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사회적 책임

진주의료원 노사가 진주의료원 폐업을 한 달 동안 유예하고 고공 농성을 철회하기로 22일 합의했다. 노사는 앞으로 한 달의 유예기간 동안 진주의료원 폐업 문제를 놓고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다. -4월22일 연합뉴스

☞경남 진주에 있는 진주의료원의 문을 닫을지를 놓고 사회적 갈등이 거세다. 진주의료원은 경상남도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병원이다. 진주의료원의 폐업 문제가 이슈로 떠오른 건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 2월26일 “적자를 면치 못하는 진주의료원을 폐원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병원 노조와 일부 시민단체들이 즉각 반대하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양상이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노동시장 유연안전성 갖춰야 한국 경제 재도약
홍 지사에 따르면 진주의료원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 때문에 더 이상의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다. 의료 수익의 90%가량이 인건비로 지출되다 보니 “저소득층 환자를 돌보기보다 노조원만 먹여 살리는 형국”이란 진단이다. 오랜 적자 경영으로 인해 그동안 쌓인 진주의료원의 빚은 266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홍 지사가 지적한 것처럼 진주의료원 노조는 귀족노조에 가깝다. 직원들은 진주의료원 입사와 동시에 노조원이 된다. 노조는 인사권과 경영권에 공식적으로 참여한다. 팀장(부장) 이상을 채용하려면 채용 여부를 노조와 반드시 합의해야 한다. 직원들의 전환·배치도 노조와 합의해야 하는 사항이다. 병원 시설을 임대하거나 요양병원 운영 등 병원의 기능과 구조를 바꾸려고 해도 반드시 노사합의를 거쳐야 한다. 지방의료원 노조는 상급 단체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지방의료원장들이 합의한 사항을 바탕으로 단체협약을 맺는다. 이 때문에 전국 지방의료원 34곳 가운데 보건의료노조 산하인 지방의료원 27곳이 비슷한 단체협약 내용을 갖고 있다. 징계도 노조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진주의료원은 직원과 가족, 그리고 10년 넘게 근무하다가 퇴직한 직원들에게 진료비 중 본인부담금의 80~90% 감면 혜택을 줬다. 2010년부터 작년까지 50% 이상 감면해준 액수만 1억1400만원이다. 또 직원 채용시 정년퇴직자 가족을 우선 채용한다. 흑자가 나면 퇴직연금 수당을 지급한다는 조항도 만들어 놓았다. 이러니 적자가 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인 조직인 것이다. 그 적자를 메워준 건 물론 경남 도민들이다.

지방의료원이 몰락한 것은 1988년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가 열리면서 민간병원의 역할이 커지면서다. 의료비는 동일한데 민간병원보다 서비스 질은 떨어지니 지방의료원의 경영이 나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오랜 기간 동안 주인 없는 병원에서 노조가 주인 행세를 하면서 힘이 막강해지고, 귀족노조가 된 것도 한 이유가 됐다. 진주의료원의 경우 진주시 전체 의료 건수에서 담당하는 비중은 3%에도 미치지 못한다.

노동조합(노조)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동자(근로자)들이 근로조건의 유지와 개선,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위해 만든 단체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한창이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노조는 산업현장과 정치적 민주화에 앞장서면서 소외된 이웃을 보듬는 세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조의 모습은 어느 틈에 사라지고 요즘엔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한 ‘철밥통 노조’가 적지 않다.

쌍용자동차에 다니던 사람들과 금속노조는 덕수궁 정문 앞에서 농성을 지금도 계속한다. 쌍용차 경영이 어려워졌던 근본 이유는 쌍용차를 소비자들이 외면한 데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쌍용차 경영진뿐 아니라 근로자에게도 있다. 이런 쌍용차를 국민 혈세를 투입해 도와주는 게 꼭 정의로운 일일까?

우리나라의 일부 노조는 노사(勞使)관계가 아닌 노정(勞政)관계를 추구한다. 사측(기업)이 아닌 정부를 상대로 요구조건을 내걸고 관철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런 노조에선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은 근로자의 권익 향상이 아니라 정치적 목표를 획득하기 위한 도구로 변질한다.

이제 우리도 노동시장의 유연안전성(flexicurity)을 제고할 시점이 됐다. ‘유연안전성(flexicurity)’은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결합한 개념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되 근로자에게 사회적 안전망(social security net)을 제공함으로써 유연화에 따른 근로자의 불안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덴마크, 네덜란드 등은 1980년대 중반부터 ‘고용보호’ 대신 유연안전성에 신경쓴 결과 실업을 낮추고 경쟁력을 회복한 경험이 있다.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이 있는 것처럼 노조에게도 사회적 책임(USR·Union Social Responsibility)이 부여돼 있다. 칼 폴리 포모나대의 도킨스 교수는 “노조도 다른 사회제도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승인을 얻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회의 이익이 아니라 노조원의 이익을 사회적 정의로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정치투쟁을 앞세워 결국 국민들의 세금을 축내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노조가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유연안전성을 확보하는 것, 그게 ‘아시아의 호랑이’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로 전락해가는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이다.

--------------------------------------------------------------------------------

GDP의 성과와 한계

미국이 오는 7월부터 새로운 국내총생산(GDP) 산출 방식을 도입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1일 보도했다. 새 GDP 계산법은 지식재산권과 연구·개발(R&D) 비용 등 각종 무형자산이 포함될 예정이다. 이 방식이 도입되면 미국의 올해 GDP 규모는 3%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4월 22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노동시장 유연안전성 갖춰야 한국 경제 재도약
☞GDP는 한 나라의 1년간 경제성과를 측정하는 핵심 지표다. 1년 동안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모든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다. GDP와 GDP를 국민 수로 나눈 1인당 GDP를 비교해보면 간편하게 한 나라의 경제규모와 한 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GDP는 그 유효성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 돼왔다. 행복이나 삶의 질은 GDP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GDP에 의존한 경제 정책은 엉터리 나침반에 의존해 항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공해, 가사노동, 여가활동 등이 GDP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애기다. 로버트 케네디 미 상원의원이 1968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GDP는 우리 자녀들의 건강, 교육의 질 혹은 그들이 놀이에서 얻는 즐거움 등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GDP를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새 GDP 계산법은 이런 비판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FT에 따르면 R&D 활동이 GDP에 포함된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이 벌인 R&D는 이제껏 비용으로 처리됐다. GDP를 깎아먹는 요인이었다. 이제부턴 투자로 분류된다.

상무부는 “이렇게 하면 2007년 기준으로 미국 GDP가 3000억달러(약 340조원) 정도 늘어나는 효과가 생긴다”고 밝혔다. 책·영화·음악·드라마 등 예술 창작활동이 낳은 경제효과를 측정하는 방식도 바뀐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노동시장 유연안전성 갖춰야 한국 경제 재도약
영화 등은 몇 년에 걸쳐 계속 매출이 발생한다. 지금까지 이런 경제효과를 작품이 발표된 해의 GDP에만 반영했다. 미국은 예술 활용의 이런 경제효과를 매년 GDP에 넣기로 했다.

이번 개혁은 GDP 76년 역사상 중대한 변화다. GDP 개념이 탄생한 것은 1937년이었다. 러시아 출신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처음 제안했다. 실제 계산된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