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쓰는 논술] (9) 예술성의 본질

▧ 학문과 예술

학문은 인간에게 ‘진리’를 알려주기 때문에 인간을 발전시킨다. 이것이 학문의 가치이다. 반면 예술은 인간에게 무엇이 참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주고 인간은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감동을 받아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영향을 받는다. 이렇듯 예술의 가치는 학문에 견주어 뒤지지 않으며 음악과 미술, 문학과 연극, 무용과 영상예술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핵심은 바로 아름다움에 있다.

이번에 다룰 주제가 바로 아름다움이다. 논술에 있어서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학생들의 견해를 묻는 문제들이 비교적 자주 출제되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내지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문제는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묻는 것일 수도 있고 인간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묻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것은 철학적 질문이다. 예술성의 본질은 원래 연혁적으로 철학의 소관사항이었는데 나중에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하여 아름다움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한 학문이 생겼다. 이를 ‘미학’이라고 한다. 고등학생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분명 매력적인 학문이다. 기본 용어와 개념은 여기까지 설명하고 그간 출제되었던 기출문제들을 살펴보자.



2013 연세대 수시 (인문) : 아름다움 (자연미와 인공미)
2012 중앙대 수시 (인문 2) : 예술의 본질과 특성
2012 서울여대 수시 (인문-오전) : 아름다움의 상대성
2011 서울대 정시 (문제 3) :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2011 한양대 모의 2차 (인문) : 예술에 대한 관점


▧ 칸트의 미학과 헤겔의 미학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인지에 관해 철학자들이 과거에 논쟁을 벌인 일이 있다. 크게 두 견해가 성립하여 대립적 관계에 있었는데 그것이 칸트의 미학과 헤겔의 미학이다. 이것만 알아도 예술성을 다룬 문제들의 뼈대를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을 다룬 제시문이 있으니 큰 줄거리를 잡아보도록 하자. 2011학년도 한양대 모의 논술문제의 제시문 중 일부이다.


미란 목적과 이해관계를 떠난 미 그 자체(art for art itself)다. 들국화의 미를 그 자체대로 체험하고자 할 때 우리는 들국화가 무엇을 말하려는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들국화의 꽃잎과 암술과 수술의 조화, 꽃잎의 보랏빛과 푸른 하늘의 대조에 주목한다. 곧 무엇을 말하려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구성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점에서 순수미를 지향하고 새로운 형식의 창조에 주력하고 텍스트의 구성 원리에 주목하는 미학은 타당하다.

이 제시문에서 설명된 것이 칸트 미학의 핵심이다. 대상 내지는 사물 자체의 상태와 성질에 주목하는 것이 칸트 철학의 경향인데 미학에서도 비슷하지 않은가. 칸트는 무엇이 아름다운지 판단하는 데 있어서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대상 자체만을 놓고 판단하자고 한다. 여기서는 들국화를 예로 들었지만 들국화 대신 무엇이 들어가도 상관없다. 음악이면 그 음악 자체만을 놓고 소설이면 그 소설 자체만을 놓고 판단하자는 뜻이다. 칸트의 용어를 빌리면 취미판단(미적 취향의 판단)은 가치판단(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견해에 대해 칸트보다 마흔 여섯 살이나 어렸던 후배 철학자 헤겔은 어떤 반론을 제기했을까. 다음 제시문을 보자


꽃의 미추(美醜)는 그 꽃과 관련된 의미들과 무관하지 않다. 아름다움은 대상 자체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꽃의 아름다움은 꽃 자체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맥락, 꽃과 맥락을 종합한 것에도 있다. 꽃과 맥락을 더불어 생각하며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는가에 대해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진정으로 꽃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그 꽃이 과연 내 삶에,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던질까 생각할 때 꽃은 비로소 내 마음에 참으로 아름답게 피어난다. 이런 점에서 맥락에 따른 미를 지향하고 진정한 가치를 지닌 내용의 창조에 주력하며 예술의 목적에 주목하는 미학은 타당하다.

헤겔은 미의 대상을 둘러싼 맥락을 중시한다. 여기서 맥락이란 대상 주변에 있는 대상과 관계된 모든 의미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는 칸트처럼 예술적 판단의 대상을 칼로 도려내듯 쏙 빼내서 그것만 파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가 예술작품의 구성과 형식을 중시했다면 헤겔은 그 내용에 주목했다.

일제강점기 문학을 대상으로 놓고 보자. 그들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외면하거나 적당히 포장한 사회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다만 그 형식에 있어서는 과거의 구태를 깨는 새로운 유형의 신소설을 쓰거나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시를 썼던 경우도 많았다. 그럼 이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칸트의 관점에서는 작품 자체만을 놓고 그 형식과 구성을 중점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좋은 문학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의 관점에서는 작품의 내용을 사회와 연계하여 판단하기 때문에 나쁜 문학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어떤 예술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2012년 중앙대 기출문제를 통해 두 가지 견해의 차이를 다시 확인해보자.


브레히트는 카타르시스적인 해결을 모색하지 않고 억압에 대한 의식을 교훈적으로 고조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예술이란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며 목적 또한 개인의 사적인 쾌락이 아니고, 대중을 고무시키는 것이며 추구해야 할 목적을 지적해 주는 하나의 사건이다. 극에서 유도되는 공포와 연민은 적절히 유도되면 혁명적 행동으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브레히트는 관객이 극을 보고 난 후 주먹을 쥐고 나올 수 있는 새로운 극의 개념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아름다운 것 중에서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컨대 꽃을 모두 없애버려도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전혀 고통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꽃이 없어지기를 바라겠는가? 나더러 장미를 버리라고 한다면 차라리 감자를 버리겠다. 또한 내 생각에 양배추를 심기 위해 꽃밭에서 튤립을 뽑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공리주의자밖에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들은 어디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뿐이다. 유용한 것들은 모두 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엇인가 필요의 표현이기 때문이며, 게다가 인간의 필요라는 것은 그 가련한 본능과 마찬가지로 역겹고 혐오스럽기 때문이다. 한 채의 집 안에서 가장 유용한 장소는 화장실이 아닌가.


▧ 예술과 사회의 관계


헤겔이 강조한 대상의 내용이나 대상이 처한 맥락이라는 것은 대개 그 예술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사회로 수렴된다. 그래서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의 문제는 결국 헤겔의 예술관을 지지할 것이냐, 칸트의 예술관을 지지할 것이냐의 문제와도 같다. 답은 무엇일까? 눈치 빠른 학생들은 예상했겠지만 둘의 적절한 종합이다. 앞선 예에서 헤겔의 견해 쪽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더라도 작품 자체의 구성과 완성도를 도외시한다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어진다. 예를 들어, 군가나 여러분들 모교의 교가를 놓고 보자. 이것들의 특징은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모두가 따라 부르기 쉬워야 하니까)와 국가, 전우, 교우 혹은 학교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가사이다. 예술판단의 대상으로 놓고 보면 음악과 그 음악이 속한 맥락이 굉장히 근접한 대상이 아닌가. 그런데 이것들을 정말로 좋고, 아름다운 노래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헤겔의 예술관을 극단적으로 적용한 결과이다. 즉, 칸트가 강조했던 대상 자체의 참신하고도 조화로운 형식, 구성적 아름다움 또한 중요한 것이다. 결론은 칸트의 미학과 헤겔의 미학을 적절히 종합해야 다수가 공감하고 감동을 받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사회를 아예 도외시하여 사회적 현실에 눈감고 예술 자체만을 위해 성립해서도 안 되고 노골적으로 사회를 그대로 담으려고 시도해서도 곤란하다.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기도 하고 사회의 모습을 굴절시키기도 한다.

담기는 담되 그대로 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예술과 사회 사이에는 적절한 거리가 형성된다. 이 거리가 얼마나 절묘하냐에 따라 그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가 결정되기도 한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