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속담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다. 싸움을 말리라고 한 것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소설가 박완서의 장편동화 ‘부숭이는 힘이 세다’에 보면, ‘예전부터 때린 사람은 오그리고 자고 맞은 사람은 다리 뻗고 잔다’는 대목이 나온다. 때린 사람이 오히려 미안하고 마음이 불편해 편히 잠을 자지 못한다는 말이다. 또한 폭력사건의 경우 합의에 따라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싸움에는 승자도 패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결국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은커녕 손해만 주는 싸움은 말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속담에서 싸움은 말리라고 한 반면 흥정은 붙이라고 했다. 흥정이 좋은 일이므로 권장해 되도록 많이 이루어지게 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상에는 흥정 외에도 좋은 일이 무수히 많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다른 사람을 돕는 것처럼 흥정만큼이나 좋고 선한 행위는 주위를 둘러보면 차고 넘친다. 속담이 원래 ‘싸움은 말리고 사랑은 붙이랬다’ 또는 ‘싸움은 말리고 선행은 권하랬다’였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수많은 좋은 일 중에서 굳이 흥정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흥정은 협상의 기술
흥정이란 물건을 사고팔 때 당사자들이 협상을 통해 가격이나 수량을 조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남대문시장과 같은 재래시장은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명소 중의 하나다. 한국의 생생한 생활문화를 접할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외국인의 상당수가 ‘깎아주세요’ ‘하나 더 주세요’와 같이 흥정할 때 쓰이는 용어를 우리말로 어렵지 않게 구사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재래시장에 가면 흥정을 하는 것이 외국인에게조차 상식처럼 되어버린 듯하다. 이처럼 널리 퍼져 있는 재래시장에서의 흥정은 ‘덤’ 문화 속에 담겨 있는 우리민족의 ‘정’을 나타내는 표현방식의 하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자의 손해를 줄이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상인들이 애초에 상품의 가격을 제값보다 높게 부른다면, 그것은 물론 이득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다. 즉, ‘생산자 잉여(producer surplus)’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해진 가격보다 높게 부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산자 잉여란 생산자가 재화나 서비스를 판매한 가격에서 생산에 들어간 비용을 고려하여 최소한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금액을 뺀 값을 의미한다. 생산자가 받기를 희망하는 가격과 실제로 받은 금액과의 차이가 생산자 잉여인 셈이다. 예를 들어보자. 정찰제가 시행되지 않고 있는 옷가게의 주인은 옷 한 벌에 최소 1만원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침 손님이 찾아와서 가격을 묻자 한 벌에 2만원이라고 가격을 올려 부른다. 그러자 손님이 차비라도 빼 달라며 흥정을 붙이고, 주인은 못이기는 척하며 5000원을 깎아주겠다고 한다. 만약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거래가 성사되면 옷 가게 주인은 자신이 원했던 가격보다 5000원의 이익을 더 남기게 된다. 즉, 옷 가게 주인은 흥정을 통해 5000원의 생산자 잉여를 발생시킨 것이다.
소비자 여분 이익 늘리는 행위
지금은 재래시장도 많은 곳에서 정찰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정해진 가격이 얼마인지, 또 어떻게 그 가격이 책정됐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 외국인과 같이 시장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부르는 게 값이었을 수 있다. 속된 말로 바가지를 씌웠다는 얘기다. 하지만 소비자가 발품을 들여 상품의 가격과 시장 정보를 수집한다면 바가지와 같은 판매행위는 더 이상 발붙이기 힘들어진다. 이처럼 흥정은 생산자의 과도한 이익추구를 방지하고 소비자의 피해를 줄이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협상의 기술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흥정이 생산자에게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거래의 또 다른 당사자인 소비자 역시 흥정을 통해 여분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생산자는 최대한 높은 가격에서 흥정을 시작한다. 반면 소비자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흥정에 임한다. 자신이 염두에 둔 것보다 훨씬 낮은 가격부터 부르는 것이 소비자가 취하는 흥정의 공식이다. 생산자와는 반대로 소비자는 최대한 낮은 가격에서 상품을 구매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생산자가 얻는 여분의 이익을 생산자 잉여라고 하듯 거래의 결과 발생하는 소비자의 여분의 이익은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라고 한다.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금액에서 실제로 지불한 금액을 뺀 값이 소비자 잉여인 것이다. 옷 가게 주인과 손님의 예에서, 옷 한 벌을 구매하면서 손님이 실제로 지불한 금액은 1만5000원이었다. 하지만 당초 옷 한 벌에 대해 1만8000원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면 손님은 흥정을 통해 3000원의 여분의 이익, 즉 소비자 잉여를 획득할 수 있다.
사회적 잉여 극대화
이제 생산자는 원하는 가격보다 5000원을 더 받았고, 소비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3000원을 절약할 수 있었다. 흥정의 결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얼마간의 여분의 이득을 가지게 된 셈이다. 따라서 흥정이야말로 ‘윈-윈 전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생산자 잉여와 소비자 잉여를 합한 것을 가리켜 ‘총잉여’ 또는 ‘사회적 잉여(social surplus)’라고 한다. 경제학에서는 사회적 잉여가 극대화될 때 시장이 가장 효율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고 설명한다. 이때 효율적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거나 낭비되고 있는 자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잉여를 증가시키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는 흥정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흥정은 거래당사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사랑과 선행도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행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지나친 사랑은 구속으로 느껴져 때론 상대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 또한 받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선행은 자칫 상대를 불편하게 하고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흥정은 결코 특정인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상대가 제시한 가격이 자신이 생각한 가격보다 높거나 낮으면 결국 흥정은 결렬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속담에서 장려할 행위의 대상으로 흥정을 꼽은 것은 참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사회적 잉여(social surplus)
소비자 잉여와 생산자 잉여를 합한 값을 말한다. 만약 시장이 완전경쟁 상태에 놓여 있고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균형을 이룬다면 사회적 잉여는 최대화된다. 이러한 상태를 경제학에서는 ‘파레토 효율’이라고 한다.
▨ 생산자 잉여(producer surplus)와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
생산자 잉여는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실제로 받은 금액에서 생산자 비용을 빼고 얻는 이득이다. 소비자잉여는 소비자의 지불용의에서 실제 지불한 금액을 뺀 나머지다.
지불용의(willingness to pay)는 재화의 구입 희망자가 재화 구입을 위해 지불하고자 하는 최고 금액을 일컫는다. 구입 희망자는 지불용의보다 낮은 가격에는 재화를 사고 싶어하지만 지불용의를 초과하는 금액을 지불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속담에서 싸움은 말리라고 한 반면 흥정은 붙이라고 했다. 흥정이 좋은 일이므로 권장해 되도록 많이 이루어지게 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상에는 흥정 외에도 좋은 일이 무수히 많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다른 사람을 돕는 것처럼 흥정만큼이나 좋고 선한 행위는 주위를 둘러보면 차고 넘친다. 속담이 원래 ‘싸움은 말리고 사랑은 붙이랬다’ 또는 ‘싸움은 말리고 선행은 권하랬다’였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수많은 좋은 일 중에서 굳이 흥정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흥정은 협상의 기술
흥정이란 물건을 사고팔 때 당사자들이 협상을 통해 가격이나 수량을 조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남대문시장과 같은 재래시장은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명소 중의 하나다. 한국의 생생한 생활문화를 접할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외국인의 상당수가 ‘깎아주세요’ ‘하나 더 주세요’와 같이 흥정할 때 쓰이는 용어를 우리말로 어렵지 않게 구사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재래시장에 가면 흥정을 하는 것이 외국인에게조차 상식처럼 되어버린 듯하다. 이처럼 널리 퍼져 있는 재래시장에서의 흥정은 ‘덤’ 문화 속에 담겨 있는 우리민족의 ‘정’을 나타내는 표현방식의 하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자의 손해를 줄이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상인들이 애초에 상품의 가격을 제값보다 높게 부른다면, 그것은 물론 이득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다. 즉, ‘생산자 잉여(producer surplus)’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해진 가격보다 높게 부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산자 잉여란 생산자가 재화나 서비스를 판매한 가격에서 생산에 들어간 비용을 고려하여 최소한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금액을 뺀 값을 의미한다. 생산자가 받기를 희망하는 가격과 실제로 받은 금액과의 차이가 생산자 잉여인 셈이다. 예를 들어보자. 정찰제가 시행되지 않고 있는 옷가게의 주인은 옷 한 벌에 최소 1만원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침 손님이 찾아와서 가격을 묻자 한 벌에 2만원이라고 가격을 올려 부른다. 그러자 손님이 차비라도 빼 달라며 흥정을 붙이고, 주인은 못이기는 척하며 5000원을 깎아주겠다고 한다. 만약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거래가 성사되면 옷 가게 주인은 자신이 원했던 가격보다 5000원의 이익을 더 남기게 된다. 즉, 옷 가게 주인은 흥정을 통해 5000원의 생산자 잉여를 발생시킨 것이다.
소비자 여분 이익 늘리는 행위
지금은 재래시장도 많은 곳에서 정찰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정해진 가격이 얼마인지, 또 어떻게 그 가격이 책정됐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 외국인과 같이 시장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부르는 게 값이었을 수 있다. 속된 말로 바가지를 씌웠다는 얘기다. 하지만 소비자가 발품을 들여 상품의 가격과 시장 정보를 수집한다면 바가지와 같은 판매행위는 더 이상 발붙이기 힘들어진다. 이처럼 흥정은 생산자의 과도한 이익추구를 방지하고 소비자의 피해를 줄이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협상의 기술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흥정이 생산자에게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거래의 또 다른 당사자인 소비자 역시 흥정을 통해 여분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생산자는 최대한 높은 가격에서 흥정을 시작한다. 반면 소비자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흥정에 임한다. 자신이 염두에 둔 것보다 훨씬 낮은 가격부터 부르는 것이 소비자가 취하는 흥정의 공식이다. 생산자와는 반대로 소비자는 최대한 낮은 가격에서 상품을 구매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생산자가 얻는 여분의 이익을 생산자 잉여라고 하듯 거래의 결과 발생하는 소비자의 여분의 이익은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라고 한다.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금액에서 실제로 지불한 금액을 뺀 값이 소비자 잉여인 것이다. 옷 가게 주인과 손님의 예에서, 옷 한 벌을 구매하면서 손님이 실제로 지불한 금액은 1만5000원이었다. 하지만 당초 옷 한 벌에 대해 1만8000원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면 손님은 흥정을 통해 3000원의 여분의 이익, 즉 소비자 잉여를 획득할 수 있다.
사회적 잉여 극대화
이제 생산자는 원하는 가격보다 5000원을 더 받았고, 소비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3000원을 절약할 수 있었다. 흥정의 결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얼마간의 여분의 이득을 가지게 된 셈이다. 따라서 흥정이야말로 ‘윈-윈 전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생산자 잉여와 소비자 잉여를 합한 것을 가리켜 ‘총잉여’ 또는 ‘사회적 잉여(social surplus)’라고 한다. 경제학에서는 사회적 잉여가 극대화될 때 시장이 가장 효율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고 설명한다. 이때 효율적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거나 낭비되고 있는 자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잉여를 증가시키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는 흥정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흥정은 거래당사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사랑과 선행도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행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지나친 사랑은 구속으로 느껴져 때론 상대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 또한 받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선행은 자칫 상대를 불편하게 하고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흥정은 결코 특정인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상대가 제시한 가격이 자신이 생각한 가격보다 높거나 낮으면 결국 흥정은 결렬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속담에서 장려할 행위의 대상으로 흥정을 꼽은 것은 참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사회적 잉여(social surplus)
소비자 잉여와 생산자 잉여를 합한 값을 말한다. 만약 시장이 완전경쟁 상태에 놓여 있고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균형을 이룬다면 사회적 잉여는 최대화된다. 이러한 상태를 경제학에서는 ‘파레토 효율’이라고 한다.
▨ 생산자 잉여(producer surplus)와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
생산자 잉여는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실제로 받은 금액에서 생산자 비용을 빼고 얻는 이득이다. 소비자잉여는 소비자의 지불용의에서 실제 지불한 금액을 뺀 나머지다.
지불용의(willingness to pay)는 재화의 구입 희망자가 재화 구입을 위해 지불하고자 하는 최고 금액을 일컫는다. 구입 희망자는 지불용의보다 낮은 가격에는 재화를 사고 싶어하지만 지불용의를 초과하는 금액을 지불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