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과 성장 없이 복지정책 할 수 없다"

[피플 & 뉴스] '인도 경제 살리기' 승부수 띄운 만모한 싱 총리
만모한 싱 인도 총리(79)는 자국 내에서 늙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자주 묘사된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이라고나 할까. 그런 싱 총리가 지난 13일 외신들을 깜짝 놀라게 해 화제다. 인도 경제를 살리기 위한 싱 총리의 개방 승부수 얘기다.

‘빅뱅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이 붙은 싱 총리의 개방 계획은 가히 혁명적이다. 논의는 많이 이뤄졌으나 결코 실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무색케 할 정도의 메가톤급이다.

싱 총리는 먼저 슈퍼마켓 할인점 등 여러 제품을 파는 다품종 소매점에 외국인 직접투자 한도를 51%까지 허용했다. 단일 품종 소매점의 경우 외국인이 100% 지분을 가질 수 있도록 화끈하게 규제를 풀었다. 월마트, 이케아 같은 외국 대형 체인점이 인도에 들어올 수 있게 한 것이다. 소매점 개방 계획은 그동안 시행 일보 직전까지 갔으나 야당의 반대로 무기한 연기됐던 정책이었다.

싱 총리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항공 부문은 49%, 전력거래 부문은 74%까지 투자 한도를 완화했다. 공기업 민영화에도 나서 오일 인디아 등 5개 국유기업의 주식 매각 계획도 내놨다. 케이블TV 등 방송 지분도 74%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싱 총리는 2단계 개방 조치도 풀어놓을 전망이다. 주식시장 외국인 투자 제한 완화, 대형 사업에 대한 규제 철폐, 해외 자금 차입 한도 완화 등이 2차 개방안에 들어 있다. 싱 총리가 한국의 개방 정책을 따라하는 듯하다는 분석도 있다.

싱 총리가 야당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방 승부수를 띄운 것은 허물어져 가는 인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다.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인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9년 만에 최저인 5.5%로 떨어졌다. 재정적자 규모도 GDP의 6%를 위협하고 있다. 물가도 치솟아 인도 경제는 사면초가 형국이다. 설상가상으로 인도 국가신용등급이 브릭스(BRICs) 국가 중 가장 먼저 투자위험 수준(정크)으로 강등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인도에 투자했던 외국인 자본이 빠른 속도로 빠져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다급해진 싱 총리는 개방 정책을 내놓기 위해서는 야당을 설득해야 했다. 개방에 반대해온 소냐 간디 국민회의당 당수를 세 번이나 찾아갔다. 싱 총리는 “개방을 통한 고도 성장 없이 가난한 수백만명에게 복지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득했다. 마침내 복지 최우선주의자인 소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싱 총리는 첫 걸음을 내디뎠으나 강력 반발하는 다른 야당과 주 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바네르지 웨스트벵골 주장관은 “개방 조치를 철회하지 않으면 연정을 탈퇴하겠다”고 압박한 상태이고 뉴델리에서는 수백만명이 연일 거리에 나와 “만모한 싱 총리 타도”를 외치는 상황이다. 성장하지 않으면 복지정책도 할 수 없고 경쟁에서 도태한다는 점을 싱 총리는 알고 있지만….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