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5년마다 칼질당하는 정부조직…새정부 '대수술' 예고
또다시 ‘쪼개고 붙이고 새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됐다.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후보가 제시하고 있는 정부 조직 개편 공약들에는 부활과 해체, 신설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5년 주기로 개편을 반복해온 정부 조직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대수술이 예고되면서 조직 안정성과 업무 연속성 저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직 변화에 따른 득실을 놓고 관료들의 눈치 보기가 극에 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권 입맛따라 쪼개고 붙이고


최근 주요 대선 후보 캠프에 따르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현 15개 중앙 부처를 17개로 2개 늘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과거 과학기술부 업무 영역과 정보방송통신(ICT) 분야를 아우르는 미래창조과학부 신설과 해양수산부 부활이 핵심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 과기부, 정보통신부, 해수부 부활은 물론 중소기업청을 중소상공부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국가 장기계획 수립을 담당하면서 예산권을 갖는 미래기획부 신설과 해수부 부활을 예고했다.

문제는 이 같은 개편이 대통령 5년 단임제 국가에서 너무 잦다는 점이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설치한 국토안보부를 제외하곤 1988년 이후 현 행정조직을 24년째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01년 관료주의의 상징이던 대장성을 없애고 부처 수를 절반으로 줄인 뒤 10년 넘게 12개 성청(省廳)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반면 한국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무려 8차례에 걸쳐 조직의 틀을 바꾸면서 부처 통합 15건, 부처 신설 5건 등 총 20건의 개편이 이뤄졌다. 뗐다가 붙이는 과정도 복잡하기 짝이 없어 웬만한 공무원들은 제대로 기억하기도 어렵다. 1994년 체신부에서 확대 개편한 정통부의 경우 2008년 4개 부처로 쪼개져 흩어졌다. 장용석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무작정 개편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며 “물리적인 이합집산보다 기능별로 부처 간 업무 연계를 강화하는 행정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Focus] 5년마다 칼질당하는 정부조직…새정부 '대수술' 예고

#공약 실천에 필요 vs 안정성 저해


물론 정부가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와 공약사항이 다른 만큼 조직도 그에 맞춰 유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새 대통령이 자신의 철학과 공약을 구현하기 위해 개편에 나서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대 정권이 저마다 혁신논리를 앞세우며 큰 폭으로 정부조직을 흔들면서 관료들의 피로감 또한 큰 것이 현실이다. 새 조직이 안착하기까지는 대개 1년 이상 걸리는 만큼 조직과 업무의 안정성도 저해되기 십상이라는 지적이다.

요즘 정부조직 개편 공약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부처는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과거 정보통신부와 해양수산부 조직을 복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지경부는 옛 정통부의 정보기술(IT) 산업정책 부문을 흡수했고, 국토부는 해수부의 조직 대부분을 흡수해 탄생한 부처다. 특히 과거 정부 출범 때마다 ‘상공부→상공자원부→통상산업부→산업자원부’ 등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조직 개편의 중심에 서 있었던 지경부는 정통부 복원으로 산업 정책의 중요한 한 축인 IT 분야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반면 해수부 부활에 대한 국토부 반응은 엇갈린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존 건설교통부 출신 직원들은 업무 시너지를 강조하며 부처 분리를 반대하지만 옛 해수부 출신들은 해양자원 개발 및 해양주권 강화를 위해 해수부 부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재경부에서 떨어져 나와 금융위원회로 이동한 공무원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될 경우 금융정책부서 공무원들은 기획재정부로의 통합 대상에 오르는 동시에 세종시로 이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처간 공동관리시스템 주장도

중앙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5년마다 반복되는 정부 조직개편의 효용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한 중앙부처 1급 인사는 “부처 개편으로 조직을 세팅하는 데 1년, 새 정책을 짜고 업무에 적응하는 데 1년 등 새로운 조직이 본격적인 정책을 펴는 데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며 “대통령 5년 단임제 시스템에서 너무 잦은 조직개편은 오히려 국가적인 손실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인위적인 조직개편보다는 부처 간 공동목표 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장용석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세운 큰 목표를 중심으로 각 부처들이 공동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영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부처 조직개편은 중소업계, 해양업계 등의 집단적 요구를 들어주는 창구로 오남용될 때가 많다”며 “부처 안의 국(局) 또는 실(室) 차원의 변화로 부처 단위의 개편을 대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정호/류시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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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50여년간 신설 부처 5개 불과

우리나라의 정부조직 개편이 얼마나 빈번하게 이뤄지는지는 미국 일본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 조직은 1960년대 이후 큰 변화가 없다. 15개 중앙부처 중 지난 50여년간 신설된 부처는 주택도시개발부와 교통부(1966년) 에너지부(1977년) 교육부(1979년) 보훈부(1988년) 국토안보부(2002년) 등 5개에 불과하다. 2001년 9·11 테러로 국토안보부가 설치되기까지 14년간 신설 부처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미국의 행정부처는 전통적으로 대부처주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상무부의 경우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 해양수산부 기능까지 포괄하고 있고 국가 연구·개발(R&D)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2001년 1부 22성청(省廳)을 1부 12성청으로 축소한 일본 역시 10년이 넘는 준비 기간을 거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거품경제 붕괴로 불황에 시달리던 일본은 조직개편을 통한 정부 부문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췄다. 예산, 세제, 금융 등 경제정책 권한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대장성은 예산과 세제 업무를 담당하는 재무성으로 축소됐다. 금융정책 및 금융감독 업무는 신설된 금융청으로 넘어갔다.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이 문부과학성으로 통·폐합됐고 통상산업성은 경제산업성으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한 대선 후보 캠프의 관계자는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에선 정부가 바뀔 때마다 조직을 떼었다 붙였다가 하는 일이 반복되는데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조직 안정과 연속성을 해친다는 주장은 공무원들의 조직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