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한·일 통화스와프 중단…정·경분리 원칙 깨졌다
한국과 일본이 이달 말 만기가 돌아오는 57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통화 맞교환)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부터 양국의 통화스와프 체결액은 700억달러에서 130억달러로 줄어든다. 독도 문제로 냉랭해진 갈등이 경제 관계로 번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일본과 협의를 거쳐 통화스와프 확대 조치를 예정대로 종료하기로 했다”고 지난 9일 발표했다. 한국과 일본은 작년 10월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에 대비해 양국 간 통화스와프 규모를 130억달러에서 700억달러로 늘렸으나 1년 만에 원위치한 것이다. 당시 통화스와프 확대는 한국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통화스와프란 무엇이고 한·일 간 통화스와프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두 나라 경제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 양국 경제 협력의 상징

통화스와프(currency swap)는 서로 다른 통화를 사전에 정한 환율에 따라 교환하는 외환거래다. 예컨대 한·일 통화스와프의 경우 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원화를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에 맡기고 대신 엔화나 달러화를 들여올 수 있다. 필요하면 언제든 꺼내쓸 수 있는 일종의 ‘비상용 마이너스 통장’과 같다는 점에서 한국의 외화 유동성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최종구 재정부 차관보는 “우리 측에서 만기 연장을 요청하지 않았다”며 “정치 문제와 상관없이 순수한 경제적 관점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시장이 안정돼 있는 데다 최근 무디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상향 조정하는 등 거시경제 여건이 나아져 만기 연장이 불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양국 모두 정치적 판단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당초만 해도 통화스와프 연장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했다. 지난해 10월 통화스와프 규모를 130억달러에서 700억달러로 늘릴 때 비록 한국이 먼저 요청하기는 했지만 일본 측도 적극 호응했다. 당시 시장에선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가 500억달러 정도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회동 이후 전격적으로 700억달러까지 늘었다.

그러나 지난 8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요구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일본 측이 거꾸로 이 대통령에게 사죄를 요구하고 유감을 표시하면서 양국 경제 협력의 상징 중 하나인 통화스와프에 대해서도 “백지상태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분위기로 바뀐 것이다.

# 외화 유동성에 문제는 없을까

[Focus] 한·일 통화스와프 중단…정·경분리 원칙 깨졌다
한·일 간 통화스와프가 축소되면 가장 우려되는 건 비상시 쓸 수 있는 외국돈(외화 유동성)이 충분한지 여부다.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이번 통화스와프 축소를 감안해도 한국이 비상시 꺼내 쓸 수 있는 외화자금이 4294억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중 3220억달러는 한국은행이 관리하는 외환보유액이다. 지난 9월 말 기준이며 역대 최대 규모다. 또 중국과의 통화스와프가 560억달러이고 한·중·일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의 다자간 금융안정기금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M)를 통해 384억달러를 인출할 수 있다. 한·중 통화스와프는 만기가 2014년 10월 말이며 CMIM은 만기가 없다. 여기에 축소되기는 했지만 한·일 통화스와프도 아직 130억달러가 남아 있다. 이 중 30억달러는 내년 7월 말, 100억달러는 2015년 2월 말 만료된다.

정부는 이 같은 점을 감안할 때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축소가 외환시장 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외국인이 주식과 채권을 팔고 썰물처럼 한국을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뛰는 등 금융시장이 출렁였지만 지금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실제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메가톤급 위기가 다시 닥치면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축소가 한국 경제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과의 갈등관계가 계속되는 한 위기 상황에서 양국 간 협력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의 통화스와프 체결 요청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향후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도 높다.

# 일본에도 영향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통화스와프 협정을 줄곧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해온 일본 정부와 달리 일본 경제계에서는 통화스와프 연장 중단 조치가 일본 경제에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왔다. 일본은 자동차 전자 등 주요 업종에서 한국과 세계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수출 상품의 경쟁력은 품질도 중요하지만 가격 경쟁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78엔대에 달하는 지금 상태로도 한국의 경쟁기업을 상대하기 버거운데 통화스와프 조치 중단으로 엔화 가치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수출 상품 가격은 더 비싸지고, 결국 수출에 피해가 있게 된다. 엔화스와프 협정은 엔화를 해외로 내보냄으로써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다카시마 오사무(高島修) 씨티은행 애널리스트는 “이번 조치는 엔화 가치를 더 높일 수 있고, 일본 주식시장은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하락 압력을 받을 우려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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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스와프는 외환위기 막을 수 있는 '안전판'

[Focus] 한·일 통화스와프 중단…정·경분리 원칙 깨졌다
통화스와프는 통화를 교환(swap)한다는 뜻으로, 서로 다른 통화(通貨)를 미리 약정된 환율에 따라 일정한 시점에 상호 교환하는 외환거래를 뜻한다.

통화스와프는 국가는 물론 기업들도 환율과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리스크)을 헤지하거나 외화를 빌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주 사용한다. 기업을 예로 들어보자. A기업은 미국과의 사업을 위해 3개월 후 1억달러가 필요하다. 그런데 A사는 현재 1100원인 원화 환율이 3개월 후 1150원으로 뛸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미국의 B금융회사는 한국에 투자하려는 회사에 대출해주기 위해 3개월 후 1100억원의 원화가 필요하다. B금융사는 A사와 달리 원화 환율이 3개월 후 1050원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상황에서 A와 B사는 3개월 후 1100억원을 1억달러와 교환하는 계약을 체결하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막을 수 있고 외화를 빌리는 비용도 절약하게 된다. A기업과 B금융사는 통화를 교환하는 대신 서로 일정한 이자를 주고받는다.

국가 간 통화스와프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 간 500억엔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이 체결돼 있으면 한국은행은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에 500억엔 한도 내에서 원화를 맡기고 그에 상응하는 엔화를 빌려와 쓸 수 있다. 일본은행도 마찬가지로 한국은행에 엔화를 맡기고 원화를 빌릴 수 있다. 이러면 어느 한 나라에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상대국이 외화를 즉각 융통해줌으로써 유동성 위기를 넘기고 외환시장의 안정도 꾀할 수 있게 된다.

나라 간 통화스와프는 과거엔 선진국끼리만 맺는 협정이었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는다고 해도 개도국 통화를 가져다 쓸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9년 독일과 처음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은 뒤로 유럽 여러 나라와 캐나다, 일본 등과만 협정을 맺었다. 그 후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10월 들어서야 한국과 처음으로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하는 등 일부 신흥국에 문호를 개방한 상태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