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복지재원 마련위해 부가세 인상한다고?
콜라 한 캔을 사도 세금을 낸다. 1000원짜리 콜라 한 캔을 살 때 사실 그 콜라를 파는 판매자가 받아서 가져가는 돈은 약 910원이다. 나머지 약 90원, 즉 가격의 10%는 부가가치세라는 이름의 세금이다. 이 세금은 판매자가 아닌 국세청에 세금으로 납부되는 돈이다. 부가세와 판매가가 더해져 소비자가격이 되는 셈이다.

부가세는 물건을 구입할 때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세금이다. 물론 최종 소비자만 부담하는 것은 아니고 원재료를 구입하고 이를 가공해 판매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모든 부가가치에 매입자가 부담한다.

이처럼 개인의 소득이나 형편에 관계없이 무조건 내는 세금이기 때문에 ‘세율을 올릴수록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소득재분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역진세(逆進稅)’로 알려져 있다. 월 소득이 100만원인 사람과 500만원인 사람이 동일하게 1000원을 세금으로 낼 경우 소득에 비해 세금 부담을 많이 지는 사람은 당연히 월 소득이 100만원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역진세다.

#저소득층에 부담 안준다?

부가세의 성격이 이런 탓에 정치권이 부가세 인상을 주장하긴 쉽지 않다. 부가세 인상안을 꺼낼 경우 ‘서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정당’이라는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세, 법인세 등 다른 세금은 돈을 많이 번 사람이 많이 내는, 이른바 누진세(累進稅)방식이다. 그런 세금 인상을 놔두고 왜 부가세를 건드리려고 하냐는 역풍이 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1977년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10%의 부가가치세를 도입했지만 그 이후로 한번도 부가세 인상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그런데 부가세를 올려도 저소득층의 부담이 커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부가세 인상 검토를 원천 차단했던 ‘저소득층에 부담 전가’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최근 ‘부가세가 저소득층에서 부담을 전가하는 세금이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주장을 담은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성명제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부가가치세율 조정의 소득재분배 효과:복지지출 확대와의 연계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여기서 “부가세를 인상하면 형평성 차원에서 부정적인 효과가 클 것이라는 우려는 사실과 다르다”며 “부가세 실효세부담률을 조사한 결과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대체로 일정했다”고 분석했다.

성 연구위원은 2010년 가계동향조사자료를 활용, 소득계층별 부가세 실효세부담률을 조사했다. 총소득 대비 실효세 부담률은 최하위 소득계층인 1분위가 3.6%였으며 3분위 3.6%, 5분위 4.0%, 7분위 3.7%, 9분위 3.5% 등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여기서 실효세 부담률이라는 것은 소득에 비해 내는 세금(부가세)의 비율을 뜻한다. 부가세가 역진세라면 고소득층일수록 실효세 부담률이 크게 떨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분석이다.

#"생필품은 부가세 안붙기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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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저소득층의 소비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생활필수품(쌀, 연탄, 버스료 등)의 경우 부가세 면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 게 성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반면 사치품의 경우 대부분 부가세 과세 물품이다. 부가세율을 올려도 저소득층에게 필수적인 생활필수품은 영향을 받지 않아 저소득층의 부담이 크게 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그는 부가세율 인상으로 늘어난 세입을 교육이나 보육 등 복지분야에 지출하면 오히려 소득재분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부가가치세가 한국보다 높은 것은 복지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소득재분배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2011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보다 부가가치세율이 낮은 국가는 일본(5%)뿐이다. 호주가 한국과 같은 10%의 부가가치세를 걷고 있고 영국(20%), 스웨덴(25%), 덴마크(25%), 벨기에(21%), 네덜란드(19%) 등 대부분의 나라가 20% 안팎의 높은 부가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 부가세 올리면 물가에 큰 영향

하지만 부가세 인상이 소득재분배를 악화시키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거둬들인 총 부가세는 2010년 49조1000억원을 기록, 연간 전체 국세세입(지방세 제외)의 27.6%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부가세율을 상향 조정할 경우 들어오는 세입도 늘겠지만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 부가세를 올릴 경우 실제 소비지출이 어떻게 변할지도 미지수다. 사치품 등의 소비가 줄 경우 오히려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조세연구원 역시 이런 점을 인정하고 부가세 인상은 ‘장기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부가세 인상을 위해선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데 세율 인상에 임박해서 그런 논의를 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조세연구원의 이 보고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부가세 인상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 부가세를 역진세로 오해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긴 기간의 준비와 논의가 필요하다.”

임원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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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부가세 인상 논란에 휘말린 일본

부가가치세 인상을 놓고 정치권이 논쟁을 거듭하고 이로 인해 정권이 타격을 입을 정도로 혼란을 겪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부가가치세(일본 용어로 소비세)가 가장 낮은 국가다. 1989년 처음 3%의 부가가치세율을 도입했고 1997년 이를 5%로 2%포인트 올린 것이 전부다.

세율을 인상할 당시 말이 많았다. 1996년 일본 경제는 버블 붕괴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인 2.63%를 달성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하시모토 내각은 1997년 부가가치세를 3%에서 5%로 전격 인상하고 의료비 부담을 올리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로 인해 물건값이 오르는 등 내수가 위축돼 결국 하시모토 내각은 실각하고 물러났다.
[Focus] 복지재원 마련위해 부가세 인상한다고?
부가가치세 논란은 2000년대 들어 고이즈미 내각 때 다시 불거졌다. 재정난 해소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소비세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 하지만 그때마다 소비자뿐 아니라 기업,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또 작년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부가가치세를 높이겠다고 해 논란이 재개됐다.

처음에 노다 총리는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안을 시행하려 했다. 하지만 여당 등의 반발에 직면하고 무려 46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지난 6월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자민·공명당이 소비세 인상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현행 5%인 소비세율을 2014년 8%, 2015년 10%로 단계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일본은 지금 막대한 국가부채를 메우기 위해 부가가치세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본에서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부가가치세 인상 논쟁.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