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경제의 시작
이어령 교수는 집 가(家)의 의미가 단순히 하나의 주택, 바람을 피하고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공간을 의미하는 데서 나아가 상호활동을 전제한다고 했다. 이는 가(家)에 돼지 시(豕)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돼지는 유목민이 키우는 동물이 아니라 정착민이 기르는 가축이다. 따라서 집을 나타내는 주된 상징이 돼지라는 것은 자급 경제가 아니라 상호성을 전제로 한 교환 경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집과 경제의 밀접성은 경제학(economics)의 어원을 통해서 더욱 잘 드러난다. economics는 그리스어인 Oikonomikos에서 왔다. 그리스어로 Oikos가 ‘가정(家庭)’을 의미하고 nem은 ‘관리’를 의미한다.

기원전 400년 전 크세노폰이 쓴 Oikonomikos는 가장의 덕목을 다룬 윤리적인 성격의 책이었다.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 선택과 배분을 통해 사회에 미치는 결과를 연구하는 거대한 학문인 경제학은 ‘가정 관리’라는 작은 곳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스 윤리학』에 따르면 가정관리론은 정치학의 하부체계였다는 점이다. 지금은 경제학과 정치학을 분리하여 별개로 생각하고 있지만 경제학의 초심으로 돌아가 본다면 둘을 따로 떼어 생각하기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경제학은 방대한 정치학의 한 분야였던 것이다.

경영으로 확대된 가정관리


가정관리는 여러 형태의 조직과 경영으로 확대해석되기 시작했다. 군주제가 정착하면서 가정관리는 폴리스 관리로 확장되었고, 기원전 2세기에는 그리스어로 정치 경제(Political Economy)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16세기 영국의 헤일즈는 경제학이 도덕철학의 한 분야라고 했으며, 17세기에는 절대군주를 바탕으로 강력한 국가를 꿈꾸던 프랑스에서도 경제학은 강력한 국가를 관리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렇다면 경제학의 정치학으로부터 독립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1767년 영국의 스튜어트는 Economy가 가정을 대상으로, Political Economy는 국가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도 초기에는 경제학과 정치학을 분리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대표작인 『국부론』(1776년)에 가서야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의해 움직이는 근대 학문으로 경제학의 기초가 놓아졌다. 그럼에도 경제학은 Economics가 아니라 여전히 Political Economy였다.

19세기에 들어서자 가치판단을 내포하는 정치학의 특성은 수학적 분석방법에 기초하여 경제 주체의 최적화를 분석하고자 했던 경제학자들의 불만을 야기했다. 한계효용학파의 창시자인 제본스(W. Stanley Jevons)를 시작으로 정치학으로부터 분리된 수리적이고 과학적인 경제학으로 변화 물결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드디어 1875년 매클라우드가 Economics라는 학문명칭을 처음으로 주장했으며, 경제학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마셜이 Economics라는 용어를 일반화시켰다. 이후 로빈슨이라는 학자에 의해 현재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행위를 다루는 학문”이 경제학의 정의로 자리잡게 되었다.

경제학 정의의 변천


경제학(經濟學)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한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준말이다. 따라서 한자의 의미만 보자면 경제학은 Economics가 아니라 Political Economy가 더 적합하다. 경제학이 Economics의 잘못된 번역처럼 보이는 이런 문제는 우리가 일본의 번역을 그대로 차용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일본이 Political Economy를 경제학(經濟學)으로 번역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경제학에 정치적 의미를 두어 해석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경제학이란 학문이 그 한자적 의미와 별개로 자리잡은 것처럼 보인다.

가정과 경제는'일맥상통'

그럼에도 경제학이 초기에 가정관리에서 출발했으며, 정치학과 함께했다는 점은 경제학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대학』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다. 집안이 가지런하게 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세상이 태평하게 된다는 의미인데, 이는 거대한 조직이 바로 작동하기 위해 나와 개개의 가정이 잘 다스려져야 한다는 것으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연상시킨다. 커라단 일의 효율성도 작은 곳의 효율성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경제의 시작
또한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집 가(家)라는 한자가 상호성 속의 교환 경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인간은 가족과 떨어져 홀로 기능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 이것은 마치 가정관리도 수요자와 공급자의 상호성을 전제로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유교에서 핵심 가치로 여기는 어질 인(仁)이라는 단어도 두 사람을 나타내는 단어에서 기반했다고 한다. 이렇게 바라보면 커다란 인문학의 줄기 속에서 경제학은 낮선 학문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차성훈 <KDI 경제정보센터 econcha@kdi.re.kr>

이승규 비즈니스 디자이너 겸 미학자 indigovalley@gmail.com


경제 용어 풀이 ☞ 경제학의 어원


경제학(經濟學)은 세상을 구하고 나라를 다스린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준말이다. 영어의 economics는 기원전 4세기 이전 크세노폰이 저술한 Oikonomikos에서 유래했다. Oikonomikos는 당시 가장의 덕목을 다룬 윤리학적 성격의 저술이었다. 그리스어에서 Oikos는 가정(家庭)을 뜻하며 여기에 관리한다는 nem- 또는 법이라는 nomos를 의미한다. Oikonomikos의 명사형인 Oikonomia는 ‘가정관리’라는 의미에서 기원전 3세기에는 폴리스 관리라는 의미로도 확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