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의 교양] (11)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이다"
“악법도 법이다.” 참 유명한 말이죠? 다소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국가가 정한 법은 따라야 한다는 이 말의 출처는 소크라테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에 관련한 모든 자료를 다 찾아봐도 그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꾸며진 말이었던 것입니다. 독재자들에 의한 날조라는 말도 있지만, 단정할 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소크라테스가 죽은 상황을 보면, 이런 말을 했으리라 짐작할 만도 합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라는 도시국가에서 살았습니다. 어찌 보면 그는 참 별볼일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한 직업도 없이 매일 하는 일이라곤 광장에 나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뿐이었으니까요. 문제는 그의 대화법이 사람들을 묘하게 불편하게 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마치 하이에나 같았습니다. 일단 대화를 시작하면 워낙 집요하게 캐물었기 때문이죠. 그 모습에 많은 사람이 질색했고 더러는 그를 미워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미움에 여러 이유가 더해지고 그는 억울한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처형될 때까지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지냈을까요?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쓴 ‘크리톤’이라는 책에는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 크리톤의 대화가 담겨 있습니다. 이미 수차례 탈옥을 종용한 일이 있는 크리톤은, 사형 집행이 있기 전날 친구에게 다시 한번 간청합니다. 제발 목숨을 아껴 도망치자는 것이었죠. 모든 준비는 이미 크리톤이 마친 상태였습니다.



“여보게 소크라테스! 지금이라도 내 말에 승복하고 자신을 구하게나. 만약에 자네가 죽으면, 그건 나에게는 한 가지 불행이 아닐세. 내가 결코 다시는 찾지 못할 그런 가까운 친구를 빼앗기게 되는 것 말고도, 더 나아가서는 나와 자네를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한테는, 내가 돈을 쓰려고 했던들 자넬 구할 수 있었는데도, 내가 무관심했던 것으로 생각될 것이니까 말일세. 하지만 친구들보다도 돈을 더 귀히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 이것 이상으로 부끄러운 평판이 무엇이겠는가? 왜냐하면 많은 사람은, 우리는 열성적이었는데도 자네 자신이 이곳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고는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일세.” (플라톤, ‘크리톤’ 중에서)



자신의 얼굴을 봐서라도 제발 탈옥을 해달라는 부탁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도리어 크리톤에게 반문합니다.



“이 일로써 우리 법률과 온 나라를, 그대와 관련되는 한, 망쳐놓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나? 혹시 그대가 생각하기엔 이런 나라가, 즉 나라에서 일단 내려진 판결들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개인들에 의해 무효화되고 손상되었는데도, 그런 나라가 전복되지 않고서 여전히 존속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크리톤’ 중에서)


자신의 탈옥이 아테네라는 공동체에 해를 끼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도망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악법도 법이다”라는 경구는 소크라테스에 썩 잘 어울리는 말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의 평소 신념에 비춰볼 때, 이는 오해에 가깝습니다. 그가 제일 중요하게 여긴 것은 정의로운 삶, 바로 올바른 삶이었습니다. 탈옥을 권하는 크리톤을 이렇게 꾸짖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되네.” 크리톤과 나누는 내화를 보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법률을 악법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다만 법을 집행한 시민들이 지혜롭지 못하다고는 생각했죠). 만약 국가가 올바르지 못한 것을 요구했다면, 소크라테스는 아마도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그가 아테네 법정에서 한 변론 내용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철학적 대화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면 그는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배심원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반기며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보다는 오히려 신께 복종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리고 할 수 있는 동안까지는, 지혜를 사랑하는(철학 하는) 것도, 여러분께 충고를 하는 것도, 그리고 언제고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 만나게 되는 사람한테 이 점을 지적하는 것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 제가 달리 처신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설령 몇 번이고 죽는다 할지라도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중에서)



배심원이 내리는 법적인 판결보다 신의 명령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신의 명령이란 어떤 종교적인 내용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사명으로 안 철학을 일컫는 말이었죠. 그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들을 진리로 이끄는 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철학을 그만두라고 국가가 요구하더라도 그 명령만은 따를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그는 실제로 추방형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사형 선고를 선택합니다).

그는 지금 국가의 법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옳지 못한 법에는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국가가 올바른 걸 요구한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의 명령이 정의롭지 않다면, 그땐 국가를 설득해야만 합니다. 우린 소크라테스의 다음 말에서 일종의 시민불복종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국에 대해서는 설득을 하거나 조국이 명하는 것들을 이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리고 조국이 무엇인가를 묵묵히 치르도록 지시하면 치러야 한다는 것을, 두들겨 맞거나 투옥되거나 하는 것도, 싸움터로 이끌고 가서 부상당하거나 전사하게 하더라도, 이는 해야만 한다는 걸, 그리고 또 올바른 것은 이런 것이란 걸 말이야. 또한 굴복해서도 아니 되며 후퇴해서도 아니 되고 전열을 이탈해서도 아니 되며, 싸움터에서건 법정에서건 또는 어디에서고 나라와 조국이 명하는 바는 무엇이나 이행해야 된다는 걸, 아니면 올바른 것(to dikaion)이 그 본성에 있어서 어떤 것인지를 나라에 납득시켜야만 된다는 것을 말이야.” (‘크리톤’ 중에서)




그러니 그가 ‘악법도 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는 왜 탈옥을 하지 않은 것일까요?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가 악법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그는 탈옥을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살펴본 대로, 그는 철학을 포기하는 대가로 사형을 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생각하기에 올바른 삶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죽게 되더라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 즉, 철학적 대화를 통해 아테네 시민을 보다 훌륭한 삶을 이끄는 일에 죽을 때까지 헌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삶이었습니다. 아테네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간다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꺾이게 됩니다. 그러니 평생을 올바른 삶을 추구해온 그가 어떻게 탈옥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목숨보다 올바른 삶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김영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ysjad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