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선이란 특정 경제 주체가 가용할 수 있는 소득의 전부를 지출하여 구입할 수 있는 재화의 묶음을 표시한 선이다. 우리는 제한된 소득 하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일련의 재화 묶음들을 이러한 예산선의 범위 안에서만 결정할 수 있다. 예산선이 바뀌어 우리의 선택의 범위가 달라질 경우는, 우리의 소득이 증가하여 보다 다양한 선택의 폭을 갖게 되었을 때이거나 주어진 재화의 가격이 변화하여 이로 인해 구매할 수 있는 재화의 묶음이 달라질 때뿐이다. 따라서 경제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란, 주어진 예산선의 범위 안에서 우리에게 가장 커다란 만족을 가져다주는 재화의 소비 묶음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결국 예산선이 어떻게 주어졌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소비 행태와 더 나아가 우리가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의 크기를 결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제약조건인 것이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04> 영국과 프랑스의 요리 문화가  다른 이유는?

예산선은 근본적 제약

인류의 문화를 보면, 특정 국가 내지 민족들이 자신들이 직면한 제약조건 하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결산물인 경우가 많다. 바로 옆에 나란히 위치한 이웃나라인 영국과 프랑스의 음식문화가 상이한 것 또한 여기에 기인한다.

우리는 모처럼 멋진 저녁 식사를 계획할 때 후보군 중 하나로 프랑스 요리를 올려놓곤 한다. 하지만 영국 요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영국 요리는 남다른 요리 문화라 칭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그 화려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우수한 음식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영국을 방문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요리가 얼마나 형편없는 수준인지 놀라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영국인들은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 일부러 형편없는 요리들을 먹고 있다는 유언비어까지 만들어졌을 정도이다. 영국이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식문화를 갖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요리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선택의 영역인 제약조건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기후가 농산물을 생산하기에 적합한 기후가 아니다. 때문에 단위 면적당 산출량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보다 떨어지는 상황이며, 기후마저도 적합하지 않아 자신들을 대표할 와인 하나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 영국에서 만든 빵 또한 밀의 품종이 좋지 못해 맛이 별로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산출량이 풍족하지 못한 식자재를 갖고 다시 말해 열악한 예산선 속에서 다양한 요리를 개발하기 위해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해본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쉽게 허락되는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쾌적한 기후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유럽 대륙 사람들과는 달리 영국인에게 먹는 것이란 귀한 것이었으며,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원으로 인식되었다.

먹는 것은 문화 내지 레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행위로 인식했던 영국인들이 광활한 식민지를 얻게 되었을 때, 원활한 식자재를 생산하기 위해 플랜테이션을 도입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식민지의 광활한 영토란 오랫동안 부족하기만 했던 식자재를 원활히 확보하기 위한 대상이었을 뿐이지, 음식문화를 만들어 나갈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음식을 자원으로 여겨왔기에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방식으로 ‘식’문화를 이끌어 건 것이다.

영국인의 후예들이 세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패스트푸드 문화가 만들어진 것 또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설명된다. 영국인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미국인에게 식자재란 다양한 요리 문화를 만들어 내는 기초 재료로 인식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손실 없이 빠른 시간 내에 요리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결국 미국인들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공산물을 만들어내듯이 패스트푸드라는 요리 아니 음식자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영국과 미국이 음식을 문화 내지 레저가 아니라 자원으로 인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오랫동안 음식물에 대한 열악한 제약조건 속에서 살아왔던 그들의 상황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할 수 있다.

음식을 '자원'으로 여긴 영국

반면, 프랑스는 오늘날에도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농산물 수출국일 정도로 농산물을 생산하기에 풍족한 토양과 기후 환경을 갖추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자연 환경 덕분에 프랑스인이 직면한 먹는 문제에 대한 예산선 내지 제약조건은 선택의 범위가 넓었다. 때문에 다양한 고민과 조합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이것이 프랑스가 오늘날과 같은 우수한 음식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지금도 프랑스는 패스트푸드 문화를 단순히 배만 채우기 위한 비문화적인 행태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국에 맥도날드가 널리 퍼지는 것을 가장 크게 저항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며,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외국 정상과의 자리에서 “음식이 맛없는 나라의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다”고 언급하여 물의를 빚은 일화도 있으며, 프랑스 국민들 또한 영국, 독일 등 인근 국가의 요리들은 농민의 요리로 치부하며 자신들의 요리가 상류사회의 요리라고 칭송한다. 이처럼 프랑스는 요리를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고 있는 나라이다.

비옥한 토지와 축복받은 기후를 갖고 있어 음식 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던 프랑스에 ‘먹는 재미’란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이탈리아의 부호 메디치 가문의 딸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프랑스 왕가에 시집을 오게 되면서부터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지역과도 다양한 교역을 수행하면서 여러 지역의 농산물과 조리법을 접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의 이러한 음식문화가 왕가의 부엌을 책임지는 이탈리아 출신 왕비로부터 전달된 것이다. 프랑스 요리를 소개하는 서적들을 보면 오늘날의 프랑스 요리법 내지 음식 예절은 매디치 카의 카트린이 프랑스 왕가로 시집 올 때 가져온, 대량의 식자재와 디저트 등의 조리법, 그리고 그녀가 프랑스 왕족에게 보여준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는 식탁 매너가 원형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당시 문헌에는 왕실과 많은 귀족들이 그 맛의 황홀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먹는 재미'즐기는 프랑스

한번 눈높이가 높아진 프랑스 왕족과 귀족들은 자신들의 영지에 돌아가서도 그 맛을 잊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지에 카트린이 소개한 요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식자재를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비옥한 토지와 적합한 기후는 이러한 그들의 시도에 풍족한 결실로 대답해 주었다. 식사 후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디저트 문화가 퍼지고 난 뒤에 프랑스의 지배계층은 얼음을 얻기 위해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해안에 배를 보내 얼음을 운송해 오는 노력마저 전개하기에 이른다. 이는 당시 프랑스의 지배계층이 얼마나 식문화에 열광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04> 영국과 프랑스의 요리 문화가  다른 이유는?
오늘날 우리는 데이트를 할 때나 누군가를 융숭하게 대접할 때, 프랑스 요리집을 찾곤 한다. 다채롭고 풍성한 요리로 누군가를 대접하기 위함이다. 프랑스가 이 같은 요리 문화를 갖게 된 것은 축복받은 기후 및 비옥한 토양으로 인해 식자재를 넉넉히 생산할 수 있어 여러 요리들을 시도해 볼 수 있었던 제약 조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e.kr

< 경제 용어 풀이 >

▨ 예산선

특정 경제 주체가 가용할 수 있는 소득의 전부를 지출하여 구입할 수 있는 재화의 묶음을 표시한 선이다. 우리는 제한된 소득 하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일련의 재화 묶음들을 이러한 예산선 범위 안에서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예산선은 우리의 소비 행태와 더 나아가 우리가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의 크기를 결정하는 제약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