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전운 짙었던 中東…휴전 합의로 급한 불은 껐지만…
지난 14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최고 사령관이 이스라엘 공격으로 사망한 이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보복 공격이 계속됐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1500곳을 타격했고,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1000여발의 로켓과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스라엘이 병력을 가자지구 접경에 배치하며 지상군 투입을 검토했지만 미국과 아랍권 등의 중재로 양측은 휴전에 합의했다. 이스라엘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국제 사회의 압력에 못 이겨 이집트가 제안한 휴전안을 받아들인 셈이다.

#예루살렘 공격에 대대적 보복

17일 하마스는 예루살렘으로 로켓탄 한 발을 발사했다. 예루살렘 근처까지 로켓이 날아온 것은 1970년 이후 42년 만이다. 로켓탄은 예루살렘 외곽 빈터에 떨어져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는 예루살렘 공격 사실을 인정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아랍권의 성지여서 하마스의 예루살렘 공격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날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경제 중심지인 텔아비브에도 로켓탄을 쐈다고 밝혔다. 텔아비브는 하마스의 거점인 가자지구에서 북쪽으로 약 80㎞ 떨어져 있다. 포탄은 텔아비브 앞바다에 떨어져 별다른 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에서 상대적으로 안전지역으로 간주되던 텔아비브가 공격받은 것은 1991년 걸프전 이후 처음이다.

이스라엘 역시 최근 하마스 본부를 포함한 가자지구 내 수백 곳에 폭탄을 투하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공격하자 보복 공격에 나선 것이다. 교전이 촉발된 14일 이후 팔레스타인에서는 147명이 사망했고 이스라엘도 5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망자는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이 14일 아흐마드 자바리 하마스 최고 사령관을 표적 살해한 것이 결정적 배경이 됐다. 하마스는 앞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영적 지도자인 살라 셰하데와 아흐메드 야신, 군사령관 압델 아지즈 란티시 등을 잇따라 잃었다. 이에 따라 하마스가 로켓포로 보복, 이스라엘에서도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이스라엘이 자위권을 내세우며 보복 폭격을 개시한 것이다.

#아랍연맹"이스라엘 규탄"

아랍연맹(AL)은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지난 18일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과 사태 해결을 위한 정상회담을 가진 뒤 “이스라엘이 아이들을 비인간적으로 학살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서방은 이스라엘을 두둔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비롯해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 통화하면서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은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이 이번 충돌을 촉발한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전쟁은 시간이 흐르며 과격한 양상을 보였다. 하마스 산하 한 무장조직은 이날 가자시티 교차로에서 이스라엘에 협력한 것으로 의심되는 주민 6명을 총살했다. 이들은 총살된 6명이 이스라엘에 하마스 무장대원 명단과 로켓 발사 장소 등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총살 현장에 모인 군중들은 시체에 침을 뱉고 머리를 차는 등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정전협상 난항끝에 결국 합의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정전 협상을 시작했지만 진행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AFP통신은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정전 합의 발표를 부인했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정전 여부를 놓고 고심한 것은 무엇보다 미국, 유럽 등의 반대에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을 계속할 경우 서방 ‘우군’의 지지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접경 국가인 이집트나 시리아, 요르단 등 아랍권 국가들과의 관계 악화도 불가피하다. 사망자 대부분이 민간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탄이 이어졌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사태가 지속되면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20일 이스라엘을 방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비공개 회담을 갖고 종전을 촉구했다. 전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 정전을 압박했다.

결국 가까스로 휴전은 합의됐다. 협상을 중재한 이집트의 무함마드 카멜 아무르 외무장관은 21일 오후 카이로에서 힐러리 장관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휴전 합의는 21일 오후 9시를 기해 발효된다”고 발표했다. 휴전 합의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각각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적대행위를 중단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하마스는 가자 지구에서 모든 팔레스타인 분파들이 로켓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김동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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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왜 싸우지?

19세기 후반 '시오니즘'이 불씨

[Global Issue] 전운 짙었던 中東…휴전 합의로 급한 불은 껐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19세기 후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시온)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즘’ 운동에서 시작한다. 이 운동으로 유럽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아랍인들과 충돌했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아서 밸푸어 영국 외무장관은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민족국가를 인정하겠다는 ‘벨푸어 선언’을 했다. 이는 미국 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 미국을 1차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아랍인에게도 팔레스타인을 포함해 독립국가를 약속한 ‘맥마흔 선언’을 했다. 양자 모두에게 팔레스타인을 내주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전쟁의 불씨를 만들었다.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은 그 후 네 차례(1947·1956·1967·1973년)의 전쟁을 치렀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통해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 등을 점령했다.

아랍세계와 이스라엘은 1979년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해 숨을 돌린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맺은 이 협정으로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시나이반도에서 철수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했다. 하지만 다른 아랍국들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스라엘도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골란고원의 반환을 거부해 불화가 커졌다.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살폭탄 공격과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양측에서 많은 희생이 잇따랐다. 중동 평화를 위한 여러 협정들이 체결된 결과 2003년 6월 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은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창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중동평화로드맵’에 서명했다. 2005년 9월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완전 철수했다.

하지만 유대인 정착촌 철거를 선언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2006년 뇌졸중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돼 개혁 추진이 중단됐다. 2009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취임하면서 양측의 분쟁은 다른 국면을 맞게 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유대인 정착촌 건설 중단을 원하는 미국과 프랑스의 요구를 거절하는 등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