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가 역풍을 받고 있다. 1차적인 충격은 수입물가 상승이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원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식료품과 해외에서 부품을 들여오는 공산품 등의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일본에 대한 투자도 줄고 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가장 흥미진진한 투자처’로 각광받던 데서 ‘가장 투자하기 두려운 시장’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Global Issue] "흥미로운 투자처서 두려운 시장으로"…'아베노믹스'  역풍
#수입 제품 가격 일제히 상승

대규모 양적완화가 핵심인 아베노믹스로 인해 엔화 가치는 급락했다. 수입제품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애플은 지난달 말 아이패드와 아이팟 등 주요 제품의 일본 내 판매가격을 최대 20% 인상했다. PC생산라인이 모두 해외에 있는 도시바도 이달 안에 컴퓨터 가격을 5000~2만엔가량 올리기로 했다.

식료품 가격도 인상대열에 합류했다. 수입 밀을 많이 사용하는 야마사키제빵과 시키시마제빵은 식빵 가격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식용류와 마요네즈 등 원료 대부분을 수입하는 다른 식료품 업체들도 가격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전력요금 인상도 부담이다. 원전 사고 후 화력발전 비중이 급증한 전력회사들도 전력요금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의 10개 전력회사들은 다음달부터 가정용 전력요금을 10%가량 올릴 계획이다.

장기금리가 오르는 것도 아베노믹스의 효과와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키우고 있다. 장기금리가 오름에 따라 국채 금리에 연동되는 주택 관련 대출 금리도 두 달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기업의 설비투자와 가계의 소비심리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 등 상당수 일본 금융회사들은 지난달에 이어 이번달에도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인상할 계획이다.


#등돌리는 외국인 투자자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한 헤지펀드 콘퍼런스에서 뉴욕 포트리스 투자그룹의 마이클 노보그래츠는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투자처’라고 했다”며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노보그래츠의 말에 동의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보도했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외국인들에게 ‘가장 투자하기 두려운 시장’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헤지펀드 등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7개월간 250억달러를 도쿄 주식시장에 투자했다. 무제한 금융완화를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가 주가를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해서다. 시장은 기대에 화답했다. 닛케이225지수는 같은 기간 83%나 급등했다. 초기 투자자들이 큰 돈을 벌자 외국인들은 오랫동안 관심을 갖지 않던 일본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지난달 말부터 상황이 반전했다. 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 닛케이지수는 지난달 23일 7.3% 급락한 데 이어 27일 3.2%, 30일 5.2%, 이달 3일 3.7% 등 연일 급락을 거듭했다. 불과 8거래일 만에 주가가 15%나 빠졌다. WSJ는 “이 정도의 폭락은 2011년 일본 대지진과 같은 재앙 시에나 볼 수 있는 수준”이라며 “최근 하락세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 애널리스트들도 원인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여전히 초기 투자자들은 장부상 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단기간에 주가가 크게 올랐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아베노믹스 효과가 일본 정부의 기대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금리 하락과 엔화 가치 하락, 주가 상승의 선순환을 기대했지만 최근 주가가 하락하면서 국채금리와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손실 규모가 커지고 있다.

#구조개혁으로 반전 노려

일본 정부의 의지엔 변함이 없다. 최근엔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을 수립하고 본격적인 집행에 돌입할 계획이다. 재정건전화 방안도 내놓았다. 2015년까지 정부 재정적자 규모를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고, 2020년에는 흑자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불필요한 예산을 줄여 성장 분야에 자금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일본 언론들은 재정건전화 방안에 ‘네 번째 화살’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일본의 국가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를 훌쩍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금융완화 정책이나 성장 전략 못지않게 일본 경제 회복을 위해 중요한 사안이란 의미다.

그러나 적자 규모를 줄이는 데 핵심 사안인 ‘소비세 증세’에 대한 언급이 빠지는 등 구체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아베 총리는 “증세가 일본 경제에 어느 정도 마이너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소비세 증세에 대해 여전히 유보적인 입장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재정지출을 줄이는 방안이라곤 ‘진행 중인 사업을 재검토하고 지방 정부와 보조를 맞춰 세출 억제에 힘쓰겠다’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지적했다.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 yykang@hankyung.com

----------------------------------------------------------------------------------

아베노믹스 실패 단정은 성급… 수출·내수는 '온기'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다고 단정짓긴 힘들다. 수출 대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내수에도 온기가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수출 기업들은 아베노믹스가 주도한 엔저(低)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마쓰다자동차와 후지중공업은 수출 실적이 좋아지면서 지난달엔 직원들이 휴일까지 일부 반납해가며 생산라인을 돌렸다. 닛산도 지난달 중순 도치기현 공장에 미국에 수출할 신형 세단 ‘Q50’의 생산라인을 추가했다. 지난 2년간 도치기현에서 생산하는 수출용 차량 부문은 줄곧 적자였지만 엔저로 가격 경쟁력이 생기면서 올해는 흑자 전환이 가능할 전망이다.

내수도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온라인 의류 판매 사이트를 운영하는 스타트투데이의 경상이익은 전년 대비 20% 늘었다. 일본 최대 건설업체인 세키스이하우스의 영업이익은 860억엔으로 직전 회계연도에 비해 21.6% 증가했다.

실적 개선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쿄 증시 상장기업 가운데 내부유보금이 차입금 규모를 웃도는 ‘실질 무차입 경영’ 기업이 전체의 52%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 밖에 수출 기업의 생산량 증가 등으로 일본의 4월 광공업지수는 5개월 연속 상승했다.

구직자 1명에 대한 구인자 수를 나타내는 지표인 유효구인배율도 2개월 연속 개선됐다. 구마노 히데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애널리스트는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로 나타나느냐가 아베노믹스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