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는 기업가정신
한정화 신임 중소기업청장은 22일 “공무원도 기업가정신을 가져야 창조경제가 가능하다”고 공무원 사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한 청장은 이날 열린 취임식에서 “한국은 창조경제 시대로 변화하고 있고, 이런 시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공무원도 변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 3월24일 연합뉴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기업가 정신 없이는 한국 경제 부활 어렵다"
☞ 한국 경제가 좀체 침체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그래도 형편이 나아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은 시들어간다. 왜 그런가? 결국은 한국 경제의 큰 방향을 정하는 정치가 문제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선거에서 사용한 슬로건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아니라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일 ‘제40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40여년 전 중화학 공업화를 선언하고 6대 전략산업을 육성했는데 그게 효자 노릇을 해서 오늘날 우리나라 발전을 이뤘다”며 “기업인 여러분이 불굴의 기업가정신으로 도전하고 국민이 열심히 노력하신 것이 어우러져 지금의 이런 발전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 경제의 최근 성적표는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7분기째 0%대 저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토로할 정도로 참담할 것일까? 인구 고령화, 성장보다는 복지와 분배 우선 등 여러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게 바로 ‘온데 간데 없는 기업가정신’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기업가정신을 저해하는 주범은 정부다.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은 위험(리스크)을 적극적으로 떠안아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모험에 나서고, 어려운 환경을 헤쳐나가면서 기업을 키우려는 의지를 뜻한다. 미국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는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장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기업가의 주요 임무이며, 이를 기업가정신이라고 했다.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려면 기업인들에 대한 사회적인 격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부와 정치 지도자 가운데 상당수는 ‘대기업=악, 중소기업=선’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철학에서 추진하는 각종 정책은 ‘대기업 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니 산업통산자원부가 대통령 첫 업무보고에서 “대기업의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를 집중 조사하겠다고”고 밝히는 등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줄줄이 이어지는 것이다. 서울시가 “콩나물 오징어 대구포 등 51개 품목의 판매 제한을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권고하겠다”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웃기는 정책을 내놓는 것도 대기업은 약자를 괴롭히는 존재라는 생각이 근저에 깔려 있다.

민간 기업 간 자유로운 협상에서 결정돼야 할 납품가를 정부가 나서서 어떻게 하자는 걸까? 적정 가격을 정부가 정할 수 있을까? 시장은 하루가 달리 바뀌고, 제품 원가를 낮추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소비자들을 잡지 못하고서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도태할 수밖에 없는데 어느 세월에 적정 납품가를 산정하고 또 이를 어기면 처벌하고 그럴까? 콩나물이나 오징어를 대형마트에서 팔지 못하게 하면 과연 재래시장이 살아날까? 그럼 소비자들의 불편은 누가 보상할까? 결국은 ‘정부의 천국’이 될 것이고, 경제주체들은 소비자에게 신경쓰기보다는 규제를 만들어내는 정부 관리에 연줄을 대는 데 더 노력할 것이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중국 경제는 부상하고 일본 경제는 가라앉는 사이에 성장을 지속해왔다. 하지만 이젠 중국은 벌써 한국산이 차지했던 첨단제품 시장을 넘보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으며, 일본은 엔저를 무기로 부활의 조짐이 완연하다.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경제전문가 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년 가까이 지속된)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응답률 56.6%)가 많았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기업가 정신 없이는 한국 경제 부활 어렵다"
공무원도 기업가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 급한 건 기업가들이 ‘기업하려는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다. 대기업 정책도 불공정 거래는 엄격하게 규제하는 한편, 투자를 확대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며, 세계 1등이 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10대 그룹만 해도 105조원이나 되는 현금성 자산을 투자하고 해외로 나가고 있는 발길을 한국으로 되돌릴 수 있다.

앞서 나가는 기업(대기업)은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고, 중소기업은 더 경쟁력을 갖추도록 돕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이게 일자리를 늘리고, 복지를 확대하는 정답이다. 21세기 국가 최고지도자는 시대 상황 변화에 맞게 유연하고, 사소한 것까지 모두 살피는 만기친람(萬機親覽)식이 아니라 큰 줄기만을 잡아주며, 적재적소에 국민이 수긍할 만한 인사를 배치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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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펀드 만들어 영향력 키우는 '브릭스'


브릭스판 IMF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이 브릭스판 국제통화기금(IMF)을 만들기로 했다. 27일 외신에 따르면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브릭스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들은 각국의 외환보유액에서 1000억달러를 출자, 긴급협의기금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 3월28일 한국경제신문

☞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 질서는 브레턴우즈 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연합국 대표들은 전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모여 세계경제를 이끌 3개의 대표적인 기구를 설립했는데 이게 바로 브레턴우즈 체제다. 3개의 국제기구는 △세계은행(IBRD, World Bank)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IMF(국제통화기금)다.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개발 자금 및 노하우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며, GATT는 세계 무역 자유화를 위한 일을 한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기업가 정신 없이는 한국 경제 부활 어렵다"
IMF는 1945년 설립 당시엔 환율 안정을 위한 기구였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 벌어졌던 세계 각국의 자국 통화가치 떨어뜨리기 경쟁(통화전쟁)은 세계 무역을 극도로 위축시켜 일자리를 늘리기보다는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그 교훈으로 세계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는 각국 통화가치(환율)의 안정이 아주 중요하다는 컨센서스가 이뤄졌으며 이렇게 탄생한 게 바로 IMF다.

각국 통화가치 안정이라는 IMF의 임무는 1970년대 후반 들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환율 안정보다는 경제위기국에 대한 자금 지원 역할, ‘위기국에 대한 소방수’로서의 역할이 강화된 것이다. 1980년대의 중남미 위기, 1997년 아시아 위기, 2009년 유럽 위기 등 IMF는 그동안 많은 위기국에 자금을 지원해왔다.

IMF는 그러나 이렇게 자금을 지원하면서 해당국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미국식 가치관과 기준(아메리칸 스탠더드)을 세계 각국에 전파했다는 비판도 듣는다. IMF는 세계 여러 나라가 출자해서 만들었는데 가장 지분이 많은 곳이 바로 미국이어서 미국의 입김이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브릭스 국가들이 브릭스판 IMF를 만들기로 한 것은 따라서 세계 경제 질서에서 브릭스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조치로 볼 수 있다. 브릭스판 IMF는 3조3000억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이 410억달러를 출자하고, 인도와 브라질 러시아 3국은 각각 180억달러, 남아공은 50억달러를 내 조성하게 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기금이 특정 국가가 금융위기에 빠졌을 경우 자금을 지원해줌으로써 IMF의 일부 기능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