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지난 17일 막을 내렸다. 전인대는 중국 최고 지도부를 교체하는 최대 행사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지난 14일 국가 주석에 뽑혔다.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공산당대회에서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오른 데 이어 이날 국가 주석에도 선출돼 당·정·군의 3대 권력을 모두 장악했다.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국가 주석이 취임 때부터 당·정·군을 장악한 것은 처음이다.

#'시리주허' 체제 출범

시 주석은 유효 투표수 2959표 가운데 2955표의 찬성표를 얻었다. 반대는 1표, 기권은 3표였다. 전인대 투표는 비밀투표 방식으로 진행한다. 2008년 후진타오가 국가주석으로 재선출될 때는 5표의 반대표가 나왔다.

이어 공산당 서열 2위인 리커창 정치국 상무위원은 지난 15일 국무원 총리로 뽑혔다. 그는 유효표 2949표 가운데 찬성 2940표, 반대 3표, 기권 6표를 얻었다. 찬성률은 99.7%로 10년 전 원자바오 총리가 얻었던 99.3%보다 높았다. 국가 주석과 총리의 임기는 5년이지만 통상적으로 한 차례 연임하기 때문에 시 주석은 2023년까지 10년간 중국을 통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중국은 앞으로 10년간 ‘시리주허(習李組合·시진핑 주석-리커창 총리 체제)’로 운영된다.

시진핑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로운 대국외교’를 제시했다. 시 주석과 리 총리는 지난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2기 전인대 폐막 연설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평화와 발전의 길을 걸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전인대는 이에 앞서 16일 부총리, 국무위원, 부장(장관) 등 ‘시진핑-리커창 체제’의 주요 인사 선출을 마무리했다.

#국제평화 증진 기여 강조

시 주석은 폐막 연설에서 “중국은 변함없이 평화 발전의 길을 걸을 것”이라며 “마땅히 짊어져야 할 국제적 책임과 의무도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 총리도 “중국이 계속 발전하려면 국제평화 환경이 중요하다”며 “중국은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패왕 행세는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중국은 오바마 정부와 공동으로 새로운 대국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두 사람의 이런 발언은 최근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 과정에서 제기된 중국 패권주의에 대한 우려를 해소시키면서도 앞으로 국력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리 총리는 “평화 발전의 길과 국가주권 보호, 이 두 가지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덧붙였다.

시 주석과 리 총리는 또 부패 척결에 강한 의지를 밝혔다. 시 주석은 “본인 스스로 인민의 감독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혀 부패 척결을 제1과제로 추진해 나갈 것임을 거듭 확인했다. 리 총리는 중국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도시화에 대해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 체제는 과도 내각

전인대는 지난 16일 리 총리의 제청을 받아 4명의 부총리와 5명의 국무위원, 그리고 25명의 부장도 선출했다. 장가오리 정치국 상무위원, 류옌둥 국무위원, 왕양 전 광둥성 서기, 마카이 전 국무원 비서장 등이 부총리로 뽑혔다. 국무위원에는 양징 국무원 비서장, 양제츠 전 외교부장, 창완취안 중앙군사위원 겸 국방부장, 궈성쿤 공안부장 등이 뽑혔다.

새 내각에 대해 홍콩 언론들은 ‘노인 내각’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장관급 인사 25명의 평균 연령은 만 60.8세로 10년 전 후진타오 정부 출범 당시의 58.7세에 비해 2.1세 많다. 10년 전에는 절반이 넘는 15명이 새로 장관급 인사에 임명됐지만 이번에는 신임 각료가 9명에 그쳤다. 왕위카이 중국 국가행정학원 교수는 “신임 부장 절반이 만 60세가 넘는다”며 “장관급 인사들은 65세가 되면 은퇴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내각은 과도적 성격이 짙다”고 설명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이 이끄는 공산주의청년단파(공청단)가 국무원의 최대 계파로 부상했다고 홍콩의 명보가 분석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리 총리를 비롯해 왕양·류옌둥 부총리, 양징 국무위원, 황수셴 감찰부장, 리리궈 민정부장, 우아이잉 사법부장, 장다밍 국토자원부장, 양촨탕 교통운수부장, 차이우 문화부장 등 10명이 공청단파로 분류된다. 반면 장쩌민 전 주석과 시진핑 계열인 상하이방-태자당 연합세력은 장가오리 부총리를 비롯해 창완취안·궈성쿤·양제츠 국무위원과 왕이 외교부장,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 등 6명이다.

이번 전인대 각종 표결 과정에서 일부 반대표가 속출해 단순 요식행위로 여겨졌던 투표 행태가 주목받았다. 전인대 환경·자원보호위원회 주임 선거에서는 반대표가 850표(30%)에 달했고, 저우성셴 환경부장(장관) 유임안에도 7.4%(반대 171표, 기권 47표)의 거부표가 나왔다.

남윤선 한국경제신문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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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으로 돌아간 후진타오… 원자바오는 자서전 집필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 주석이 국가주석직에 오르면서 10년간 중국을 통치해왔던 후진타오 주석(사진)은 완전히 공직에서 물러난다.

베이징 정가 소식통은 “후 주석이 정치계파인 공산주의청년단의 수장이지만 정치에 대한 미련이 많지 않은 데다 건강도 좋지 않아 퇴임 후에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사이트인 둬웨이(多維)도 최근 “후 주석이 고향인 안후이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베이징에서 요양하며 암투병 중인 부인 류융칭 여사를 간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15일 완전히 퇴임한 뒤 자서전을 집필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정치 계파에 소속되지 않은 기술관료 출신이다.

한편 지난 17일 미국에 본부를 둔 중화권 매체 둬웨이에 따르면 중국판 소개팅 TV 프로그램에서 참가자가 파트너를 퇴짜 놓을 때 흘러나오는 노래를 패러디한 뮤직비디오가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뮤직비디오는 후 전 주석과 원 전 총리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끝나자마자 이런 뮤직비디오가 나온 것은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뜻의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실감케 했다”고 둬웨이는 전했다. 뮤직비디오 링크는 곧 차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