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우향우' 하는 일본…긴장감 높아지는 동북아
“일본을 되찾자.” 최근 일본의 보수정당인 자민당이 내건 슬로건이다. 다른 국가들의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강한’ 일본을 되찾자는 의미다. 자민당은 동시에 군대 보유와 군비 확대 등 극우적 정책을 총선 공약으로 내놓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와 관련,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부각되면서 일본이 눈에 띄게 우경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아시아 지역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일부의 망언(妄言)이란 식으로 취급돼왔던 ‘소수 극우파’에 의한 우경화가 아니다. 자민당은 오는 16일 총선에서 집권이 확실시되는 주류 정당이다. 극우정당인 일본유신회의 지지율 상승세도 가파르다. 일본의 장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중국이 부상하자 이에 위기를 느낀 국민이 ‘강한 일본’을 외치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총선 앞두고 '극우 공약' 급증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는 지난달 21일 일본 내 극우 정치세력의 주장을 고스란히 반영한 총선 공약을 공식 발표했다. 동맹국이 공격받을 경우 타국을 공격할 수 있는 권리인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에 대한 해석을 변경하고 국방력 강화를 위해 자위대의 인원과 장비, 예산을 늘리기로 했다. 총선공약과 함께 일본의 군대(국방군) 보유를 명기한 개정헌법 초안도 제시했다.

시마네(島根)현에서 매년 2월 열리던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의 날’ 행사를 정부행사로 승격하고 중국 등과의 영해 충돌을 고려해 해상보안청을 강화하는 공약도 제시했다. 교과서 검정제도도 뜯어고쳐 주변국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 ‘근린제국조항’을 수정하기로 했다. 우익적 시각에서 교과서를 전면 개편하겠다는 의도다.

자민당이 총선에서 집권한다 해도 참의원·중의원 3분의 2의 동의와 국민투표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실제 개헌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역사 왜곡, 집단적 자위권 도입, 군비 확충 등은 관련법 제정이나 헌법 재해석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극우 공약에 동의하는 국민도 늘어나고 있다.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제9조의 개정 필요성을 묻는 최근 도쿄신문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46.2%로 반대 35.1%보다 높았다.

#위기의식의 반영인가?

일본의 우경화는 장기 침체로 인한 국력 쇠퇴와 중국의 군사 대국화가 겹치면서 커진 위기의식의 반영이라는 분석이다. 한 일본 전문가는 “나라가 어려울수록 국수주의와 민족주의 등을 강조하는 우경화가 약발을 발휘한다”며 “일본의 이런 행동은 그만큼 일본의 상황이 경제·사회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놓였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특히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을 겪으면서 극우파들은 “중국의 침략이 임박했다”는 식의 중국 위협론으로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영향도 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TPP(환태평양동반자협정), 소비세인상, 탈원전 등이다. 하지만 자민당이 TPP 참가 여부에 대해 당내 반발이 많고 원전 유지도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 헌법 개정과 군비 확충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왜곡된 역사 교육을 받은 전후세대(戰後世代)가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극우 정치인들이 활개를 치는 배경이다. 젊은이들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을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중국과 마찰 가능성

강성 국가주의로 흐르는 일본에 대해 미국은 난감해하는 눈치다. 한층 강화된 국력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힘의 외교’를 펼쳐나갈 시진핑의 중국과도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중국 러시아와 벌이는 영토 분쟁 역시 격화할 조짐이다. 한국과의 독도 분쟁도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 정부는 일본 자민당의 ‘극우 공약’ 발표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아베 총재가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의 공약을 발표한 것은 매우 유감”고 말했다.

일본 내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꾸겠다”는 공약엔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라도 날리겠다는 것이냐”(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비판이 쇄도했다. 심지어 자민당 내부와 제휴 파트너인 공명당에서도 반발이 쏟아졌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위안부 문제는 미국와 유럽에서도 엄격하게 주목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고은이 한국경제신문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