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다시 논술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제 수시 1차 논술 시험은 모두 끝났고 수능 이후 진행될 수시 2차 논술 시험이 남았습니다. 수시 2차 시험을 봐야 하는 수험생들은 34회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이 공부해왔던 논술에 대해 정리하고 복습하면서 논술의 감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시 2차 논술을 치르는 많은 대학들은 수능최저등급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수능최저등급을 맞출 수 있게 수능공부에도 신경 써야 하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34회에서 살펴봤던 성신여대 논술 2번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학생 글의 평가기준은 대학에서 제시한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제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성한 것이며, 평가 점수는 제 개인적인 판단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원하고 싶은 대학의 최신 기출 문제를 작성하여 페이지 하단에 있는 제 메일로 보내주시면 한 주에 한 명 혹은 두 명의 학생의 글을 채점, 첨삭해 드리고 관련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물리적인 여건상 많은 학생들의 글을 첨삭해드릴 수 없는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 2012학년도 성신여대 수시 논술 (3교시)
나 서양의 무력 도전에 대해 조선 정부 내부에서는 주전(主戰)인가 주화(主和)인가를 둘러싸고 의견이 나뉘었다. 예컨대 화서 이항로는 “지금 국론이 ‘주화’와 ‘주전’의 양끝으로 나뉘어 있는데, 서양을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쪽 사람의 이야기이고, 서양과 화의를 주창하는 것은 저쪽의 이야기입니다. ‘주전’에 바탕을 두면 나라 안에 옛 의상(衣裳)을 지킬 수 있지만, ‘주화’를 따르면 인륜은 금수(禽獸)의 세계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라 하였다. 외래의 사상과 문화는 부모와 자식 간이나 임금과 신하 간의 윤리라든가 태극과 같은 근본 원리에 대한 이해 없이, 재화와 여색만을 중시하는 오랑캐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의 선비들은 나라와 군주를 지키기 위한 충군애국(忠君愛國)이 아니라, 유교적 예교(禮敎)를 통해 인륜을 지켜나가는 것으로 일관했다. 서학(西學)은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사교(邪敎)인데, 인륜의 기본적인 부자 간의 도리와 군신 간의 신의를 부정하므로, 그것은 금수의 세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서양에 대한 ‘주화’냐 ‘주전’이냐 하는 것이 곧 인륜이냐 금수냐를 갈음하는 대결의 논리로 변했다. 외래문화의 유입에 대한 위기의식은 서학의 전래로 인한 전통적 가치 질서의 혼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양의 외압 성격이 점차 군사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으로 강화된 데다가, 또한 직접적이고 강력해지면서 노골화되었다.…(하략)…
-강재언 지음, 하우봉 옮김, 『선비의 나라, 한국유학 이천 년』에서 발췌·수정-
라 나는 마고자를 입을 때마다 한국 여성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한다. 남자의 의복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호사가 마고자다.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같은 다른 옷보다 더 값진 천을 사용한다. 또 남자 옷에 패물이라면 마고자의 단추다. 마고자는 방한용이 아니요 모양새다. 방한용이라면 덧저고리가 있고 잘덧저고리도 있다. 화려하고 찬란한 무늬가 있는 비단 마고자나 솜 둔 것은 촌스럽고, 청초한 겹마고자가 원격(原格)이다. 그러기에 예전에 노인네가 겨울에 소탈하게 방한삼아 입으려면 그 대신에 약식인 반배(反褙)를 입었던 것이다. 마고자는 섶이 알맞게 여며져야 하고, 섶귀가 날렵하고 예뻐야 한다. 섶이 조금만 벌어지거나 조금만 더 여며져도 표가 나고, 섶귀가 조금만 무디어도 청초한 맛이 사라진다. 깃은 직선에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둥글어도 안 되며, 조금 더 파도 못 쓰고 조금 덜 파도 못 쓴다. 안이 속으로 짝 붙으며 앞뒤가 상그럽게 돌아가야 하니, 깃 하나만 보아도 마고자는 바느질 솜씨를 몹시 타는 까다로운 옷이다.…(중략)…
우리 여성들은 실로 오랜 세월을 두고 이어 받아온 안목과 솜씨를 지니고 있던 까닭에 어느 나라 옷을 들여오든지 그 안목과 그 솜씨로 제게 맞는 제 옷을 지어냈던 것이다. 만일 우리 여인들에게 이런 전통이 없었던들 나는 오늘 이 좋은 마고자를 입지 못할 것이다.
문화의 모든 면이 다 이렇다. 전통적인 안목과 전통적인 솜씨가 있으면 누구나 남의 문화가 아무리 거세게 밀려든다 할지라도 이를 고쳐서 새로운 제 문화를 이룩할 수 있다. 송자(宋瓷)에서 고려의 비취색이 나오고, 고전(古典) 금석문에서 추사체가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남의 문물이 해동에 들어오면 해동 문물로 변했다. 그것은 탱자가 아니라 진주였다. 그런데 근래에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남의 것이 들어오면 탱자가 될 뿐 아니라, 내 귤까지 탱자가 되고 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윤오영, 『곶감과 수필』에서 발췌·수정-
마 사실 문화적 종속은 정치적 종속이나 군사적 종속보다 더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종속과 군사적 종속은 국민들이 스스로 의식하고 저항하려는 의지를 불러일으켜 실천 활동으로 연결되고 이것이 독립과 해방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문화적 종속은 국민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침투되는 까닭에 외래문화에 대한 저항 의지가 자리 잡기 어렵다. 때로는 선진문물이라 여겨서 오히려 다투어 받아들이고 익히려 들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복속되기도 한다. 따라서 정치적 종속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문화적 종속이다. 정치적 종속은 상대적으로 정신적 자주성을 각성시켜 민족문화를 지키려는 민족의식을 강화하는 구실을 하지만, 문화적 종속은 오히려 정신적 자주성을 마비시키고 민족문화의 전통을 우습게 여기며 민족의식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코카콜라와 맥도날드, 할리우드 영화, 청바지 문화가 휩쓸고 있다. 이들 문화상품이 세계를 석권하면서 문화의 국경을 허물었을 뿐 아니라, 제3세계의 문화적 독창성을 급격히 훼손하고 문화 다양성 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버렸다. …(하략)…
-김수희 편저, 『한류와 21세기 문화 비젼』에서 발췌·수정-
<문제 1> <가>에서 제시하는 논점을 파악하여 서술하고, 이를 토대로 외래사상과 문화를 수용하는 <나>와 <다>의 입장에 대하여 각각 설명하시오. (800자 내외)
<문제 2> <마>에 나타난 문화수용의 제문제(諸問題)를 서술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와 <라>의 입장을 취했을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각각의 장단점을 비교설명하시오. (1000자 내외)
▧ 위 문제의 학생 답안
제시문 <마>는 외래 문물을 무조건 선진문물이라고 여겨서 지나치게 받아들이면, 문화적 종속으로 인해 정신적 자주성을 마비시킨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의 의식 속에 문화적 종속이 침투되면 외래문화에 대한 저항의식을 잃는다고 말한다. 또한 문화의 다양성을 상실하게 되고, 그로 인해 문화가 획일화되면 창조력과 독창성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즉 무분별한 외래 문물의 수용이 민족문화의 전통과 민족의식의 상실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제시문 <마>에 나타난 제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문 <나>는 외래 문화 수용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제시문 <라>는 외래 문화를 수용하고, 그를 고쳐서 새로운 우리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한다면 외래 문화수용에 따른 민족문화의 전통과 민족의식의 상실을 경험하지 않는다.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창조력과 독창성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했을 때 우리의 문화와 법이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편협함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제시문 <라>의 입장을 취한다면 외래 문화 수용을 통해서 우리 문화를 더 발전시킬 수 있다. 외래 문물이 무분별하게 밀려들더라도 우리의 전통적인 안목과 솜씨가 있다면, 외래 문물을 수정하여 이전보다 진보된 우리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적 종속으로 인해 민족문화의 전통과 민족의식을 상실하게 된다면, 새로운 우리 문화를 창조하기는커녕 문화의 다양성을 잃고 말 것이다.
즉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한다면 문화주권을 지킬 수 있으나 우리 문화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할 것이며, 제시문 <라>의 입장을 취한다면 외래 문화를 수용하여 발전된 우리 문화를 창조할 수 있으나 자칫 문화적 종속이 될 경우 민족의식을 상실할 것이다. 따라서 외래 문화 수용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의 입장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입장을 유연하게 취하여 두 입장의 장점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융통성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 해설 및 예시답안
-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문제의 요구조건을 크게 나누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마에 나타난 문화수용의 제문제를 서술하는 것, 둘째 그 문제에 대한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했을 때의 장점과 단점, 셋째, 그 문제에 대한 제시문 라의 입장을 취했을 때의 장점과 단점입니다. 첫 번째 요구조건은 쉽게 말해 제시문 마에 나타난 문화수용에 있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쓰라는 것입니다. 제시문 마에서는 문화적 종속과 문화 획일화 두 가지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화적 종속이 되면 민족의식이 상실될 것이라고 말하고 문화 획일화가 진행되면 문화다양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단락에서는 이러한 문제의 요구조건에 충족하는 글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쓴 글은 문제의 요구조건에 대한 글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물론 제시문 마의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첫째 단락은 문화수용에 있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쓴 것일까요, 아니면 제시문 마를 요약한 것일까요? 당연하게도 답은 후자입니다. 동일한 내용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과 의미가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제시문 마에 있는 내용을 문제에서는 물어본 것은 맞지만, 제시문 마를 요약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문제의 요구조건에 맞게 써야 하지요.
아래 학생의 글과 학교 예시답안을 비교해서 읽어보기 바랍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학교 측 예시답안을 보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지요. 논술의 가장 기본 중 기본이랍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제시문에 너무 휘둘리다 보니 제시문을 요약만 하게 되는 것이지요. 잘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서술할 것. 그리고 답안을 보면 문제가 예상돼야 좋은 답안이라는 것을.
<학생의 글>
제시문 <마>는 외래 문물을 무조건 선진문물이라고 여겨서 지나치게 받아들이면, 문화적 종속으로 인해 정신적 자주성을 마비시킨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의 의식 속에 문화적 종속이 침투되면 외래문화에 대한 저항의식을 잃는다고 말한다.
<학교측 예시답안>
첫 번째 문제로 문화적 종속을 들 수 있다. 문화적 종속은 국민들을 알게 모르게 외래문화에 종속시킨다. 이는 정치적 종속이나 군사적 종속보다 더 위험한데 그 이유는 자신이 그 문화에 종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 사대주의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외래문화를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에 스스로 종속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적 종속의 가장 큰 문제는 자문화를 무시하며 민족의식 또한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 근거가 없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
이제 두 번째 단락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떤가요? 잘 쓴 글인가요?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답니다. 많은 학생들이 실수하는 것을 이 학생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주장만 쓰는 것입니다. 아래 표의 학생 답안을 보겠습니다. 먼저 문장 간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지지는 않고 있지요. 이것은 아주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단지 표면적으로 보이는 문제일 뿐이지요. 실제로 정말 큰 문제는 주장만 있고 근거는 없다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답은 있는데 답을 찾는 과정이 없는 것이고, 또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 사고의 과정이 보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문화수용의 문제에 대한 제시문 나의 입장의 해결 방향의 장점과 단점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①번 문장에서 장점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②번 문장에서도 장점을 언급하고, ③번 문장에서 단점을 언급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것이 왜 각각 장점과 단점일까요? 다시 말해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하면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창조력과 독창성을 갖춘다는데 왜 그럴까요?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하면 우리의 문화와 법이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한다는데 왜 그럴까요? 글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이 왜 장점과 단점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학생은 왜 글을 이렇게 썼을까요? 이것이 바로 많은 학생들이 실수하는 것인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나 명백하게 연결이 잘 되는 내용이고 답이 뻔한 것이라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고 생각했거나, 둘째는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설명하기 어려워서 대충 서술한 것이지요.
첫째 이유라면, 학생이 비록 이해는 했을지 모르지만 논술 답안을 글로만 판단해야 하므로, 논리적인 서술부분에서 감점이 크게 될 것입니다. 둘째 이유라면 이해도 정확하게 못했는데 서술도 엉망이므로 논리적인 서술부분에서 감점이 크게 될 것입니다. 결국 똑같이 감점이라는 것이지요. 논술을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라거나, 내가 의도한 것은 이것이 아니라는 등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겠지만, 논술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측면은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논술답안은 지극히 당연하게도 적혀 있는 대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생의 답안을 제가 아래 표와 같이 수정해 봤습니다. 최대한 원문을 살리는 방향으로요.
<학생 답안 before>
①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한다면 외래 문화수용에 따른 민족문화의 전통과 민족의식의 상실을 경험하지 않는다.
②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창조력과 독창성을 갖출 수 있다.
③ 하지만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했을 때 우리의 문화와 법이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편협함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생 답안 수정 after>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한다면 외래 문화수용에 따른 민족문화의 전통과 민족의식의 상실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래문화를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문화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의 다양성도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했을 때 우리의 문화와 법이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편협함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래문화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문화의 교류도 막아 새로운 문화의 창조나 문화의 발전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 문제가 요구하지 않은 것은 쓰지 말 것.
마지막으로 이 학생은 글을 마무리 하는 부분에서도 크게 실수를 범했는데요. “따라서 외래 문화 수용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의 입장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입장을 유연하게 취하여 두 입장의 장점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융통성있는 자세가 필요하다”와 같은 문장을 쓴 것이지요.
아마 그 전에 글을 끝내려니 무언가 마무리를 해주어야 할 것 같아 이 문장을 쓴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러나 이는 불필요한 서술이지요. 문제에서는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쓰라고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약 이러한 주장을 할 것이라면 근거가 있어야지요. 근거는 서술돼 있지 않지요. 게다가 두 가지 입장을 유연하게 취하고 융통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서술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하면 유연하게 두 입장을 취하고 융통성 있는 자세를 가질 수 있을까요? 굉장히 애매한 표현이지요. 다시 말해 묻지 않은 것을 쓴 것도 문제이고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는 것도 문제이고 해결방향도 애매하게 제시한 것도 문제인 것입니다. 많은 대학들은 서론, 본론, 결론 형식의 글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킨 글을 원하지요. 그러니 굳이 묻고 싶은 것까지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문제에서 묻는 것을 정확하게 답하고 묻지 않는 것을 쓰지 않는 것은 논술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 학교측 예시답안
현대 사회는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세계화 되어가는 추세이다. 그런데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서 문화를 공유하고 전파함에 따라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첫 번째 문제로 문화적 종속을 들 수 있다. 문화적 종속은 국민들을 알게 모르게 외래문화에 종속시킨다. 이는 정치적 종속이나 군사적 종속보다 더 위험한데 그 이유는 자신이 그 문화에 종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 사대주의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외래문화를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에 스스로 종속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적 종속의 가장 큰 문제는 자문화를 무시하며 민족의식 또한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또 다른 문제는 획일화된 문화이다. 문화의 획일화로 각 국가의 고유한 문화와 다양성이 서서히 상실되어,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문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와 라의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우선 나의 입장을 취할 경우 외래문화를 배척하고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가치 질서나 유교적인 예법 등이 혼란해 지거나 변동되지 않게 할 수 있다. 한편 라의 이장을 취할 경우에는 외래문화를 수용하되 그 문화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변형시킴으로써 새로운 문화로 재창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단순히 외래문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아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 외래문화를 일절 거부함으로써 문화의 진보가 더디며 세계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로 인해 다른 국가들과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상호 간의 소통조차 단절되게 된다. 또한 라의 경우에는 외래문화를 수용할 때 개방적인 자세는 좋으나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문화 사대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즉 수용된 문화에 우리의 문화가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입장은 문화의 독창성을 지킬 수는 있으나 세계로부터 소외될 수 있는 반면 라의 입장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으나 자칫하면 동화될 수 있다.
강현정 S논술 선임 연구원 basekanggun@naver.com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다시 논술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제 수시 1차 논술 시험은 모두 끝났고 수능 이후 진행될 수시 2차 논술 시험이 남았습니다. 수시 2차 시험을 봐야 하는 수험생들은 34회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이 공부해왔던 논술에 대해 정리하고 복습하면서 논술의 감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시 2차 논술을 치르는 많은 대학들은 수능최저등급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수능최저등급을 맞출 수 있게 수능공부에도 신경 써야 하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34회에서 살펴봤던 성신여대 논술 2번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학생 글의 평가기준은 대학에서 제시한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제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성한 것이며, 평가 점수는 제 개인적인 판단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원하고 싶은 대학의 최신 기출 문제를 작성하여 페이지 하단에 있는 제 메일로 보내주시면 한 주에 한 명 혹은 두 명의 학생의 글을 채점, 첨삭해 드리고 관련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물리적인 여건상 많은 학생들의 글을 첨삭해드릴 수 없는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 2012학년도 성신여대 수시 논술 (3교시)
나 서양의 무력 도전에 대해 조선 정부 내부에서는 주전(主戰)인가 주화(主和)인가를 둘러싸고 의견이 나뉘었다. 예컨대 화서 이항로는 “지금 국론이 ‘주화’와 ‘주전’의 양끝으로 나뉘어 있는데, 서양을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쪽 사람의 이야기이고, 서양과 화의를 주창하는 것은 저쪽의 이야기입니다. ‘주전’에 바탕을 두면 나라 안에 옛 의상(衣裳)을 지킬 수 있지만, ‘주화’를 따르면 인륜은 금수(禽獸)의 세계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라 하였다. 외래의 사상과 문화는 부모와 자식 간이나 임금과 신하 간의 윤리라든가 태극과 같은 근본 원리에 대한 이해 없이, 재화와 여색만을 중시하는 오랑캐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의 선비들은 나라와 군주를 지키기 위한 충군애국(忠君愛國)이 아니라, 유교적 예교(禮敎)를 통해 인륜을 지켜나가는 것으로 일관했다. 서학(西學)은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사교(邪敎)인데, 인륜의 기본적인 부자 간의 도리와 군신 간의 신의를 부정하므로, 그것은 금수의 세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서양에 대한 ‘주화’냐 ‘주전’이냐 하는 것이 곧 인륜이냐 금수냐를 갈음하는 대결의 논리로 변했다. 외래문화의 유입에 대한 위기의식은 서학의 전래로 인한 전통적 가치 질서의 혼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양의 외압 성격이 점차 군사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으로 강화된 데다가, 또한 직접적이고 강력해지면서 노골화되었다.…(하략)…
-강재언 지음, 하우봉 옮김, 『선비의 나라, 한국유학 이천 년』에서 발췌·수정-
라 나는 마고자를 입을 때마다 한국 여성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한다. 남자의 의복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호사가 마고자다.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같은 다른 옷보다 더 값진 천을 사용한다. 또 남자 옷에 패물이라면 마고자의 단추다. 마고자는 방한용이 아니요 모양새다. 방한용이라면 덧저고리가 있고 잘덧저고리도 있다. 화려하고 찬란한 무늬가 있는 비단 마고자나 솜 둔 것은 촌스럽고, 청초한 겹마고자가 원격(原格)이다. 그러기에 예전에 노인네가 겨울에 소탈하게 방한삼아 입으려면 그 대신에 약식인 반배(反褙)를 입었던 것이다. 마고자는 섶이 알맞게 여며져야 하고, 섶귀가 날렵하고 예뻐야 한다. 섶이 조금만 벌어지거나 조금만 더 여며져도 표가 나고, 섶귀가 조금만 무디어도 청초한 맛이 사라진다. 깃은 직선에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둥글어도 안 되며, 조금 더 파도 못 쓰고 조금 덜 파도 못 쓴다. 안이 속으로 짝 붙으며 앞뒤가 상그럽게 돌아가야 하니, 깃 하나만 보아도 마고자는 바느질 솜씨를 몹시 타는 까다로운 옷이다.…(중략)…
우리 여성들은 실로 오랜 세월을 두고 이어 받아온 안목과 솜씨를 지니고 있던 까닭에 어느 나라 옷을 들여오든지 그 안목과 그 솜씨로 제게 맞는 제 옷을 지어냈던 것이다. 만일 우리 여인들에게 이런 전통이 없었던들 나는 오늘 이 좋은 마고자를 입지 못할 것이다.
문화의 모든 면이 다 이렇다. 전통적인 안목과 전통적인 솜씨가 있으면 누구나 남의 문화가 아무리 거세게 밀려든다 할지라도 이를 고쳐서 새로운 제 문화를 이룩할 수 있다. 송자(宋瓷)에서 고려의 비취색이 나오고, 고전(古典) 금석문에서 추사체가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남의 문물이 해동에 들어오면 해동 문물로 변했다. 그것은 탱자가 아니라 진주였다. 그런데 근래에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남의 것이 들어오면 탱자가 될 뿐 아니라, 내 귤까지 탱자가 되고 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윤오영, 『곶감과 수필』에서 발췌·수정-
마 사실 문화적 종속은 정치적 종속이나 군사적 종속보다 더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종속과 군사적 종속은 국민들이 스스로 의식하고 저항하려는 의지를 불러일으켜 실천 활동으로 연결되고 이것이 독립과 해방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문화적 종속은 국민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침투되는 까닭에 외래문화에 대한 저항 의지가 자리 잡기 어렵다. 때로는 선진문물이라 여겨서 오히려 다투어 받아들이고 익히려 들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복속되기도 한다. 따라서 정치적 종속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문화적 종속이다. 정치적 종속은 상대적으로 정신적 자주성을 각성시켜 민족문화를 지키려는 민족의식을 강화하는 구실을 하지만, 문화적 종속은 오히려 정신적 자주성을 마비시키고 민족문화의 전통을 우습게 여기며 민족의식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코카콜라와 맥도날드, 할리우드 영화, 청바지 문화가 휩쓸고 있다. 이들 문화상품이 세계를 석권하면서 문화의 국경을 허물었을 뿐 아니라, 제3세계의 문화적 독창성을 급격히 훼손하고 문화 다양성 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버렸다. …(하략)…
-김수희 편저, 『한류와 21세기 문화 비젼』에서 발췌·수정-
<문제 1> <가>에서 제시하는 논점을 파악하여 서술하고, 이를 토대로 외래사상과 문화를 수용하는 <나>와 <다>의 입장에 대하여 각각 설명하시오. (800자 내외)
<문제 2> <마>에 나타난 문화수용의 제문제(諸問題)를 서술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와 <라>의 입장을 취했을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각각의 장단점을 비교설명하시오. (1000자 내외)
▧ 위 문제의 학생 답안
제시문 <마>는 외래 문물을 무조건 선진문물이라고 여겨서 지나치게 받아들이면, 문화적 종속으로 인해 정신적 자주성을 마비시킨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의 의식 속에 문화적 종속이 침투되면 외래문화에 대한 저항의식을 잃는다고 말한다. 또한 문화의 다양성을 상실하게 되고, 그로 인해 문화가 획일화되면 창조력과 독창성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즉 무분별한 외래 문물의 수용이 민족문화의 전통과 민족의식의 상실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제시문 <마>에 나타난 제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문 <나>는 외래 문화 수용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제시문 <라>는 외래 문화를 수용하고, 그를 고쳐서 새로운 우리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한다면 외래 문화수용에 따른 민족문화의 전통과 민족의식의 상실을 경험하지 않는다.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창조력과 독창성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했을 때 우리의 문화와 법이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편협함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제시문 <라>의 입장을 취한다면 외래 문화 수용을 통해서 우리 문화를 더 발전시킬 수 있다. 외래 문물이 무분별하게 밀려들더라도 우리의 전통적인 안목과 솜씨가 있다면, 외래 문물을 수정하여 이전보다 진보된 우리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적 종속으로 인해 민족문화의 전통과 민족의식을 상실하게 된다면, 새로운 우리 문화를 창조하기는커녕 문화의 다양성을 잃고 말 것이다.
즉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한다면 문화주권을 지킬 수 있으나 우리 문화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할 것이며, 제시문 <라>의 입장을 취한다면 외래 문화를 수용하여 발전된 우리 문화를 창조할 수 있으나 자칫 문화적 종속이 될 경우 민족의식을 상실할 것이다. 따라서 외래 문화 수용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의 입장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입장을 유연하게 취하여 두 입장의 장점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융통성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 해설 및 예시답안
-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문제의 요구조건을 크게 나누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마에 나타난 문화수용의 제문제를 서술하는 것, 둘째 그 문제에 대한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했을 때의 장점과 단점, 셋째, 그 문제에 대한 제시문 라의 입장을 취했을 때의 장점과 단점입니다. 첫 번째 요구조건은 쉽게 말해 제시문 마에 나타난 문화수용에 있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쓰라는 것입니다. 제시문 마에서는 문화적 종속과 문화 획일화 두 가지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화적 종속이 되면 민족의식이 상실될 것이라고 말하고 문화 획일화가 진행되면 문화다양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단락에서는 이러한 문제의 요구조건에 충족하는 글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쓴 글은 문제의 요구조건에 대한 글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물론 제시문 마의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첫째 단락은 문화수용에 있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쓴 것일까요, 아니면 제시문 마를 요약한 것일까요? 당연하게도 답은 후자입니다. 동일한 내용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과 의미가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제시문 마에 있는 내용을 문제에서는 물어본 것은 맞지만, 제시문 마를 요약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문제의 요구조건에 맞게 써야 하지요.
아래 학생의 글과 학교 예시답안을 비교해서 읽어보기 바랍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학교 측 예시답안을 보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지요. 논술의 가장 기본 중 기본이랍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제시문에 너무 휘둘리다 보니 제시문을 요약만 하게 되는 것이지요. 잘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서술할 것. 그리고 답안을 보면 문제가 예상돼야 좋은 답안이라는 것을.
<학생의 글>
제시문 <마>는 외래 문물을 무조건 선진문물이라고 여겨서 지나치게 받아들이면, 문화적 종속으로 인해 정신적 자주성을 마비시킨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의 의식 속에 문화적 종속이 침투되면 외래문화에 대한 저항의식을 잃는다고 말한다.
<학교측 예시답안>
첫 번째 문제로 문화적 종속을 들 수 있다. 문화적 종속은 국민들을 알게 모르게 외래문화에 종속시킨다. 이는 정치적 종속이나 군사적 종속보다 더 위험한데 그 이유는 자신이 그 문화에 종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 사대주의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외래문화를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에 스스로 종속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적 종속의 가장 큰 문제는 자문화를 무시하며 민족의식 또한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 근거가 없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
이제 두 번째 단락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떤가요? 잘 쓴 글인가요?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답니다. 많은 학생들이 실수하는 것을 이 학생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주장만 쓰는 것입니다. 아래 표의 학생 답안을 보겠습니다. 먼저 문장 간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지지는 않고 있지요. 이것은 아주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단지 표면적으로 보이는 문제일 뿐이지요. 실제로 정말 큰 문제는 주장만 있고 근거는 없다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답은 있는데 답을 찾는 과정이 없는 것이고, 또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 사고의 과정이 보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문화수용의 문제에 대한 제시문 나의 입장의 해결 방향의 장점과 단점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①번 문장에서 장점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②번 문장에서도 장점을 언급하고, ③번 문장에서 단점을 언급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것이 왜 각각 장점과 단점일까요? 다시 말해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하면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창조력과 독창성을 갖춘다는데 왜 그럴까요?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하면 우리의 문화와 법이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한다는데 왜 그럴까요? 글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이 왜 장점과 단점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학생은 왜 글을 이렇게 썼을까요? 이것이 바로 많은 학생들이 실수하는 것인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나 명백하게 연결이 잘 되는 내용이고 답이 뻔한 것이라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고 생각했거나, 둘째는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설명하기 어려워서 대충 서술한 것이지요.
첫째 이유라면, 학생이 비록 이해는 했을지 모르지만 논술 답안을 글로만 판단해야 하므로, 논리적인 서술부분에서 감점이 크게 될 것입니다. 둘째 이유라면 이해도 정확하게 못했는데 서술도 엉망이므로 논리적인 서술부분에서 감점이 크게 될 것입니다. 결국 똑같이 감점이라는 것이지요. 논술을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라거나, 내가 의도한 것은 이것이 아니라는 등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겠지만, 논술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측면은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논술답안은 지극히 당연하게도 적혀 있는 대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생의 답안을 제가 아래 표와 같이 수정해 봤습니다. 최대한 원문을 살리는 방향으로요.
<학생 답안 before>
①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한다면 외래 문화수용에 따른 민족문화의 전통과 민족의식의 상실을 경험하지 않는다.
②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창조력과 독창성을 갖출 수 있다.
③ 하지만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했을 때 우리의 문화와 법이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편협함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생 답안 수정 after>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한다면 외래 문화수용에 따른 민족문화의 전통과 민족의식의 상실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래문화를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문화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의 다양성도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제시문 나의 입장을 취했을 때 우리의 문화와 법이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편협함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래문화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문화의 교류도 막아 새로운 문화의 창조나 문화의 발전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 문제가 요구하지 않은 것은 쓰지 말 것.
마지막으로 이 학생은 글을 마무리 하는 부분에서도 크게 실수를 범했는데요. “따라서 외래 문화 수용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의 입장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입장을 유연하게 취하여 두 입장의 장점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융통성있는 자세가 필요하다”와 같은 문장을 쓴 것이지요.
아마 그 전에 글을 끝내려니 무언가 마무리를 해주어야 할 것 같아 이 문장을 쓴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러나 이는 불필요한 서술이지요. 문제에서는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쓰라고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약 이러한 주장을 할 것이라면 근거가 있어야지요. 근거는 서술돼 있지 않지요. 게다가 두 가지 입장을 유연하게 취하고 융통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서술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하면 유연하게 두 입장을 취하고 융통성 있는 자세를 가질 수 있을까요? 굉장히 애매한 표현이지요. 다시 말해 묻지 않은 것을 쓴 것도 문제이고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는 것도 문제이고 해결방향도 애매하게 제시한 것도 문제인 것입니다. 많은 대학들은 서론, 본론, 결론 형식의 글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킨 글을 원하지요. 그러니 굳이 묻고 싶은 것까지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문제에서 묻는 것을 정확하게 답하고 묻지 않는 것을 쓰지 않는 것은 논술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 학교측 예시답안
현대 사회는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세계화 되어가는 추세이다. 그런데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서 문화를 공유하고 전파함에 따라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첫 번째 문제로 문화적 종속을 들 수 있다. 문화적 종속은 국민들을 알게 모르게 외래문화에 종속시킨다. 이는 정치적 종속이나 군사적 종속보다 더 위험한데 그 이유는 자신이 그 문화에 종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 사대주의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외래문화를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에 스스로 종속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적 종속의 가장 큰 문제는 자문화를 무시하며 민족의식 또한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또 다른 문제는 획일화된 문화이다. 문화의 획일화로 각 국가의 고유한 문화와 다양성이 서서히 상실되어,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문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와 라의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우선 나의 입장을 취할 경우 외래문화를 배척하고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가치 질서나 유교적인 예법 등이 혼란해 지거나 변동되지 않게 할 수 있다. 한편 라의 이장을 취할 경우에는 외래문화를 수용하되 그 문화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변형시킴으로써 새로운 문화로 재창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단순히 외래문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아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 외래문화를 일절 거부함으로써 문화의 진보가 더디며 세계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로 인해 다른 국가들과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상호 간의 소통조차 단절되게 된다. 또한 라의 경우에는 외래문화를 수용할 때 개방적인 자세는 좋으나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문화 사대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즉 수용된 문화에 우리의 문화가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입장은 문화의 독창성을 지킬 수는 있으나 세계로부터 소외될 수 있는 반면 라의 입장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으나 자칫하면 동화될 수 있다.
강현정 S논술 선임 연구원 basekanggu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