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포획이론


규제는 부의 재분배적 성격 때문에 정부로부터 편익을 얻기 위한 이익단체 간 치열한 경쟁을 야기한다. 그러나 이런 경쟁은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이다. 규제가 이와 같은 성격을 지녔음에도 왜 항상 생겨나는가. 스티글러 교수는 규제자가 피규제자들에게 사로잡혀 이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개선하기 위해 규제를 만들어내는 규제의 ‘포획이론’ 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10월 26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자칫 이익집단의 포로가 되기 쉬운 선거
☞ 대통령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후보들의 발길이 더 바빠지고 있다. 연일 현장을 찾아다니며 한 표를 호소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22일 노동계와 택시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열심히 노력하고 계신 데도 불구하고 현안이 많다”며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억울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전날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의 심리치료 공간인 와락센터를 찾아 이들을 위로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25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송전탑 위에서 고공 농성 중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정치인들이 소외된 사회 계층을 찾아 위로하고 삶의 희망을 불어넣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인들의 행보를 선의로만 바라보는 것 또한 순진하다고 볼 수 있다. 일찍이 정치인들의 행동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학자들이 있었는데 ‘포획이론’을 내세운 조지 스티글러(George Joseph Stigler) 교수와 ‘공공선택학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 교수가 그들이다. 시카고대 교수 등을 지낸 스티글러 교수는 정부 규제의 원인과 효과에 관한 연구로 198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뷰캐넌 교수도 198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다. 이들은 정치가의 이런 행보는 “기업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정권을 잡기 위한 것”이며 “정치인들은 전체 사회의 이익보다는 종종 특정 이익집단의 포로가 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스티글러가 계량분석을 통해 밝힌 것은 (정부나 정치권의) 규제는 시장경제를 개선해 보편적 이익을 증진하는 게 아니라 파괴할 뿐이라는 점이다. 규제로 인해 이익을 얻는 집단들은 끊임없이 정부(정치권)로부터 편익을 얻기 위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규제집단이 오히려 피규제집단에 의해 포획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규제자가 규제를 통해 사회 전체의 후생을 높이는 게 아니라 피규제자들에게 사로잡혀 이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규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규제자가 피규제자와 다정하게 지내야 뇌물, 전관예우 등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부실 사태에서 규제기관인 금융감독원이 피단속기관인 저축은행에 포획된 것, 정치권이 특정 이익단체만을 위한 법을 제정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포획 사례다. 1970년 이전만 해도 정부의 규제담당자는 사익을 버리고 전적으로 공익에 헌신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스티글러는 관료나 정치인들도 공익보다는 사익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경제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뷰캐넌은 “정치도 일종의 경제적 행위이며 비즈니스의 하나”라고 말한다. 기업인들이 이기적이라면, 정부의 관료와 정치가들 역시 ‘정치적 사업가(political entrepreneur)’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자칫 이익집단의 포로가 되기 쉬운 선거
다만 서로 추구하는 게 다를 뿐이다. 이윤 극대화가 기업인의 목표라면 정치적 사업가들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게 목표다. 정치가들은 평소엔 정부의 예산 낭비를 앞다퉈 비난하지만 막상 선거철이 되면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온갖 민생정책에 찬성표를 던진다. 정치가들은 왜 이처럼 위선적(?)으로 행동할까? 뷰캐넌에 따르면 이는 체제적인 요인 때문이다. 정치가들은 유권자를 즐겁게 해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정부지출을 늘려 ‘공짜 혜택’을 안기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 예산을 무분별하게 지출하고 과도한 재정적자를 초래한다. 그리고 그 부담을 다음 세대로 넘기고 있다”는 게 뷰캐넌의 결론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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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체들의 심리 상태 살펴보면 경기를 알 수 있어

경제심리지수와 유동성함정

기업의 경기실사지수(BSI)와 소비자동향지수(CSI)를 합성한 경제심리지수(ESI)가 4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6개월 연속하락세를 이어갔다. 한국은행은 29일 ‘10월 BSI 및 ESI’ 자료를 통해 ESI가 기업 부문의 심리 위축 등으로 전월보다 2포인트 내린 87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2009년 3월 72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 10월 29일 연합뉴스

☞ 경기란 경제 각 부문의 평균적인 상태, 즉 ‘국민경제의 총체적인 활동수준’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다는 것은 생산 투자 소비 등이 통상 기대하는 평균수준 이상으로 활발한 경우다. 경기는 확장(expansion)→후퇴(recession)→수축(contraction)→회복(recovery) 과정을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변동한다. 이를 경기순환(business cycle)이라고 한다.

경기를 판단하는 방법에는 △건설수주액, 소매판매액지수 등 개별 경제지표를 활용하는 방법 △개별 경제지표를 가공한 종합 경제지표를 활용하는 방법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심리 상태를 활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BSI와 CSI는 이가운데 경제주체들의 심리 상태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자칫 이익집단의 포로가 되기 쉬운 선거
케인스의 국민소득 항등식에 따르면 국민소득은 가계의 소비(C), 기업의 투자(I), 정부지출(G), 수출입 차이(X-M)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말해 한 나라 경제규모가 얼마나 성장하는지, 국민들의 소득은 얼마나 늘어나는지는 이들 네가지 요소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경제주체들이 미래를 밝게 보면 소비와 투자를 늘릴 것이기 때문에 국민소득도 자연히 증가하게 된다.

BSI(Business Survey Index, 기업실사지수)는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 기업가의 경기동향 판단·예측 등을 조사해 지수화한 것이다. 한국은행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의 무역협회 중기중앙회 등이 작성해 발표한다. 0~200의 값을 가지며 100을 초과할 경우 경기 낙관, 100 미만은 경기 비관, 100은 현재와 동일을 뜻한다. CSI( Consumer Survey Index, 소비자동향지수)는 가계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지수로 만든다. 통계청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이 작성한다. 역시 100을 넘어서면 경기 낙관을 의미한다. BSI나 CSI는 경기 전망을 긍정적으로 응답한 사람에서 부정적으로 응답한 사람을 빼고 이를 전체 응답수로 나눈 다음 100을 곱하고 100을 더해서 구한다. 따라서 BSI가 100 이상이라는 것은 경기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가가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가보다 많다는 뜻이다.

BSI 곡선을 경제 성장률(GDP 증가율) 곡선과 비교해보면 거의 겹쳐서 엇비슷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BSI나 CSI 곡선이 경기를 판단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한국은행은 그동안 BSI와 CSI만을 발표해오다 이 둘을 가공해 경제심리지수(ESI)라는 지수를 만들었다. ESI는 기업과 소비자를 모두 포함한 민간의 경제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다. ESI가 100을 상회(하회)하면 민간의 경제심리가 과거 평균보다 나은(못한) 수준인 것으로 풀이된다. 10월 ESI가 4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은 그만큼 경제주체들이 미래를 불투명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유럽의 재정위기 영향 등으로 수출이 부진한데다 선거 등이 겹쳐 기업이 투자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경제주체들의 이같은 불안감은 세계경제가 유동성이 넘쳐나고 있는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은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져있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