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원칙과 자율 신봉자…'철의 여인' 잠들다
1970년대 말 영국 어디에서도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시 영국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 근로자들의 잦은 파업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중병 환자’일 뿐이었다. 강성노조와 과도한 복지로 상징되는 이른바 ‘영국병’은 1978~1979년 절정에 달했다. 정부가 ‘임금 인상률 5% 내 억제’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운수분야 근로자, 병원 근로자, 미화원, 장의사 등 150만여 공공분야 노동자들은 연일 파업을 벌였다. 거리엔 쓰레기가 넘쳐나고 응급실 환자들은 방치됐다. 1979년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은 위기의 국가로 전락한 영국을 나타내는 불명예스런 표현이다.

‘불만의 겨울’은 당시 야당인 보수당을 이끌던 마거릿 대처(1925~2013)가 노동당을 밀어내고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리(재임 1979~1990)에 오르는 무대가 됐다. 대처는 총리직에 오르면서 ‘영국병’ 치유를 위한 과감한 수술에 나섰다. 전후 영국 사회주의를 지탱시킨 기둥인 강경노조가 가장 먼저 수술대에 올랐다. 대처는 9개월 동안 강경노조의 상징격인 탄광노조 파업에 맞서면서 ‘파업=인금인상’이라는 공식을 깼다. 공공지출 억제, 정부 차입 축소 등 긴축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경제회생의 내실을 다지는 데 힘썼다. 국영기업의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과감한 시장경제 도입 역시 그의 대표작이다. ‘사회주의 문제점은 결국 다른 사람의 돈을 축내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경제 회생을 위한 대처의 사회·경제정책을 일컫는 ‘대처리즘(Thatcherism)’은 경쟁과 검약, 자율·자립이 골자다. 노동당 정부가 고수한 각종 국유화와 복지정책을 포기하고 민간에 자율을 부여해 경쟁과 효율을 유도했다. 완전고용보다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해 생산성을 높였다. 케인스가 주창한 ‘정부의 개입’보다는 애덤 스미스가 강조한 ‘보이지 않는 손’을 더 신봉한 것이다. 집권 11년 만에 영국의 국내총생산이 23.3% 늘어나고 일자리가 33.3% 증가한 것은 그의 ‘작은 정부론’이 충분히 역할을 한 셈이다. 물론 케인스로 대변되는 수정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재산권을 중시한 그의 신자유주의가 빈부 격차가 화두인 요즘 도마에 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원칙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였다. 포클랜드전쟁 등 국익을 위해선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지구촌에 평화의 물꼬를 트는 데도 기여했다. 또한 20세기에 견고했던 ‘유리천장’을 깬 선구자다. 대처 전 총리가 지난 8일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공과는 시대에 따라, 때로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만 영국병을 혁파한 불굴의 리더십과 자율을 중시한 대처리즘은 후대에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4, 5면에서 대처 전 총리의 생애와 신자유주의, 대처리즘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