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하는 인간

[아는 만큼 쓰는 논술] (11) 소비 이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그가 무엇을 소비하는지 보면 된다. 사서 쓰고 버리거나 처박아두고 다시 사서 쓰는 것을 반복하는 현대인들에게 소비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 중 하나일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소비하는가의 문제는 좁게 보면 한 사람의 경제적 형편이나 취향에 달려 있는 것 같지만 넓게 보면 사회의 제도나 분위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겨난 신조어가 소비하는 인간, ‘호모 컨슈머리쿠스’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 대다수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의 시작은…


본래 소비라는 것은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이루어진다. 배가 고프면 햄버거를 사 먹고 겨울 추위를 견디기 위해 패딩을 사 입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소비’의 관계가 이렇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파란색 패딩이 있으면 흰색도 입어보고 싶고, 나이키 워킹화가 있으면 아디다스 러닝화도 신어보고 싶다. 희한하게도 아예 없을 때는 몰랐는데 하나를 소비하면 연쇄적으로 다른 것의 소비욕구도 불붙는다. 스마트폰을 사면 각종의 케이스나 예쁜 폰 고리가 필요해지듯이. 그래서 우리는 대개 ‘필요<소비’의 삶을 사는데 이러한 과잉소비를 중심에 놓고 논술문제는 시작된다.


2013 이화여대 모의(사회) : 소비와 자본주의의 문제점
2012 건국대 수시 : 과시소비와 아비투스
2011 서강대 수시 1차 (문학부/ 커뮤니케이션학부) : 경쟁적 소비와 모방적 소비
2011 숭실대 모의 : 한국의 명품소비 현상
2010 경희대 모의 : 예술소비와 계층
2010 인하대 모의 : 대중문화와 소비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를 둘러싼 기출문제들을 몇 개 뽑아봤는데 소비와 아비투스의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고 다음 기회에 풀어보도록 하자. 일단은 자본주의 사회의 이런저런 소비 유형부터 고찰해보자.

▧과시적 소비


간단히 말해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서 물건을 사는 것을 과시적 소비라 일컫는다. “아무나 샤넬을 가질 수 있다면 난 샤넬을 사지 않았지”라고 말하는 명품 소비자의 생각이 이와 같은 것이다. 해병대의 구호와도 유사한 자기 우월감이다. 이 소비이론을 처음 소개한 사람이 미국의 경제학자 도스타인 베블렌인데 그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자. 2012 건국대 수시1차 문제의 제시문이다.



보통사람과 유한계급의 신사는 상이한 동기에 의해 경제활동에 참가한다. 전자는 생필품과 육체적 안락의 획득을 위해 일하지만, 후자는 금전적 겨룸에서 이기기 위해 부를 축적한다. 이것은 베블렌의 독특한 이분법이다. 이러한 이분법은 소비에 관해서도 똑같이 타당하다. 보통사람은 생명의 유지와 육체적 안락에서 효용을 얻기 위해 재화를 소비하지만, 유한계급의 신사는 자신의 부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소비한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과시적 소비’ ‘과시적 레저’이다. 오늘날 베블렌을 모르는 사람들도 과시적 소비라는 용어를 아는 경우가 많다. 베블렌은 19세기 후반 미국 유한신사들의 과시적 소비에 대해 수많은 사례를 제시했다. 사람들은 베블렌의 시각을 빌어 그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더 많은 사례를 쉽게 찾아냈다. 오늘날 사람들이 단지 자기의 부유함을 나타내기 위해 쓸데없는 고가품을 사들이는 이웃을 볼 때 흔히 과시적 소비라는 빈정거림을 보게 된 것은 바로 베블렌의 공로이다.



요즘은 시들해졌지만 여러분들 주위에서도 쉽게 과시적 소비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자랑하기 위해 고가의 노스페이스 패딩을 사 입었던 친구들을 보면 된다. 꼭 부자만 과시적 소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타인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 하는 소비는 그 빈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계층을 넘어서 확산되고 있다. 다만 부자는 자신의 경제력이 소비를 충분히 뒷받침하는 것이고 서민들은 경제력을 넘는 소비를 한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경쟁적 소비, 모방적 소비

상류층의 소비를 과시적 소비로 특징지을 수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소비는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이것들을 다룬 것이 <2011 서강대 수시1 문학부/커뮤니케이션학부> 기출문제이다.



나중을 위해 저축하기보다 지금 소비하는 성향을 소비주의의 뚜렷한 특징이라고 본다면, 소비주의는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사회적 지위에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어떤 것을 더 적게 가지고 있을수록 이를 갖기 위해 더 많이 지불하려 한다-이 적용된다. 따라서 지위가 더 낮은 그룹의 사람들이 상층 그룹의 사람들보다 수입의 더 많은 부분을 경쟁적 소비에 기꺼이 쓰려 한다. 상층계급의 사람들은 이미 지위가 높기 때문에 지위를 더 얻고자 그다지 큰 희생을 하려 하지 않는다. 반면에 하층계급은 그렇게 한다.

대부분의 경쟁적 소비는 공격 전략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온 가족에게 평소보다 더 비싼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준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가 더 관대하고, 더 사랑을 베푸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그 사람의 행동은 결국 나머지 사람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행위이다. 이러한 공격 전략은 방어 조치를 부른다. 다음 해에, 가족 모두가 선물에 더 많은 돈을 써야할지 모른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남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옛날의 위치를 되찾기 위한 노력일 뿐이다. -조지프 히스 · 앤드루 포터, ‘혁명을 팝니다’





한 집단이 계급위계의 상층에 있는 집단처럼 보이길 원한다면, 짐멜이 말한 것과 같은 유행의 변화를 겪게 된다. “하층계급이 그들의 스타일을 모방하기 시작하자마자 상층계급은 이 스타일을 버리고 새로운 스타일을 채택한다. 이렇게 해서 다시 한 번 대중과 자신들을 구분하는데, 이런 식으로 게임은 돌고 돈다.” 물론 이것은 위계의 정당함을 인정하고 개인이 상층계급을 모방함으로써 적어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 위계상에서 상승이동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회를 가정한 경우이다.

그랜트 맥크랙컨은 종종 이것에 적용되는 이론의 명칭인 ‘트릭클다운(trickle-down)’이란 용어가 실제 적절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잘못된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유행은 하층계급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층계급이 적극적으로 찾아서 상층계급을 모방하고 그들이 또 변화하도록 압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맥크랙컨은 ‘뒤쫓기와 도망가기(chase and flight)’가 보다 더 알맞은 용어라고 제안하고 있다. - 피터 코리건, ‘소비의 사회학’



제시문 [가]는 경쟁적 소비를, 제시문 [나]는 모방적 소비를 설명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둘 다 하층계급의 소비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경제력을 넘는 소비를 한다는 점에서 [가]와 [나]는 공통점을 보인다. 차이점도 분명 존재하는데 고등학생 수준에서는 거의 비슷해보이는 두 입장이라 밝혀내기가 적잖이 버거웠을 것이다. 경쟁적 소비는 하층계급이 수동적 처지에 놓인다. 그러한 소비를 안 한다면 유무형의 곤란을 겪게 되므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소비를 말한다. 어린이날에 남들처럼 에버랜드 가보자고 졸라대는 아이들을 생각해보라.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부담스럽지만 기꺼이 에버랜드 소풍을 결심하는 아빠가 이에 해당된다. 반면 모방적 소비는 하층 계급이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연예인이 어떤 가방을 들었는지 유심히 보고 브랜드와 모델명을 검색하고 적금 부어 기어코 사고 마는 언니들이 이에 해당된다.

개념적으로는 선명하게 구분되지만 현실 속에서 경쟁적 소비와 모방적 소비는 잘 구분되지 않거나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등골브레이커 노스페이스 패딩 열풍을 다시 떠올려보자. 안 입으면 왕따가 될까 봐 샀을 수도 있고 먼저 입은 애들이 간지나게 보여서 샀을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럼 여러분의 소비패턴과도 연결지어 보라. 우리는 어떤 이유 때문에 물건을 사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바람직한 소비의 모습일까.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