가진 집단도 아닌, 종교 관습 언어 등의 문화 내용을 공유하는 문화적 집단으로 이해하는데, 이를 역사문화주의라 한다.
위의 견해들을 그 불변성의 강도에 따라 나열하면 ‘근원주의 > 역사문화주의 > 상황주의’가 되는데 다른 분류도 가능하다. 민족은 고정돼 있다고 하는 영속주의와 민족은 변한다고 보는 현대주의가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역사문화주의와 상황주의는 현대주의에 해당되겠다.
어떤 견해도 민족의 개념을 완벽하게 포섭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어느 견해에 의하더라도 민족을 설명할 수는 있다. 이 견해들은 각각 자신의 근거를 갖고 있으며 그 안에서의 이론적 틀과 현실적 적용 사례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가장 널리 통용되고 있는 기준은 역사문화주의다.
▧ 이론을 사례에 적용하기
가 (중략)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어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안에서나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위에 나는 것이다. 세계 인류가 네오 내오 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인 희망이요, 이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멀고 먼 장래에 바랄 것이요 현실의 일은 아니다. 사해동포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향상하고 전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마땅히 할 일이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일이니,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동국대 2007년 수시2> 기출문제의 제시문이다. 이것은 누구의 글일까? 백범 김구의 글이다. 어떤 입장일까? 근원주의 내지는 영속주의라고 생각했다면 정답이다. 너무 쉽다고? 다음 글을 보자.
나 (중략)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버리고 삼천리 금수강산을 남의주권 아래에 두며 민족을 다 노예로 만들어 놓자는 것이 그 분자(分子)들의 목적이요, 살인과 방화를 일삼아서 참으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말하기를 미국 백성으로 공산당 된 사람은 미국 백성이 아니요, 영국 백성으로 공산당 된 사람은 영국 백성이 아니요, 중국 사람으로 공산당 된 사람은 중국 사람이 아니며, 한인(韓人)으로 공산당 된 사람은 한인의 대접을 받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공산주의 선동에 빠져 나라를 팔고 민족을 남의 노예로 만들려고 활동하는 분자들은 …… 동족(同族)이라고 할 수 없고 또 인류라고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므로……[하략]……
공산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노예 되기를 감수하던지 우리의 자유와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변치 않고 싸우던지 하나를 택해야 될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연세대 2008 정시> 기출문제의 제시문이다. 이것은 누구의 글일까?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연설이다. 어떤 입장일까? 상황주의에 해당한다. 공산당 즉 북한 사람들은 우리 민족이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지나 S·논술인문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
많은 학생들은 민족은 확고부동한 것이고, 특히 우리 한민족은 단일민족으로서 순수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또한 민족의 개념은 국가의 개념 위에 있는 숭고한 것이라고 (특히 우리 한민족은) 생각한다. 이런 고정관념(프레임)은 어려서부터 가족, 동네, 학교, 청소년, 지역사회, 국가로 퍼져나가는 동심원적 집단소속감을 심어주고, 그에 대한 애정을 강요했던 교육의 영향 때문에 더욱 강화된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는 학생들은 아래와 같은 문제들을 적절하게 풀어낼 수 없다. (출제자들은 종종 학생들의 고정관념을 건드리는 문제를 낸다)
2010 경북대 수시2-2 - 세계시민주의와 애국주의
2008 연세대 정시 -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는 민족 혹은 민족 정체성 개념
2007 동국대 수시 2 - 민족의 개념
▧ 민족의 개념
일반적으로 민족이란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언어·풍습·종교·정치·경제 등 각종 문화내용을 공유하고 집단귀속감정에 따라 결합된 인간집단의 단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개념은 설명과는 달리 명쾌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데 내 민족이냐 다른 민족이냐의 구분이 외부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있어서도 명확하지 않은 이유는 민족이 공유하는 것이 혈통이 아니라 문화이기 때문이다.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언어다. 우리는 보통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의 집단을 한민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어라는 범주는 의외로 꽤 자의적이라서 한국어 안에는 각종 지역 방언들이 섞여 있고, 교통과 통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그 이질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유독 그 이질감이 오늘날에도 부각되는 방언이 바로 제주도 방언인데, 예를 들어 괸당(→친척), 비바리(→처녀), 소나리(→남자), 지슬(→감자)과 같은 제주 방언의 어휘들은 표준 한국어와 음운상의 차이가 심하게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학자에 따라서는 제주 방언을 한국어의 방언이 아닌 독립된 언어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따른다면 역사적으로 제주도민은 한민족의 문화를 공유하지 않은 다른 민족으로 분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의 모든 도서지역 주민들을 모두 당연하게 우리 민족으로 인식한다. 왜 그럴까.
다른 예를 들어보자. 스칸디나비아의 3개국(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의 언어는 현재 제각각 다르게 발전해 각각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스웨덴어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이 언어들의 음운상 차이는 표준한국어와 제주도 방언 사이의 차이보다 작은 정도라서 한 나라의 말을 알면 다른 나라의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정도로 가깝다. 왜냐하면 이 세 나라 사람들은 중세 시절엔 북부 유럽에서 국경이 명확하지 않은 채 노르드어(Old Norse)라는 같은 말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와 제주도의 언어 차이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언어 차이보다 크다. 그런데도 전자는 하나의 민족이고 후자는 다른 민족이다. 그 이유는 정치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했느냐의 여부가 언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민족이냐를 가르는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제주도와의 언어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줄곧 하나의 정치 공동체를 이뤄왔기 때문에 한 민족으로 분류되는 것이고,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언어상의 차이가 작은데도 각기 다른 정치 공동체를 이뤘기 때문에 다른 민족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렇듯 민족을 나누는 개념상의 기준은 ‘문화’지만, 현실상의 기준은 ‘국가’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애매하고 정치적인 민족 개념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민족이란 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 공동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 민족을 구분하는 시선
민족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지배적이면서도 명확한 기준은 없다. 시각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내려질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구분된 민족 사이의 경계를 합리화하기 위해 기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민족을 근원적인 성격을 가진 집단으로 본다. 이것은 혈통과 혈통이 전해주는 형질에 의해 민족은 전해진다고 보는 견해로서 근원주의라 한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민족이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인식, 태도, 감정의 결과물이라 본다. 어떤 집단의 정체성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민족의 범위는 유동적이고 그 집단의 이해관계와 정치 사회적 목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다. 이런 시각을 상황주의라고 한다. 또 다른 주장에 의하면 민족이란 공동 선조를 기원으로 하는 혈통집단도 아니고, 그 시대의 정치 상황에 따라 범위가 결정되는 강한 유동성을 가진 집단도 아닌, 종교 관습 언어 등의 문화 내용을 공유하는 문화적 집단으로 이해하는데, 이를 역사문화주의라 한다.
위의 견해들을 그 불변성의 강도에 따라 나열하면 ‘근원주의 > 역사문화주의 > 상황주의’가 되는데 다른 분류도 가능하다. 민족은 고정돼 있다고 하는 영속주의와 민족은 변한다고 보는 현대주의가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역사문화주의와 상황주의는 현대주의에 해당되겠다.
어떤 견해도 민족의 개념을 완벽하게 포섭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어느 견해에 의하더라도 민족을 설명할 수는 있다. 이 견해들은 각각 자신의 근거를 갖고 있으며 그 안에서의 이론적 틀과 현실적 적용 사례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가장 널리 통용되고 있는 기준은 역사문화주의다.
▧ 이론을 사례에 적용하기
가 (중략)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어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안에서나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위에 나는 것이다. 세계 인류가 네오 내오 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인 희망이요, 이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멀고 먼 장래에 바랄 것이요 현실의 일은 아니다. 사해동포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향상하고 전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마땅히 할 일이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일이니,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동국대 2007년 수시2> 기출문제의 제시문이다. 이것은 누구의 글일까? 백범 김구의 글이다. 어떤 입장일까? 근원주의 내지는 영속주의라고 생각했다면 정답이다. 너무 쉽다고? 다음 글을 보자.
나 (중략)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버리고 삼천리 금수강산을 남의주권 아래에 두며 민족을 다 노예로 만들어 놓자는 것이 그 분자(分子)들의 목적이요, 살인과 방화를 일삼아서 참으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말하기를 미국 백성으로 공산당 된 사람은 미국 백성이 아니요, 영국 백성으로 공산당 된 사람은 영국 백성이 아니요, 중국 사람으로 공산당 된 사람은 중국 사람이 아니며, 한인(韓人)으로 공산당 된 사람은 한인의 대접을 받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공산주의 선동에 빠져 나라를 팔고 민족을 남의 노예로 만들려고 활동하는 분자들은 …… 동족(同族)이라고 할 수 없고 또 인류라고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므로……[하략]……
공산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노예 되기를 감수하던지 우리의 자유와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변치 않고 싸우던지 하나를 택해야 될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연세대 2008 정시> 기출문제의 제시문이다. 이것은 누구의 글일까?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연설이다. 어떤 입장일까? 상황주의에 해당한다. 공산당 즉 북한 사람들은 우리 민족이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지나 S·논술인문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