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 재선에 성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상 첫 연임 흑인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오바마 대통령은 7일 오전 개표 결과 전국 538명의 선거인단 중 303명을 확보, 206명을 얻은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전국 유권자 득표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5967만여표(50%)를 얻어 5705만표(48%)를 획득한 롬니 후보를 262만표 차이로 앞섰다. 전국 득표율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이긴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인단 확보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데는 자동차 등 공업도시가 밀집한 중서부 지역의 경합주와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 비중이 높은 플로리다 등에서의 승리가 결정적이었다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 연설에서 “미국 경제는 회복 중이며 전쟁이 끝나고 선거도 끝났다”며 “이제 의회와 함께 재정적자, 세금개혁, 이민개혁, 에너지 문제 등 당면 과제를 풀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 상·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은 상원을, 공화당은 하원을 장악했다.

#美사상 첫 흑인 재선 대통령

“미국인들은 레이건 시대의 ‘작은 정부’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서 승리한 의미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7일자 사설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세금 인하와 규제 완화 등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슬로건을 내걸었던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의 주장이 유권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부유층의 세금을 올려 세수를 확대하고 재정지출을 늘려 경제를 살리겠다는 오바마의 경제정책이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정부 주도의 경기부양책이 더욱 힘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에서 이제 막 회복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롬니 후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실업률(43개월 연속 실업률 8% 이상), 2배 이상 오른 유가, 중산층의 몰락 등 오바마의 4년간 경제성적표를 근거로 정권 교체를 역설했다.

롬니 후보와 가장 차별화된 오바마의 핵심 공약은 부자 증세다. 연 소득 20만달러(부부합산 25만달러) 이상 국민에게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의 감세 혜택을 중단하고 빌 클린턴 행정부 때의 세율(소득세율 35%→39%)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늘어난 세수로 가난한 사람을 교육시키고 의료보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재정지출 등 부양책 이어질 듯

오바마 1기 행정부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남겨 놓은 금융위기의 상처를 고스란히 떠안고 출발했다. 오바마는 7800억달러의 경기부양책을 통해 금융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벼랑 끝에 몰린 자동차산업에 수백억달러의 긴급 구제금융을 지원해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를 살렸다. 또 정부 지출 확대와 기업의 세금 부담을 동반하는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를 밀어붙여 3000만명의 서민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했다.

이 같은 정부 주도의 경제회생 정책은 2300만명의 실업자, 4년 연속 연간 1조달러 이상의 재정적자 등으로 빛이 바래고 말았다. 하지만 중서부 공업벨트, 즉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등 경합주의 블루칼라들은 오바마의 손을 들어줬다. 이곳은 자동차산업 등 산업단지가 밀집한 곳이다. 자동차산업이 회생하면서 일자리 창출 등 경기부양의 최대 수혜지역으로 꼽힌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확대하고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책을 더욱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무부 중소기업청 무역대표부 등 중앙부처 9개를 거느리는 기업부 장관직을 신설해 기업에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교육과 연구·개발(R&D), 그린에너지 등에 대한 정부 투자와 이 분야에서의 일자리 창출이 정부 주도로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버냉키 의장 연임 여부 관심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수성에 성공하면서 2기 행정부 인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확실하게 교체가 예상되는 자리는 재무장관이다. 2009년부터 3년째 오바마 경제팀을 이끌고 있는 티머시 가이트너 장관이 올해 초 “2기 행정부에는 들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들은 가이트너의 후임으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어스킨 볼스 페이스북 이사와 제이컵 루 백악관 비서실장을 꼽는다. 두 사람 모두 예산 전문가다. 볼스 이사는 2010년 앨런 심슨 공화당 상원의원과 함께 재정적자 감축방안을 마련했던 인물이다. 당시 이들이 제시한 감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에 그를 중용할 경우 공화당과의 타협을 통해 ‘재정벼랑(재정지출 삭감에 따른 충격)’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2014년 임기가 완료되는 벤 버냉키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연임 여부도 관심거리다. 차기 Fed 의장에는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재닛 옐런 Fed 부의장 등이 거론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교체 가능성도 높다. 그동안 공공연하게 장관직을 그만두겠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주 리비아 미대사관 피습사건을 해결할 때까지 장관직을 수행하겠다는 뜻을 밝혀 다소 셈법이 복잡해졌다.

남윤선 한국경제신문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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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한 희망' 외친 '검은 JFK'

오바마는 누구?

“흑인의 미국도, 백인의 미국도, 아시아계의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입니다.”

2004년 7월27일 무명 정치인 버락 오바마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연설로 그는 정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 여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Global Issue] 재선 성공한 오바마…'큰 정부론' 힘 받을까?
오바마는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61년 8월4일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의 이혼과 인종 정체성 혼란 등을 겪으며 어두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방황을 딛고 명문 컬럼비아 대에 입학한 오바마는 하버드 법대를 거쳐 인권 변호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2008년 오바마는 ‘변화(change)’를 앞세워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 됐다.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으며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던 미국인들은 오바마에 열광했다. 그를 ‘검은 JFK(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라고 불렀다.

대통령에 오른 오바마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지명, ‘링컨식’ 포용정치를 실행에 옮겼다. 대외적으로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냈고,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적으로는 유럽발 금융위기 등 대외변수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기를 겪던 미국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놨다는 평가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