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사 여행] "시장은 개인행동의 결과"…경기변동이론으로 美대공황 설명
(4) 자유주의 경제학의 선구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


오스트리아 태생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중요하게 여긴 사회적 기본가치는 사유재산, 자유 그리고 평화다. 이들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하는 것은 번영의 원천인 자유시장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자유주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미제스의 평생에 걸친 과제는 사회와 경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체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주목을 끄는 것은 오스트리아학파의 전통을 이끈 미제스의 방법론이다. 그는 우리가 가격, 화폐, 시장, 법과 도덕, 관습 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개인의 행동에서 출발해(개인주의), 그런 경제 현상을 개인들끼리의 상호작용 결과로 설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간 행동은 자신의 목표(동기)와 지식(인지)을 통해 나타나는데, 그 행동목표와 지식은 개인 각자에게 있어 고유하다는 의미에서 주관적(주관주의)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래서 인간을 다루는 경제학은 자연과학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미제스는 수리계량적 방법을 믿지 말라고 충고한다. 통계자료는 복잡한 인간 행동 과정의 역사적 흔적일 뿐, 이는 미래지향적인 인간 행동과 시장 과정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주관적인 기대는 말로조차 표현할 수 없는 암묵적 지식으로 구성돼 있다. 케인스의 소비함수처럼 총계변수는 ‘행동하는 인간’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총합변수가 마치 행동하는 것처럼 꾸며서 시장경제를 다루기 때문에 거시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다. 절반의 주관주의로 일관하는 균형론의 미시분야도 쓸모없다.

미제스의 자유시장 비전도 흥미롭다. 시장경제는 정확하게, 그리고 적시에 분업적 경제를 조정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와 유인을 산출한다. 그래서 시장사회는 자유와 문명의 불가분의 조건이다. 그것은 소비자 중심 사회라는 점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생산의 최종 목적은 소비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기업이 돈을 번 것은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봉사했다는 증거다. 동네 빵집이 어려워진 것은 대기업에 속한 빵집 때문이 아니라 대형 빵집을 찾는 소비자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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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의 소비자 중심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국가의 개입을 부르게 되는데 그 결과는 모두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대기업 규제와 중소기업 보호를 특징으로 하는 ‘경제민주화’도 소비자 중심 원리에 저촉되고 그래서 위험하다는 의미다.

미제스는 국가의 특혜나 인허가 등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법적 장애물이 없다면 잠재적 경쟁의 존재 때문에 ‘독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시장경제는 경제력 남용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대기업을 규제하면 이는 경쟁 보호가 아니라 경쟁적인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경쟁 제한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미제스의 이런 주장은 신(新)경제사가들이 미국의 독점금지 정책사를 분석해 입증했다. 미국은 1890년 셔먼의 독점금지법과 그 이후 다양한 입법으로 시장경제에 개입했지만 싼값으로 질 좋은 상품을 공급하는 경쟁적인 기업의 활동만을 억제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도 재고돼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미제스는 시장경제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불평등은 과학기술과 노임 상승,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인 자본 축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시장경제가 빈익빈 부익부를 야기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대한다. 시장경제의 변화와 역동성, 불확실성으로 계층 사이의 이동성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제스 사상은 개인주의와 주관주의를 기초로 해 통화이론, 자본론, 이자이론을 개발하고 이들을 통합, 개척한 경기변동이론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 핵심 내용은 경기변동은 순전히 화폐적 현상이고 이는 통화신용팽창으로 시장이자율이 낮아져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투자를 유도, 당장은 호황이지만 장기적으론 불황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과 통화를 늘릴 경우 이는 정상 회복을 방해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장기불황을 설명해주는 미제스의 지혜다.

미제스의 경기변동이론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잘 설명해준다. 케인스가 믿었던 것처럼 유효수요의 부족이나 마르크스주의가 희망한 것처럼 자본주의 위기의 탓이 아니었다.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처럼 단순히 돈을 줄인 탓도 아니었다. 미국 중앙은행이 통화를 늘려 인위적으로 만든 경제 붐이 불가피하게 터진 결과였다. 그 불경기가 전대미문의 대공황으로 이어진 것은 소득세 인상, 보호무역 그리고 각종 규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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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수상할 단 한 명의 경제학자를 꼽으라면 단연 미제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경제학 방법론에서부터 경제이론과 경제철학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경제학의 발전을 위한 그의 선구자적 공헌은 지대했다. 균형이론의 미시, 수리와 통계, 그리고 거시경제학으로 척박한 경제지식계에 숨통을 터주는 그의 자유주의 경제학은 영원히 필요할 것이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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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비판해 주류학계에서 냉대…자유주의 토대 세워 21세기들어 재평가

미제스 사상의 힘

미제스 사상은 사회주의, 케인스주의, 복지국가 등의 집단주의가 시대 정신으로 인식되던 시기에 등장했다. 그는 사회주의를 가장 통렬하게 비판한 자유주의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손익계산에 필수적인 가격의 형성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며 결국 망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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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제스의 주장을 믿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슘페터는 순수한 논리로 보면 사회주의는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던 새뮤얼슨은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지기 몇 개월 전까지도 소련과 같은 사회도 번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군나르 뮈르달, 케네스 애로, 모리스 알레 등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도 사회주의를 그런 식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망했다.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 미제스의 말이 적중했다.

미제스는 간섭주의도 유용한 체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시장에 대한 간섭은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 때문에 또 다른 규제와 간섭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간섭주의도 결국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제3의 길과 같은 중도(中道)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의 주장이 타당했다는 것은 스웨덴과 독일의 복지국가 정책 실패가 입증한다.

안타깝게도 미제스는 그의 경제학에 대한 공헌에 비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노벨상 수상자도 되지 못했고 심지어 주류학계는 그를 냉대했다.

미제스는 결코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다. 오늘날 자유주의 이념이 살아 있는 것이 그의 불굴의 투지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21세기에 다시 인정받고 있다.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무릅쓰고라도 돈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압도적이고 환경, 주택과 건강, 교육 문제에서 사회주의와 간섭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시류에 영합하는 중도가 아닌 미제스와 같은 원칙적 자유주의자가 더 절실해진 배경이기도 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등에 만연하고 있는 세계적인 경제침체에 직면해 국가주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자유와 개인주의의 적(敵)이 산재해 있는 이런 상황에서 분명한 세계관과 확고한 사회이론이 없으면 사회적 혼란은 필연이다. 여기에 큰 힘이 되는 것이 미제스의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