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해냈다!”
나로호(KSLV-Ⅰ)가 우주를 향해 발사된 지 10분 정도 흐른 30일 오후 4시10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초긴장 상태에서 발사 결과를 기다리던 발사지휘센터(MDC) 기술진은 성공 소식이 전해지자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두 번의 실패와 열 번의 연기 끝에 얻은 값진 성과였다. 조광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호사업추진단장은 “이제야 맘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9분간 펼쳐진 우주쇼
나로호는 발사 15분 전인 이날 3시45분부터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고 4시 정각에는 굉음과 섬광을 내뿜으며 우주로 치솟았다. 4시54초 고도 7㎞에서 음속(초속 333m)을 돌파하며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4시3분35초에는 나로우주센터에서 245㎞ 떨어진 고도 177㎞ 상공에서 위성보호덮개(페어링)를 분리했다. 이어 4시3분52초 1단 로켓 분리 임무도 정상적으로 마쳤다. 2단 로켓이 점화된 뒤 4시7분33초에는 목표 고도인 300㎞에 진입했고 마침내 이륙 9분 뒤 고도 302㎞에서 나로과학위성을 정상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과학위성이 보내오는 비콘 신호를 노르웨이 트롬소 수신국에서 탐지하는 데 성공해 과학위성이 목표 궤도에 진입해 정상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우주 개발 역사에서 큰 변곡점을 맞게 됐다. 우주 분야 핵심 기술로는 △위성 제작 △우주센터 △발사체 제작 등이 꼽히는데 위성 제작기술과 우주센터를 갖춘 데 이어 마지막 숙제인 발사체를 국산화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해서다. 1992년 영국 서리(Surrey)대와 함께 우리별 1호를 발사하며 우주 개척에 나선 우리나라는 지난 5월 발사한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3호부터는 전자광학카메라까지 국산화하며 세계 7~8위권 위성 제작·운영국가로 발돋움했다. 2009년 6월에는 나로우주센터를 준공하며 우주로 로켓을 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발사체 분야에선 1993년부터 과학관측로켓(KSR-1, 2, 3)을 차례로 개발하며 기반 기술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우주까지 위성이나 우주선을 원활하게 올리려면 터보펌프 엔진 기술이 필요했고 이 같은 경험을 쌓기 위해 러시아와 손잡고 2002년 시작한 게 나로호 사업이다.
윤영빈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나로호 사업을 통해 발사체를 실제 제작·조립하고 발사장까지 운영하는 전 과정을 경험한 것은 소중한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11년간의 실패와 노력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200여명 기술진은 지난 11년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다. 누구보다 발사 성공을 반긴 사람은 조광래 항우연 나로호발사추진단장(54)이었다. 조 단장은 1989년 연구원 설립 이후 20년 넘게 로켓 개발 외길만 걸어온 전문가다.
1990년대 과학관측로켓 개발을 주도했고, 2000년대 들어 우주발사체 개발을 위해 나로호사업을 직접 기획하고 진두지휘했다. 두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도 발사를 강행하다 보니 중압감도 컸을 터다. 최근에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매일 신경안정제를 먹기도 했다. 그는 발사 성공 후 가진 브리핑에서 “너무 늦어 죄송하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며 오랜 부담에서 벗어난 소감을 말했다.
지난 2차 발사 실패 뒤 항우연의 새 수장으로 부임한 김승조 원장도 그간의 부담을 솔직히 드러냈다. 그는 “발사를 하루 앞두고 사표를 어떻게 쓰는지 살펴보기도 했는데 성공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라며 “연구원들이 그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한 덕분”이라고 털어놨다.
나로호사업이 11년째 진행되면서 개인 생활을 포기하고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 숱한 사연들도 화제다. 2008년 겨울, 부산의 한 발사대 제작공장에선 연구원 수십명이 단체로 독감에 걸려 밤새 통증을 호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발사대 성능 시험을 위해 며칠간 겨울비를 맞으면서 실험을 강행한 탓이다. 당시 실험에 참여했던 진승보 항우연 선임연구원은 “모든 스케줄이 빡빡하게 짜여 있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예정된 실험을 미룰 수 없었다”며 “이제 고생한 날을 뒤로하고 동료들과 술 한 잔 하고 싶다”고 웃었다.
#한국형 자체 로켓개발이 숙제
전문가들은 이번 성공으로 우주 진출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우주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보다 적극적인 우주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선 북한과의 기술격차를 좁히는 게 시급한 과제다. 위성의 정상 작동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다국적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서는 한 달 앞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한 북한을 자국 땅에서 자체 로켓으로 자국 위성을 우주에 쏘아올린 세계 10번째 우주클럽(스페이스클럽)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권세진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나로호 사업은 독자 기술로 개발할 한국형 발사체로 가는 징검다리 과정으로 이번에 쌓은 경험과 자신감을 후속 사업에 쏟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taehun@hankyung.com
나로호(KSLV-Ⅰ)가 우주를 향해 발사된 지 10분 정도 흐른 30일 오후 4시10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초긴장 상태에서 발사 결과를 기다리던 발사지휘센터(MDC) 기술진은 성공 소식이 전해지자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두 번의 실패와 열 번의 연기 끝에 얻은 값진 성과였다. 조광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호사업추진단장은 “이제야 맘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9분간 펼쳐진 우주쇼
나로호는 발사 15분 전인 이날 3시45분부터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고 4시 정각에는 굉음과 섬광을 내뿜으며 우주로 치솟았다. 4시54초 고도 7㎞에서 음속(초속 333m)을 돌파하며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4시3분35초에는 나로우주센터에서 245㎞ 떨어진 고도 177㎞ 상공에서 위성보호덮개(페어링)를 분리했다. 이어 4시3분52초 1단 로켓 분리 임무도 정상적으로 마쳤다. 2단 로켓이 점화된 뒤 4시7분33초에는 목표 고도인 300㎞에 진입했고 마침내 이륙 9분 뒤 고도 302㎞에서 나로과학위성을 정상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과학위성이 보내오는 비콘 신호를 노르웨이 트롬소 수신국에서 탐지하는 데 성공해 과학위성이 목표 궤도에 진입해 정상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우주 개발 역사에서 큰 변곡점을 맞게 됐다. 우주 분야 핵심 기술로는 △위성 제작 △우주센터 △발사체 제작 등이 꼽히는데 위성 제작기술과 우주센터를 갖춘 데 이어 마지막 숙제인 발사체를 국산화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해서다. 1992년 영국 서리(Surrey)대와 함께 우리별 1호를 발사하며 우주 개척에 나선 우리나라는 지난 5월 발사한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3호부터는 전자광학카메라까지 국산화하며 세계 7~8위권 위성 제작·운영국가로 발돋움했다. 2009년 6월에는 나로우주센터를 준공하며 우주로 로켓을 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발사체 분야에선 1993년부터 과학관측로켓(KSR-1, 2, 3)을 차례로 개발하며 기반 기술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우주까지 위성이나 우주선을 원활하게 올리려면 터보펌프 엔진 기술이 필요했고 이 같은 경험을 쌓기 위해 러시아와 손잡고 2002년 시작한 게 나로호 사업이다.
윤영빈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나로호 사업을 통해 발사체를 실제 제작·조립하고 발사장까지 운영하는 전 과정을 경험한 것은 소중한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11년간의 실패와 노력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200여명 기술진은 지난 11년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다. 누구보다 발사 성공을 반긴 사람은 조광래 항우연 나로호발사추진단장(54)이었다. 조 단장은 1989년 연구원 설립 이후 20년 넘게 로켓 개발 외길만 걸어온 전문가다.
1990년대 과학관측로켓 개발을 주도했고, 2000년대 들어 우주발사체 개발을 위해 나로호사업을 직접 기획하고 진두지휘했다. 두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도 발사를 강행하다 보니 중압감도 컸을 터다. 최근에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매일 신경안정제를 먹기도 했다. 그는 발사 성공 후 가진 브리핑에서 “너무 늦어 죄송하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며 오랜 부담에서 벗어난 소감을 말했다.
지난 2차 발사 실패 뒤 항우연의 새 수장으로 부임한 김승조 원장도 그간의 부담을 솔직히 드러냈다. 그는 “발사를 하루 앞두고 사표를 어떻게 쓰는지 살펴보기도 했는데 성공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라며 “연구원들이 그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한 덕분”이라고 털어놨다.
나로호사업이 11년째 진행되면서 개인 생활을 포기하고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 숱한 사연들도 화제다. 2008년 겨울, 부산의 한 발사대 제작공장에선 연구원 수십명이 단체로 독감에 걸려 밤새 통증을 호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발사대 성능 시험을 위해 며칠간 겨울비를 맞으면서 실험을 강행한 탓이다. 당시 실험에 참여했던 진승보 항우연 선임연구원은 “모든 스케줄이 빡빡하게 짜여 있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예정된 실험을 미룰 수 없었다”며 “이제 고생한 날을 뒤로하고 동료들과 술 한 잔 하고 싶다”고 웃었다.
#한국형 자체 로켓개발이 숙제
전문가들은 이번 성공으로 우주 진출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우주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보다 적극적인 우주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선 북한과의 기술격차를 좁히는 게 시급한 과제다. 위성의 정상 작동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다국적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서는 한 달 앞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한 북한을 자국 땅에서 자체 로켓으로 자국 위성을 우주에 쏘아올린 세계 10번째 우주클럽(스페이스클럽)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권세진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나로호 사업은 독자 기술로 개발할 한국형 발사체로 가는 징검다리 과정으로 이번에 쌓은 경험과 자신감을 후속 사업에 쏟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