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대법원 "상여금은 통상임금"…기업들 50조 추가 비용 '비상'
‘통상임금 리스크’로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받은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이를 다시 계산해 수당을 달라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중 미국 GM 본사의 대니얼 애커슨 회장에게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보겠다”며 통상임금 문제를 직접 언급하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진 상황이다.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시킬 경우 산업계와 공공기관 등에 약 50조원의 추가 임금 부담이 발생해 국가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통상임금 다시 계산 수당달라"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 일률적으로 주는 고정임금을 일컫는 개념으로, 휴일·야근·잔업 등 각종 수당을 산정하는 데 기초가 된다. 그동안 기본급과 직무수당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왔으나 상여금과 연월차수당, 연장근로수당 등과 같이 근로 실적 등에 따라 다르게 지급되는 임금은 포함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재계는 “그동안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정부 지침을 따른 것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산정 지침이 상여금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노사 양측이 이 같은 지침에 입각해 임금 체계를 협의해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법원은 당시 대구의 시외버스 업체인 금아리무진 근로자들이 회사 측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분기별로 지급되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지난 3년간 지급한 휴일·야간근무 수당 등을 달라진 통상임금 산정 기준으로 다시 계산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진 후 현대자동차 대우조선해양 현대로템 S&T중공업 기아자동차 등 야근과 휴일작업이 많은 사업장 노조를 중심으로 ‘통상임금을 다시 산정해 수당을 달라’는 줄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소송을 통해 그동안의 잘못된 임금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라며 “연장·휴일근로 수당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면 장시간 근로 문제점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건비 부담에 고용 축소 우려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은 통상임금이 확대될 경우 기업들의 인건비 리스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대법원 판례대로 상여금이 통상임금 범위에 포함되면 휴일 근무 수당, 야근 수당, 연월차 수당, 퇴직금, 4대 사회보험 등의 간접노동비용이 커져 임금 총액이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또 근로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한 기업은 임금채권 소멸시효에 따라 지난 3년간 임금 차액도 보상해줘야 한다.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인 현대차는 패소할 경우 4만5000명의 근로자에게 4조원 안팎의 수당 및 퇴직금을 추가로 지급해줘야 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민간기업들이 일시적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은 최소 38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갑자기 높아지면 산업시설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총 관계자는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건비만 올라가면 가뜩이나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갑작스러운 임금 상승은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기업 경쟁력 약화로 수출이 줄면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기업이 일시적으로 38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부담할 경우 올해에만 37만2000~41만8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후 최소 8만5000개, 최대 9만6000개의 일자리가 매년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최근 공공기관 근로자의 통상임금에도 고정 상여금을 포함해야 한다는 행정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이 같은 논란은 공공기관으로도 번지는 모습이다. 이 같은 판결이 잇따를 경우 민간 부문의 38조원과 별개로 공공기관 및 공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는 모두 1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통상임금 문제 어떻게 풀까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근로기준법 개정 △노·사·정 대타협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등 세 가지 정도가 거론된다. 이 중 정부가 가장 선호하는 해결책은 근로기준법 개정이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할 경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취지의 지난해 3월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할 수 있다. 이 경우 향후 기업들의 추가 인건비 부담은 줄일 수 있지만 국회에서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 대타협은 정부가 노사 간 대화를 중재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해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많다. 노동계 입장에선 법원이 자신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상황에서 구태여 ‘잘해야 본전’인 협상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관측이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의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로 풀어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대법원은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과거 판시한 헌법·법률·명령 등의 해석을 바꿀 필요가 있을 때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사건을 처리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정소람 한국경제신문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