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복지 공약 지키는데 130조~270조원 든다고?
우선 숫자 몇 개를 기억해 놓자. 올해 우리나라가 쓸 예산(총지출 기준) 342조원, 세금으로 거둬들일 돈(세수) 276조원, 국방예산 34조원, 연구·개발(R&D)예산 17조원.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공약으로 내건 이른바 ‘박근혜 복지 프로그램’을 집권 5년 동안 실행할 경우 소요비용은 얼마나 될까? 약 130조~270조원이다. 박 당선인 측은 130조원이라고 하고, 재정 전문가들은 두 배나 더 많은 270조원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공짜복지 퍼레이드가 공약대로 이행되면 너나없이 공짜돈을 타내려는 수요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1년 예산을 통째로 날릴 수도 있다”고 재정전문가는 경고한다.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4대 중증질환은 암·심장병·뇌질환·희귀병을 가르킨다. 박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4대 중증 치료를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국가가 100% 보장한다고 공약했다. 현재 활동 중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 공약을 실행하려면 매년 1조5000억원가량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5년이면 7조5000억원이 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원 규모는 산출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날 것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지금 상태로 봤을 때 1조5000억원이라 하더라도 CT, MRI 찍는 게 무료화되는 순간 매년 2조, 3조, 4조원 등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급병실료나 간병서비스도 무턱대고 고가 진료를 요구하는 풍조가 만연돼 건강보험 재정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노인들은 공짜라면 아예 병원에서 살려고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없는 병도 만들어 병원에서 요양하고, 병원도 정부지원금을 빼먹기 위해 환자와 결탁하는 모럴 해저드도 발생할 수 있다.

# 기초연금 20만원

[Cover Story] 복지 공약 지키는데 130조~270조원 든다고?
사회가 노령화되고 노인빈곤 문제가 커지자 박 당선인은 기초연금 공약을 꺼냈다. 65세 이상 전체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것. 이 공약이 시행되면 첫해인 2014년에만 9조원 이상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 정부는 현재 소득 하위 70%에 속한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9만7000원씩을 기초노령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것을 20만원으로 올릴 경우, 전체 예산은 15조원으로 늘어난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계산이다. 올해 책정된 기초노령연금 예산(국비+지방비) 4조3000억원보다 훨씬 늘어난다. 5년간이면 75조원 이상이 드는 셈이다.

복지부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전만복 복지부 기획조정실장이 인수위원들에게 비공개로 브리핑을 할 정도로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 빚청산용 행복기금

차기 정부는 저소득층의 신용불량을 해소하기 위해 악성 부채를 탕감해주는 공약을 내걸었다. 14조원 정도가 들 것이라는 추계가 나와 있는 상태다. 20조원이 될지, 30조원이 될지 누구도 모른다. 5년간을 계산하면 추정 예산은 어마어마하게 불어난다.

빚을 나라가 대신 갚아주겠다는 후보가 당선되자마자 시중에선 벌써 “돈을 더 빌려 써라” “어차피 나라가 갚아준다더라”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일부 대부업자는 500만원을 더 빌려 써도 나라가 갚아준다며 ‘추가 대출’을 부추기고 있다. 신용불량 상태에 아직 빠지지도 않은 사람은 행복기금 시행을 앞두고 신용불량을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모럴 해저드는 이미 0~5세 영유아 보육·양육수당 지원 발표 때에도 나타났다. 전면 무상보육으로 보육 능력이 있는 부모조차 보육시설을 이용, 정작 보육이 필요한 가난한 맞벌이 부부의 기회가 박탈됐다. 특히 무상지원금이 더해지면서 보육비가 전체적으로 인상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만원을 더 벌기 위한 보육원의 마케팅에 부모들이 공짜돈 쓰듯 선뜻 지불하고 있다. 결국 20만원짜리가 40만원짜리가 됐다.

# 등록금 반값

박 당선인은 교육 공약에 ‘소득연계 맞춤형 반값 등록금 지원’ 항목을 넣어 소득 하위 80%까지 소득연계 맞춤형 국가장학금을 지원하겠다는 방안도 밝혔다. 소득 분위에 따라 차등을 두고 등록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7조원 정도가 들 것이란 예상이 있다. 셋째 아이부터 대학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공약비용도 만만치 않다. 취약지역에 국공립 보육시설을 매년 50개씩 새로 만들고, 해마다 100개씩 기존 운영시설을 국공립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은 별도다.

문제는 비용 마련이다. 130조원이든, 270조원이든 예산 마련이 불가능에 가깝다. 박 당선인 측은 130조원을 기준으로 71조원을 세금을 잘 조절해 써 마련하고, 세금을 잘 걷을 수 있는 방법개발 등을 통해 48조원을 더 걷고, 복지와 관련한 행정개혁으로 10조원 등을 조달하면 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세제 개편과 세출 구조조정 등으로는 절대로 복지비용을 충당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대규모 복지를 실행하면서 발생한 복지행정 비용과 낭비가 더 커질 것으로 우려한다. 복지는 실행하는 과정에서 드는 인건비, 조사비 등으로 40%가 소비된다는 게 정설이다. 국채를 발행해 복지예산을 마련하자는 얘기도 있으나 결국 미래 청년들에게 빚더미를 안기는 꼴이다. 공약을 안 지키자니 큰일이고, 지키자니 더 큰일인 형국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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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다 복지 경계하는 '공유지의 비극' '코브라 효과'

복지국가는 필연적으로 실패한다고 보는 시각을 설명하는 두 가지 현상이 있다. 첫째는 공유지의 비극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목초지를 주인 없이 여러 사람이 공짜로 이용하도록 할 경우 사람들이 목초지를 보호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자기 소유의 가축을 먹이는 데만 열중해 결국 목초지가 사라져버린다는 현상이다.

정부가 제공하는 의료 등의 무상 복지서비스도 공유지처럼 공짜이기 때문에 소비하려는 사람이 많아져 결국 나라살림을 거덜낸다. 복지국가에서는 작은 일에도 병원을 찾는 사람이 흔하다. 환자 수가 많아 대기시간은 길고 진료시간은 짧아지는 문제도 나타난다. 영국 스웨덴 독일이 그랬다. 그래서 이들 국가는 복지정책에 대대적인 수술을 가했다.

코브라 효과는 복지가 의외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설명한다. 영국의 인도 식민지 총독부는 코브라 뱀으로 골머리를 앓자 정책을 하나 발표했다. 코브라 머리를 잘라오면 한 마리당 돈으로 보상하는 정책이었다.

처음에는 이 정책이 성공한 듯 보였다. 잡아오는 코브라 수가 점차 증가했다. 총독부는 코브라 뱀이 조만간 사라지리라는 기대로 아주 즐거워했다. 그러나 정책을 실시한 지 2년이 지나도 잡아오는 코브라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증가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상하게 생각했던 총독부는 이유를 조사했다. 인도시민들은 처음엔 열심히 코브라를 잡았지만 나중에는 집집마다 우리를 만들어서 코브라를 키우고 키운 것들을 잡아서 보상을 받고 있었다. 총독부는 결국 코브라 정책을 포기했다. 복지정책이 엉뚱한 결과를 낳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