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고 난동까지…규제 필요"

"음주 문화 바꾸는 일부터 먼저"

[시사이슈 찬반토론] 공공장소 음주 금지는 옳을까요
정부가 초·중·고교와 대학 캠퍼스 의료기관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술 판매와 음주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당초 지난해 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부처 간 이견,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 등으로 입법이 중단됐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국무총리와 정부 각 부처 장관이 참석하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다시 논의되면서 재입법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음주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한국 사회 분위기로 인한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만 연간 약 24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또 폭력 사건의 30~40%는 주취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정부가 공공장소에서 술 판매 및 음주를 규제하려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공공장소 음주 금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지난해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박성호 새누리당 의원은 “문화재 주변이나 지하철 안에서 술을 마시고 심지어 난동까지 피우는 사례도 있다”며 “술을 많이 먹는 개인도 문제지만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 더 큰 문제”라며 공공장소 금주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고려대 한택수 교수는 “우리나라의 음주 만능 문화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으며 폭음으로 인한 실수와 사고는 심지어 범죄까지로도 이어진다”며 “개인이나 가정에 미치는 음주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만큼 음주에 대한 일정한 규제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학생 K씨도 “술만 마시면 꼴사나운 장면이 공공장소에서 너무 많이 일어난다”며 공공장소 금주 조치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아이디 OIIW를 쓰는 누리꾼도 “술 때문에 일어나는 그 많은 분쟁 중 상당수가 없어질 수 있고 이로 인한 범죄와 경찰력 낭비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음주에 일정한 규제를 가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외국 사례를 들어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뉴욕 같은 데서는 공원에서 뚜껑 열린 술병을 들고만 다녀도 최고 1000달러의 벌금이나 6개월 징역형을 부과받고 뉴질랜드에서는 음주 금지 구역으로 지정한 해변에서 술을 마시다 적발되면 최고 2만뉴질랜드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음주에 대해 너무 관대하기 때문에 술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반대


당연하지만 애주가들은 반대한다. 금주령을 내리던 조선시대도 아니고 개인의 선택인 음주를 국가가 규제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음주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영역으로 남겨둬야지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서 어디서는 마셔도 되고 어디서는 안 된다는 식의 규제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VBeek라는 아이디의 누리꾼은 “공공장소에서 술에 취해 민폐를 끼치는 행위는 분명 문제지만 술의 판매와 음주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음주 문화를 고치는 방안부터 생각하는 게 순서이지 무조건 술판매와 음주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은 과하다는 이야기다.

금연정책과의 형평성을 들어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흡연의 경우 불특정 다수의 건강에 피해를 준다는 측면에서 음주보다 훨씬 더 해악이 심한데 흡연보다 음주에 대해 더 과한 단속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주취 폭력 등의 문제는 처벌을 강화하는 등 형사 문제로 다루면 될 일이지 아예 술을 못 마시게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영업에 지장을 준다며 반대하는 상인들도 적지 않다. 해수욕장 인근 상인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해변가 주변에서 음주단속을 하면 그만큼 피서객이 줄어들 것이고 지역 상권에도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며 관광진흥 차원에서도 무조건적인 음주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공공장소 음주 금지는 옳을까요

생각하기


공공의 장소에서 타인을 얼마나 의식하고 배려하는가는 그 나라의 수준을 말해주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다.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이 개인의 자유분방한 삶에 대해 국가가 간섭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에 대해서는 모질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경찰력을 동원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집단 중심의 문화가 워낙 우월해 이런 부분이 간과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술이 여전히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고 그러다 보니 술로 인한 실수에는 아직도 상대적으로 관대한 게 사실이다. 최근 바뀌고는 있지만 심지어 재판에서조차 술에 취해 한 행동에 대해서는 정상참작을 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술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적 비용은 더 이상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왔다고 본다. 폭행 살인 성범죄의 상당 부분이 음주와 관련돼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모든 자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때 가능하다. 물론 실제로 술을 마실 수 없는 구역을 설정하는 문제는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음주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공간에서 무제한 술을 팔고 마시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법의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