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경제부흥·국민행복"…21세기 '박정희 스타일'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정식 취임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향후 5년간 펼쳐보일 자신의 정치철학과 국정방향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핵심 키워드로 경제부흥, 국민행복, 창조경제를 내세웠다. ‘경제부흥’은 한국 경제의 근대화를 이끈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가경영 코드’를 21세기로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2 한강의 기적’을 위대한 도전으로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대통령은 또 개발시대의 핵심 가치였던 국가 발전 외에 ‘국민행복’을 새로운 이정표로 설정해 국민 개개인이 국가 발전과 경제 성장의 과실을 고루 누리는 경제를 지향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가발전·국민행복 선순환

25일 취임사에서 박 대통령은 ‘성장’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부흥’을 골랐다. 모두 5번 사용했다. 이날 박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 목표는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 세 가지다. 경제부흥은 국민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박 대통령은 “부강하고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희망의 새 시대, ‘제2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도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성장이나 번영이 아닌 부흥을 쓴 것은 압축 성장의 기반을 다진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경제부흥의 결과가 ‘국가의 발전’뿐만 아니라 ‘국민의 행복’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취임사에서 “국가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국민의 삶이 불안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GH노믹스의 경제부흥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은 취임사에 등장한 단어를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취임사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행복으로 21번 사용됐다. 대통령 연설문에서 일반 호칭인 ‘국민’(58번)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쓰였다.

[Cover Story] "경제부흥·국민행복"…21세기 '박정희 스타일'

#핵심 키워드는 행복과 희망

‘희망’(10번) ‘신뢰’(8번)도 자주 사용됐다. 취임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국민의 행복을 위해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으니 나를 믿어달라’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이 거대 담론이나 시대정신, 국가 비전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국민 개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취임사 중 “국민 개개인 행복의 크기가 국력의 크기가 되고 그 국력을 모든 국민이 향유하는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김영삼 정부의 ‘신한국 창조’, 노무현 정부의 ‘평화와 번영의 시대’,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 원년’ 등 이전 정부의 국정 목표와 비교하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채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비전인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취임사에서 풀어 썼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한 핵심 키워드로 ‘창조경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양대 축으로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데 미래창조과학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유일하게 거론한 정부 조직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 지연 등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박근혜 정부의 신성장 패러다임인 창조경제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의 핵심 요소로 ‘과학기술과 ICT산업’ ‘융합’ ‘인재’를 꼽았다. 세 가지를 핵심 요소로 꼽은 이유로 세계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지적했다. 즉 자동차·조선을 필두로 한 제조업, 인터넷 모바일 등의 정보통신산업을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다가오고 있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창조경제로 과학과 문화 접목

박 대통령은 새 패러다임에선 과학기술과 ICT를 기반으로 한 융합이 얼마나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낼 것이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과 ICT를 모든 국민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국민행복기술로 육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여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은 박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부터 일관되게 강조해온 것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 구상은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40개 국정과제 중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 ‘창의와 혁신을 통한 과학기술 발전’ 등의 추진전략에도 반영돼 있다.

우선 과학기술에 문화·소프트웨어·인문예술을 융합시켜 신성장동력 육성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전자·자동차를 비롯한 기존 주력 산업은 과학기술 및 ICT를 접목해 고도화한다. 특히 국가는 기초연구를, 기업 등 민간은 응용·실용기술을 맡아 소재·부품 분야의 유망 신산업 기반을 조성하자는 청사진을 그렸다.

이것을 해내는 것은 결국 사람의 힘. 그래서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창조경제를 추진하기 위해 인재 발굴·육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많은 우리 인재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취임사 내용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로 대표되는 해외 인재 등용을 앞으로도 지속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종합적으로 창조경제론은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보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핵심 경제 정책이다. 자본 투입 중심의 ‘추격형 전략’에서 벗어나 과학기술과 인적자본을 바탕으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선도형 전략’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ICT가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대통령이 이런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을 적극 선도해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은 ICT 분야 종사자들에겐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성장'단어 사용 피해 MB정부와 차별화

박 대통령이 성장이라는 단어를 피한 것은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간부는 “성장은 분배와 대립적 개념으로 연결되기 싶다”며 “취임사가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고 전 계층을 포괄할 수 있도록 메시지 관리와 단어 선택에서 노력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성장의 부작용인 부의 쏠림과 소외현상을 해소하면서 균형 잡힌 성장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정부 운영과 관련해서도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강조, 이명박 정부의 ‘작고 효율적인 정부’와 대비를 이뤘다.

이날 취임사는 국정 운영 부문별로 각론을 담아내기보다는 방향성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경제부흥을 위한 방법론으로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고 기업 규제 완화, 경기 부양, 공공개혁, 부동산시장 활성화, 노사관계 등 각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심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