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복지포퓰리즘 너무 나갔나…무상보육 7개월만에 '수술대'
정부는 소득 상위 30%에 포함되는 가구가 만 0~2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경우 월 10만~20만원의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현행 0~2세 전면 무상보육제도의 틀을 깨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방안에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총선공약과 당론에 어긋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어 국회 통과 여부는 극히 불투명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내년도 예산안에 소득 하위 70%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보육지원 방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0~2세 무상보육을 수정키로 한 것은 재정압박이 심해지고 있는데다 보편적 복지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 상위 30%, 0~2세 제외


현재는 0~2세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 부모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정부가 보육료를 전액 지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맞벌이 부부가 0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경우 부모와 어린이집에 월 75만5000원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내년 3월부터 소득 상위 30% 안에 드는 가구는 55만5000원만 받을 수 있다. 나머지 20만원은 가구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1세 아이의 경우엔 월 15만원, 2세는 10만원을 각각 내야 한다. 다만 집에서 양육할 경우엔 어떤 명목의 지원금도 받지 못한다.

반면 소득 하위 70% 가구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경우 지금처럼 보육료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다. 또 집에서 키우면 보육비대신 월 10만~20만원의 양육보조금을 따로 받을 수 있다. 현재 차상위계층(소득하위 15%)에만 지원되고 있는 양육수당을 양육보조금으로 명칭을 바꿔 지급대상을 늘린 것이다. 정부는 또 현재 소득 하위 70% 가구를 지원하는 3~4세 누리과정과 월 20만원의 보육시설 이용료를 지급하는 5세 누리과정(의무교육)을 3~5세로 통합, 모든 계층에 22만원의 보육료를 확대 지급하기로 했다. 이번에 마련된 보육지원체계 개편에 따라 내년에 필요한 ‘만 0~2세 양육·보육액’은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4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무상복지 확대에 브레이크?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보육예산안의 핵심은 소득상위 30%에 대한 월 지원금액을 10만~20만원 일괄 삭감하면서 양육보조금 지원대상을 기존 차상위계층에서 소득 하위 70%로 확대한 것이다. 비록 소득상위 계층에 대한 혜택을 축소한 것이긴 하지만 전계층 무상보육 실시 7개월 만에 이뤄진 ‘복지의 후퇴’라는 점에서 초유의 정책 전환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무상복지 확대를 주창하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도 볼 수 있다.하지만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강력히 반해하고 있어 국회 통과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진영 정책위 의장은 “0~2세 보육료와 양육수당을 모든 계층에 지급하자는 게 총선공약이자 당론이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연말 예산심의 때 (당론을) 적극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도 성명서를 내고 정부와 여당을 강력히 비판했다. 한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시행한 정책을 1년도 안돼 뒤집은 것으로 이명박 정부 스스로 보육정책의 무원칙 무능력 무철학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보육과 양육은 시설보육과 가정양육의 줄임말로, 보육은 영유아에게 적합한 교육을 제공하는 사회복지서비스를 뜻하며 영유아 보육법에 따라 국가가 보육시설을 운영 또는 지원하고 감독한다. 반면 양육은 가정에서 부모가 보살피며 키우는 것을 뜻한다.

#포퓰리즘 감시 '건전재정포럼'

대선을 앞두고 무분별한 복지포퓰리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강봉균 진념 등 전직 경제 수장들이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맞서 국가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지난달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전직 장·차관급 고위 관료와 중견 언론인, 학계 인사 등 100여명을 발기인으로 해 ‘건전재정포럼’ 창립식을 갖고 대선 정국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역대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나 재무장관을 지낸 고위 관료들이 대거 참여하는 포럼이 결성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들이 포럼을 결성하기로 한 것은 저성장과 저출산·고령화로 재정 수입 기반이 약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격해지는 복지 확대 경쟁을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을 방치하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처럼 한국도 국가 재정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포럼 총괄대표를 맡은 강 전 장관은 “지금 우리나라는 복지 논쟁만 있고 복지가 재정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국민들이 균형 감각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용준 한국경제신문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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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충고… "한국은 선별적 복지가 바람직"

[Cover Story] 복지포퓰리즘 너무 나갔나…무상보육 7개월만에 '수술대'
한국은 ‘선별적인’ 복지 확대가 바람직하다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처음으로 권고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무분별하게 쏟아내는 한국 정치권의 복지 확대 공약을 겨냥한 것이다. IMF는 한국의 가계부채도 과도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IMF는 지난달 발표한 ‘한국 경제 연례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도 세율을 인상하기보다 세원을 넓히는 방식으로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에 있다”며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문제를 연착륙시킬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비은행 금융회사의 충당금 적립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가계대출이 부실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자산 건전성이 취약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 대한 선제적인 건전성 강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IMF가 한국 정부에 선별적 복지와 가계부채 관리를 권고한 것은 사실상 경고의 의미로 보인다. 복지 수요 증가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악화와 가계 부채 급증에 따른 금융권 부실이 향후 한국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다.

IMF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의 후폭풍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한국의 대외 안전성에 대해서는 ‘합격점’을 줬다. 거시 건전성 조치 시행 등 정부의 정책적 노력에 힘입어 대외 부문의 변동성을 흡수했다는 이유에서다. IMF는 “단기외채 대비 외환보유액 증가, 은행의 차입 의존도 완화, 외화유동성 확충 등으로 대외 건전성이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하향 조정했다. 지난 4월에는 3.5%로 전망했지만 이번에는 3.0%로 0.5%포인트 내렸다. 내년 경제성장률은 3.9%로 올해보다 다소 개선될 것으로 IMF는 내다봤다.

워싱턴=장진모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