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급격히 극우로 치닫고 있다. 최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보다 더 극우적 성향을 보이는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총리가 자민당 총재에 선출되면서 아베가 차기 총선에서 다시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주변국과의 관계도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늦어도 내년 초에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 총선에서 노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 중 누가 선출되든 간에 한·일 관계 정상화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망언 제조기'아베 자민당 총재에

최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당초 예상을 깨고 아베 전 총리가 역전승을 거뒀다. 총리 재임시절 과거사 왜곡 등 갖가지 논란으로 그가 당선될 것이란 기대는 거의 없었다. 자민당 총재 결선투표가 치러진 것은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와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간 대결 이후 40년 만이다. 아베 전 총리는 2007년 9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 이후 5년 만에 다시 자민당 총재에 복귀했다. 임기는 3년이다. 사임했던 총재의 복귀는 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 처음이다.

그는 2006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재의 임기 만료로 치러진 경선에서 21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고, 곧이어 제90대 일본 총리 자리에 올랐다. 2차대전 패전 이후 최연소 총리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극우적인 역사관이 걸림돌이었다. 애국 교육을 내건 교육기본법 개정, 방위청의 방위성 승격 등 보수우익적 색채가 강한 정책을 잇달아 발표, 주변국의 우려를 샀다. 2007년 3월엔 위안부 강제 연행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고, 각료들의 추문까지 겹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7년 7월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에 참패한 이후 건강 악화를 호소하다 9월12일 사의를 표명했다.

#주변국들은 경계의 시선

이른바 차기 총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자민당 총재 자리를 아베가 차지하면서 일본의 우경화가 가속화되고 일본과 주변국 간 관계가 더 경색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베는 자민당 총재 취임 일성으로 “영토, 영해, 국가의 자부심을 건드리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분쟁을 방지할 수 있다”고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아베는 선거운동 당시부터 주변국들을 자극하고 나섰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는 “총리 재임 시절 참배하지 못한 것이 통한”이라고 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죄 요구 발언에 대해서는 “극히 무례한 짓”이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총재 선거 때 내건 공약도 향후 주변국과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것들 투성이다. 집단적 자위권 도입, 과거사 반성 담화 폐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이행하겠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의 이 같은 모습은 과거 총리 재임 때와 유사하다. 아베는 2006년 애국심 교육을 강화한다며 교육기본법을 59년 만에 개정해 역사교과서 왜곡을 주도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이후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라는 내용의 학습지도 요령과 해설서를 내놓았다. 2007년에는 평화 헌법 등 전후체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한 헌법 9조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인정을 위한 법률 정비를 추진했지만 참의원 선거에서 패해 무산됐었다. 망언도 일삼았다. 2007년 3월1일 아베는 “일본정부가 군대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잘못된 고노 담화 대신 새로운 담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과 영토분쟁 더 심해질 듯

일본이 아베의 등장을 하나같이 반기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자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고 있다. 자민당 아키타현 본부 간부 4명은 아베가 당선되자 “민의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아사히신문은 담화를 수정했다가 자칫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 한국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등 국제 사회 전체의 반감을 살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중국과의 영토분쟁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아베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어선 대피시설을 만들겠다고 공약한 것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언급하자 우려를 나타냈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재의 잘못된 대응이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고립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해단체에 좌지우지되는 일본 정부의 고질적인 병폐가 부활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베가 내건 ‘원전 가동 중단 반대’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A) 신중론’ ‘공공사업 확충론’ 등이 모두 이해단체의 주장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베가 공약과는 다르게 극우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국제정치전문가는 “아베가 실제 총리로 집권하면 현실론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무조건 극우노선을 걷기는 힘들 것”이라며 “재무장, 과거사 부정 등이 주변국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기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shagg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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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화로 기우는 일본…잘못 인정 안하고 주변국 탓만

[Global Issue] 극우파 아베의 귀환…한·중·일 갈등 '풍랑 예고'
차기 총리 후보인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뿐 아니라 현 일본 정부도 점차 극우 성향을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잘못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주변국만을 탓하고 나서는 모습이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강제관할권 동원을 통한 ‘법적 해결’을, 센카쿠 열도와 관련해서는 ‘타협 불가’라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최근 유엔총회 연설에서 본격적으로 독도 문제에 대한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사법권을 일관되게 인정해 왔다”며 “아직 강제관할권을 수락하지 않고 있는 모든 국가는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최근 일본의 ICJ 제소 가능성 제기에 “응답할 가치가 없다”고 대응한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분석된다.

강제관할권은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국가 중 한 나라가 다른 국가를 ICJ에 제소하면 ICJ가 상대방 국가에 대해 재판 참석을 강제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강제 장치가 없는 데다 우리 정부는 독도가 엄연한 한국령인 만큼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면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영토문제에 있어서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다 총리는 유엔총회 연설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센카쿠 열도가 분명한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다.

주변국도 대응에 나섰다. 일본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결국 한·일, 중·일 간 영토분쟁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노다 총리의 연설이 있은 다음날 중국의 양제츠(楊潔) 외교부장은 노다 총리의 발언에 대응하는 연설을 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독도 문제에 대한 대응 연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