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압박이 내년 아시아 경제의 최대 위협 요인이 될 것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의 잇단 양적완화 정책으로 투자자금이 아시아 국가로 급속히 몰려오면서 물가 상승을 유발할 우려가 높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 지적했다. WSJ는 영국 금융회사 스탠다드차타드(SC)의 보고서를 인용해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공격적으로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으로 선진국 자금이 밀려들고 있다”며 “이로 인해 이들 국가의 증시, 통화, 부동산이 모두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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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오르는 아시아 채권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달 13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매달 400억달러를 시중에 풀겠다는 3차 양적완화를 발표한 뒤 9월 한 달 동안 한국과 인도네시아 자본시장으로 자금이 대거 유입됐다.

한국의 경우 지난 8월에 24억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지만 지난달에는 14억달러 순유입으로 돌아섰다. 인도네시아 채권시장으로 들어온 자금은 9월 중 13억달러를 기록해 전월의 5억4000만달러에서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보고서는 “중국 경제지표가 안정되고 위안화 가치도 상승하면 아시아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진국의 양적완화는 특히 경제 규모가 작고 개방된 국가에서 자산가격 급등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태국 증시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28%가량 상승했고, 같은 기간 필리핀 증시도 24% 올랐다. 홍콩 항셍지수도 24% 뛰어 22일 기준으로 14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인도 증시는 23% 정도 상승했다.

아시아의 금융 중심국인 싱가포르와 홍콩은 통화 가치와 부동산 가격도 오르는 추세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최근 4년 동안 2배로 뛰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3분기 싱가포르 주택 가격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6%나 올랐다. 미국달러 대비 싱가포르달러 가치는 올 들어 약 6% 상승했다. 홍콩달러 가치도 급등하면서 홍콩 정부는 지난 19일 3년 만에 처음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신용평가회사 피치의 앤드루 콜키혼 아시아·태평양 등급 책임자는 “싱가포르와 홍콩이 상대적으로 경제 규모가 작아 미국의 3차 양적완화 충격을 크게 받고 있다”며 “자산가치 상승과 인플레이션 압박에 유난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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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로 몰리는 선진국 자금

아시아 채권시장도 달아오르고 있다. 통계전문기관 딜로직 집계에 따르면 올 들어 아시아 지역에서는 1580억달러어치의 채권이 발행됐다. 이는 작년 한 해 발행된 1127억달러를 넘는 것이다.

아시아 각국은 자산가격 거품을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존 창 홍콩 재무장관은 지난 21일 “최근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경기가 둔화되는 것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라며 “부동산 가격 억제 정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태국 중앙은행은 자국 내 상장법인과 개인의 해외투자, 외화표시채권 투자 규제를 완화해 자본의 해외 유출을 촉진시키기로 했다. 싱가포르도 최근 몇 주 동안 주택담보대출을 옥죄고 있다.

프레데릭 뉴먼 HSBC 아시아 경제분석담당 공동대표는 “자금 유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내년에 아시아 경제에 대한 최대 위협이 될 것”이라며 “특히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가 인플레이션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강동균 한국경제신문 기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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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해운의 나라 (하) - 한진해운, 외국인 조난자를 구하다

바다에서 조난자를 찾기란 모래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렵다. 수색 범위가 넓은 데다 파도가 일렁이면 물보라 속 물체가 빛의 산란으로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수르호가 이 같은 난관을 뚫고 인명을 구조한 얘기는 해운업계의 미담 사례로 남아 있다.

때는 지난 5월10일. 한진 수르호는 싱가포르 입항을 위해 동중국해 해상을 향해 남하하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오전 11시께 선실에 호출신호가 울렸다. 인근 머스크 파이퍼(MAEARSK PIPER)호의 VHF 호출이었다. 파이퍼호의 당직사관은 승무원이 선상에서 추락한 것 같다며 구조를 요청했다.

추락 위치는 불분명했다. 해수 온도는 20도 남짓. 생존 한계는 12시간 정도였다. 해수 20도는 지상과 달리 꽤 차가운 온도다. 구조 요청을 받은 수르호 선원들은 긴급상태에 돌입했고, 본사운항팀에도 상황이 보고됐다.

수색을 시작한 지 3시간. 아무런 표식 없는 사람을 바다에서 발견한다는 것은 기적이다. 해수면에 반사되는 햇빛에 선원들의 눈은 지쳐갔다. 파도를 오래 바라보면 시각이 마비된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파도 높이는 2m 정도로 소형 어선들도 파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이때 갑판에서 “뭔가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있었어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 머리 같은 게 떠 있어요.” 침묵이 흘렀다. 다시 소리가 들렸다. “있다! 있어! 뭔가 있어.”

일렁이는 파도 사이로 분명 조그맣고 검은 물체가 출몰을 반복하고 있었다. 사람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가까이서 확인을 해야 했다. “사람이 맞습니다. 사람입니다!” “어디 있나?” “10시 방향! 베어링 095도. 거리 약 0.5마일!”

“선장님, 접근해서 직접 끌어올리는 것은 어려울 듯 합니다. 구명정 사용을 제안합니다.” 높은 파도 탓에 구명정을 운용하기엔 부적합했지만 그 방법 밖에 없었다. 선장은 본선의 엔진을 정지시키고 선체가 풍상 측으로 향하도록 조선을 완료한 다음 명령을 내렸다. “구명정 강하 준비.”

구조팀이 익수자에게 접근, 구명튜브를 던졌다. 하지만 파도로 인해 정확하게 투척되지 않았다. 어렵사리 들어올려진 조난자는 한계 상황에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과 체온을 잃어 푸르게 변색된 입술, 이미 퉁퉁 불어 부풀어 오른 그의 몸…. 그의 몸에는 조난자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수십마리의 벌레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구조된 낙선자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낙선자에게 물이 공급됐고 체온 유지를 위해 담요로 감쌌다. 필리핀 국적에 38세로 밝혀진 그는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파도가 높아졌다. 머스크 파이퍼호로 그를 인도할 방법이 없었다. 두 선박이 접근하다간 충돌할 수도 있었다. 양측은 일본해상청에 헬리콥터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5시간 뒤 그는 헬리콥터로 옮겨탔다. 긴 하루가 끝났다. 한진 수르호는 다시 배를 돌려 싱가포르항을 향해 남진했다. 모든 것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Thank you, friends. Thank you Hanjin Sur.” 어두워진 바다에 울려퍼졌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