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대형마트는 배추·갈치·두부 못판다?…소비자 권익은?
서울시가 지난 8일 동네 슈퍼마켓 등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판매품목을 제한하거나 수량을 줄여 판매하도록 권고해 논란을 빚고 있다. 서울시가 대상 품목으로 정한 건 51개 품목이다.

#서울시, 51개 품목 판매 제한


품목을 보면 △담배 소주 등 기호식품 4종 △배추 콩나물 등 채소 17종 △두부 계란 등 신선·조리식품 9종 △고등어 갈치 등 수산물 7종 △사골 등 정육 5종 △미역 등 건어물 8종 △쓰레기 종량제 봉투 등이다.

시의 이번 품목제한은 권고 사안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대형마트가 판매 제한 권고 품목을 계속 판매할 경우 시는 강제 조항을 담은 법률 개정을 중앙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사실상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한발 더 나아가 신규 출점하는 SSM은 중소상인으로부터 사업조정 신청이 들어오면 품목 제한을 강행할 예정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우리나라가 사회주의 국가냐”며 반발하고 있다. 영업시간 제한에 이어 판매품목까지 제한하는 나라가 자유국가에서 어디 있느냐는 볼멘소리다. 특히 업계는 주요 신선식품 등 51개를 판매하지 않으면 ‘사실상 장사를 접으란 얘기’라며 강력하게 반발한다. 대형마트와 SSM에서 채소 생선 등 신선식품과 필수 식재료를 팔지 못하게 하면 대형 업체 매장을 찾는 소비자의 발길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점에서다.

#대형마트 "2조2천억 매출감소"

서울시의 판매 조정 방안이 시행되면 대형마트와 납품업체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51개 판매 제한 권고 품목’이 대형마트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마트가 이들 51개 품목을 팔아 거둔 매출은 2조2000억원으로 전체의 15.1%를 차지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시장 현실과 소비자 권익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며 “대형마트에서 신선식품과 필수 식재료를 팔지 않으면 어떤 소비자가 대형마트를 찾겠느냐”고 항변했다.

대형마트의 매출은 곧 납품농가와 업체들의 피해를 의미한다. 대형마트에 채소 생선 등을 납품하는 업체는 대부분 연 매출 수십억~수백억원대의 중소기업이다. 매출의 90% 이상을 대형마트에 납품해 거두는 기업도 많다. 이마트에 양파 대파 등을 납품하는 한사랑의 이순희 대표는 “연 매출 200억원 중 90% 이상을 대형마트에 납품해 얻는다”며 “대형마트 납품이 어려워지면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하고 70여명의 직원은 모두 실업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Focus] 대형마트는 배추·갈치·두부 못판다?…소비자 권익은?
#"물가 더 오를 것이다"

서울시의 이런 방침은 물가 안정에 역점을 두고 있는 정부 정책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형마트들이 농수산물을 산지 직매입으로 조달하는 등 유통 단계를 줄여 물가 안정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비효율적인 유통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물가를 안정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의 물가 안정 기여도는 전날 지식경제부에서 대형마트 임원들을 불러 가격할인 행사를 지속해줄 것을 요청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은 이래저래 불만을 터뜨린다. 대개 도시의 소비자들은 주말을 이용해 대형마트에서 원스톱으로 쇼핑한다. 차를 몰고 나가 마트에 주차한 뒤 식품매장과 옷매장 등을 한꺼번에 돌아다녀 쇼핑시간을 아낀다. 하지만 서울시의 조치로 소비자들은 마트와 이른바 재래시장을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됐다. 51개 품목을 사려면 마트쇼핑을 마친 뒤 또 나가야 한다. 소비자들은 재래시장에선 물품의 신선도와 일정한 가격, 반품, 주차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장보기가 불편하다고 한다. 급할 경우 동네 슈퍼에서 자발적으로 사먹기도 하는데 왜 서울시가 품목까지 제한해 주말장보기를 더욱 어렵게 하느냐는 불만도 내놓는다. 재래시장보다 많은 소비자 권익을 왜 침해하느냐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대형마트와 SSM에 고용돼 있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줄일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실제로 주말 두 번 영업제한 조치로 마트 아르바이트생과 비정규직 직원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판매품목이 제한되면 납품업체도 대량물량 납품이 줄게 돼 일손을 줄일 수밖에 없다. 농산물 농가도 마찬가지다.

#재래시장 "환영한다"

반면 전통시장 상인들은 서울시의 방침을 환영했다. 박태신 서울 중곡제일시장 상인협동조합장은 “대형마트와 SSM이 주요 농수산물을 팔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자연히 전통시장을 찾을 것”이라며 “무너져 가는 골목상권을 살리는 실질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판매 제한이 휴일 및 야간 영업 규제보다 더 강력한 전통시장 보호 대책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영업제한이 별 도움이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주말 유동인구를 줄여 동네상권이 상대적으로 죽는 현상도 나타났다는 것이다.

최만수/강경민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

"재래시장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서울시의 대형마트 판매품목 제한조치는 ‘목적이 선하면 어떤 수단이든 동원해도 되는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상기시킨다. 바로 사회적 목적을 위해선 모든 수단이 정당화된다는 논란이다. 사회적 목적은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로 포장돼 ‘착한 목적’으로 변질돼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조치는 언제나 특정집단을 위해 다른 집단의 권리를 통제하는 형태를 띠게 된다.

이번 조치는 개인 즉 소비자의 자유선택을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곧 소비자의 소득사용 권한을 당국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과 같다. 개인에 따라 대형마트에서 쓸 수도 있고, 동네가게에서 쓸 수도 있는 게 자유경제의 근본인 점을 감안하면 서울시의 이번 조치는 이미 실패한 사회주의적 시장조치다.

서울시는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권한을 자꾸 키워나가려 한다. 당국의 권한이 커질수록 개인의 자유는 줄어든다는 것은 시장이 탄생한 이후 입증된 것이다. 서울시는 품목제한에 앞서 영업시간을 제한한 적이 있다. 영업시간 제한으로 시작한 평등(재래시장과 대형마트간의)에 집착한 나머지 이젠 아예 품목까지 제한하는 포괄적 권한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재래시장이 망해가는 것은 소비자가 대형마트를 선택한 결과이지 특권을 보장해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사회적 평등을 부르짖는 청년들조차 “재래시장을 가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거의 없다”고 대답한 것도 소비자선택의 결과일뿐이라는 것. 시장은 보부상→시골장→재래시장→대형마트→인터넷쇼핑으로 발전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