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사 여행] "잘못된 분배가 빈곤 낳아"…'개발독재' 리콴유와 열띤 논쟁
(10) 빈곤의 경제학 선구자 아마르티아 센

인도 경제학자인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아버지가 화학 교수이고, 어머니는 여류작가인 유복한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기아와 빈곤문제 해결에 헌신하겠다고 결심, 인도 콜카타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이념적으로 편향된 대학 분위기를 불편해 했다. 그는 결국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이적했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 다양한 이념이 공존했던 케임브리지대 교풍에 만족한 센은 이곳에서 경제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수학과 물리학에서 남다른 재주가 있었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 하필이면 빈곤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뭘까. 센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 겪었던 두 가지 아주 참혹한 사건에 대한 기억이었다.

하나는 무슬림 출신 노동자의 애달픈 죽음이었다. 힌두교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다 힌두교도의 칼에 찔려 우연히 센의 집으로 피신했지만 그가 끝내 숨을 거두는 애처로운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다른 하나는 벵골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굶어 쓰러져 죽어가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이는 1943년 기근으로 300만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참사였다. 이런 가슴 아픈 경험 때문에 가난에 대한 동정심이 마음속에 각인돼 있었던 것이다.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본격적으로 빈곤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케네스 애로와 하버드대 철학자인 존 롤스 등은 그의 학문적 여정에 항상 동반자적 역할을 했다. 그의 연구 주제도 빈곤 문제뿐만 아니라 발전, 정의, 윤리, 공공선택, 민주주의 등으로 넓혀갔다.

빈곤에 대한 센의 사상은 독특하다. 굶주림과 빈곤은 생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분배의 탓이라고 주장한다. 아프리카나 그가 어렸을 때 지켜봤던 벵골의 처참한 기근도 식량 공급이 부족한 탓이 있지만 공급된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해 야기됐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경제가 성장해도 빈곤이 줄어든다는 보장도 없다고 한다. 이는 분배를 수정하기 위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센은 자본주의의 빈곤문제에 대한 분석도 내놨다. 시장의 기초가 되는 자유는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시장은 부의 증가를 촉진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생산된 것을 정부가 개입해 제대로 분배하지 않으면 질병, 실업, 빈곤, 불평등 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경고했다.

센의 사상은 자본가나 부유한 국가의 착취로 인해 노동자 또는 제3세계가 빈곤해진다는 마르크스 사상, 그리고 저개발국가의 빈곤은 홍수와 가뭄 탓이라는 종래의 빈곤철학을 극복했다.

[경제사상사 여행] "잘못된 분배가 빈곤 낳아"…'개발독재' 리콴유와 열띤 논쟁
하지만 그가 분배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분배가 일할 의욕을 위축시켜 부의 창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센의 빈곤사상은 성장만으로는 빈곤을 해소할 수 없다는 성장비관론을 전제하는 데 현실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빈곤층이 줄어든다는 통계가 그런 근거들이다. 1990년대 8.0%의 중국 연평균 성장률은 8.5%의 빈곤층 감소로 이어졌다. 인도는 성장률(5%)이나 빈곤층 감소율(6%)이 중국보다 모두 낮다. 1.8%의 보잘것없는 성장률을 기록한 파키스탄은 겨우 0.5%의 빈곤층 감소를 가져왔다.

어쨌든 센은 재분배를 통한 빈곤과 불평등 퇴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굶주림과 가난으로부터 해방될 권리, 질병을 치료받을 권리, 교육받을 권리 등 사회적 기본권 확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국가는 그런 권리 확립을 통해 빈곤층을 지원하고 실업자를 보호하는 한편 교육과 건강 같은 ‘사회적 재화’를 공급할 의무를 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센은 빈곤과 기아를 해소하기 위한 필수적 요건을 민주주의라고 믿는다. 방글라데시나 1950년대의 중국, 아프리카의 대규모 기아사태는 민주주의 부재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는 이런 주제로 정치적 자유보다 권위주의 정부가 신속한 경제발전을 가져온다고 ‘개발독재’ 불가피성을 주장했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와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거대 담론은 경제발전의 핵심적 동력이 사유재산과 경제자유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발전된 국가에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라는 체제보다 시장경제의 발달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도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지만 거대한 빈곤층의 존재를 극복하지 못한 이유도 자본주의 발전이 뒤처져 있는 데 따른 것이라는 진단이 일반적이다.

센의 사상은 이런 비판의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그는 수학적 지식과 통계적 방법을 동원, 종래의 경제학이 다루지 않았던 빈곤 문제를 정의, 발전, 도덕 관점에서 ‘빈곤의 경제학’이라는 신천지를 선구적으로 개척했다. 이것이 그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배경이다. 일생 동안 어려운 사람 곁에서 그들을 돌봤던 마더 테레사 수녀처럼 센도 빈곤의 경제학을 통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를 ‘경제학의 테레사 수녀’라고도 부른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센의 학문적·정서적 동정심의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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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행복지수 개발… 제 3세계 빈곤 퇴치 기여

아마르티아 센 사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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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티아 센은 빈곤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상이하게 생각하는 두 진영과 싸우면서 빈곤철학을 개발했다. 한편으로 국유화를 통해 빈곤을 없애고 번영을 달성하려 했던 마르크스주의와 싸웠다. 그는 사유재산의 철폐로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치명적 폭정을 부른다는 이유로 마르크스를 호되게 비판했다. 일할 자유, 생산과 소비선택의 자유를 유린한다는 이유로 분배평등의 사회주의도 강력하게 부정한다. 다른 한편 센은 서민층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유·자본주의와도 싸워야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힘을 잘 이용하면 빈곤을 타파하고, 모든 사람에게 번영을 기약하는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를 확립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사회적 기본권을 강조한 나머지 자유주의로부터 공격받았고 동시에 평등분배를 배격한 나머지 좌파에도 환영받지 못했다.

센은 자신의 경제사상을 알리는 데 매우 수줍어 했다. 그래서 미국과 영국, 인도 이외의 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업적은 매우 크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토론토대, 도쿄대, 독일의 킬 대학 등 세계 90여개 대학에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다.

센은 정당에 가입한 일도 없다. 영국 정부와 인도 정부가 고위 자문위원직에 위촉했지만 거절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국제적 구호단체를 이끌면서 빈곤 퇴치에 앞장서 세계도 하나의 공동체이므로, 부유한 나라들은 국제적인 재분배 정책을 통해 제3세계의 빈곤과 국제적 불평등을 퇴치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세계은행과 유엔에서 실무적으로 활동하면서 제3세계의 빈곤 원인과 그 해결책을 제시해 빈곤한 나라의 개발정책을 계획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경제사상사 여행] "잘못된 분배가 빈곤 낳아"…'개발독재' 리콴유와 열띤 논쟁
센은 각 나라가 얼마나 발전했는가, 그리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를 평가하는 지표로서 유엔과 세계은행의 인간개발지수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지표로서 원래 국민소득 시스템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는 소득 불평등, 빈곤문제, 환경, 교육의 기회 등을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로 폐기했다.

센이 작성한 인간개발지수는 국민소득에다 조기사망률, 기대수명, 문맹, 의료 혜택, 교육 등 이런저런 항목을 더하고 빼거나 또는 각 항목에 특정 가중치를 부여해 작성한다. 최근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요청으로 센은 사회발전 측정을 위한 새로운 지표로서 국민행복지수도 개발했다.

민경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