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이자를 받지 않아도 낸 사람이 있다!
“이 돈을 빌려 주더라도 행여 친구에게 빌려 준 거라고는 생각 마시오. 친구끼리 누가 돈을 꿔 주고 이자를 받는단 말이오. 그러니 원수한테 돈을 빌려 주었다고 생각하시오. 그렇게 하면 만약 계약을 어겼을 때 떳떳이 위약금을 청구할 수 있을 테니까.”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안토니오의 대사다.

베사니오는 포셔라는 여인에게 청혼하러 가기 위해 친구인 안토니오에게 3,000더커트를 빌리고자 했다. 안토니오는 무역왕답게 여러 척의 상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상선이 교역을 위해 모두 출항한 상태였기에 당장 3,000더커트라는 거금을 손에 들고 있지는 않았다. 안토니오는 그 동안의 신용을 담보로 유대인인 샤일록에게 3,000더커트를 빌리려고 했다. 위 대사는 이 과정에서 등장한다.

이자를 죄악시한 기독교

안토니오는 기독교인이며, 당시 기독교인은 이자받는 것을 죄악시했다. 반면 안토니오에게 3,000더커트를 빌려주었던 샤일록은 유대인이었으며, 『베니스의 상인』 전반에 걸쳐 이자놀이를 하는 유대인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자기 잇속만 챙기는 민족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거래는 좀 달랐다. 유대인인 샤일록이 우정과 친절을 들먹이며 3,000더커트를 빌려주는 대가로 이자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다만 정해진 기간에 돈을 갚지 못하면 위약금조로 안토니오의 기름진 살을 딱 1파운드만 가져가겠다는 계약을 요구했다. 안토니오는 출항한 배가 2달 뒤에 돌아오면 27,000더커트가 생기기 때문에 3개월 후에 3,000더커트를 갚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흔쾌히 수락했다.

사건은 도착하기로 한 상선이 기상악화로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안토니오가 돈을 갚지 못하자 재판이 열렸다. 판사는 샤일록과 안토니오 사이의 계약체결은 아무 이상이 없으니 안토니오가 자신의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살 1파운드를 샤일록에게 내어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안토니오의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이다.

그러나 이때 판사는 또 다른 해석을 통해 안토니오를 살려냈다. 계약서에는 분명히 ‘살 1파운드’를 준다고 되어 있지만 단 한 방울의 피 조차도 준다는 말이 없었다. 판사는 샤일록이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으면서 살 1파운드를 가져가라고 판결했고, 샤일록이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피를 흘리지 않고 살을 가져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안토니오는 목숨을 구하게 된 다. 샤일록은 계약서에 따라 3,000더커트에 대한 이자는 물론이고 안토니오의 채무불이행에 따른 보상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안토니오가 3개월이 넘게 3,000더커트라는 거금을 진짜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빌려 썼을까?

이자는 화폐구매력 반영

그것은 당시 물가상승률을 봐야 알 수 있다. 당신이 100만원을 연 10%의 이자로 빌려줬다고 생각해보자. 1년 후에는 100만원은 물론이고 100만원의 사용대가로 이자 10만원까지 주머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1년 사이에 물가가 10% 올랐다면 1년 전 100만원이나 현재의 110만원이나 재화의 구매력은 같다. 화폐란 재화를 구매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100만원을 빌려주고 실제로 얻은 수익은 0%가 되는 셈이다. 반대로 1년 동안 돈을 빌려쓴 사람이 실제로 지불한 이자는 명목적으로 10%였지만 실제로는 0%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자율은 명목이자율이다. 기준금리, 콜금리, 국고채 금리, 대출금리 등 눈에 보이는 계약서에 등장하는 모든 이자율은 명목이자율이다. 그러나 실제로 돈을 빌리고 빌려주면서 지불한 이자는 화폐의 구매력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다시말해 명목이자율에서 물가상승률을 빼줘야 이자율의 실질가치를 반영한 것이며, 이것을 실질이자율이라고 한다.

물가를 반영한 실질이자율


기독교인인 안토니오는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지 않았다. 또한 자신도 돈을 빌리면서 이자를 지불하지 않았다. 당시 베니스의 기독교인은 그러했을 것이며 이는 우정이며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이자를 받지 않아도 낸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명목이자율이 0%라는 것이다. 만약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시대였다면, 명목이자율이 0%라도 실질이자율은 양(+)의 값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이자가 지불된 셈이다. 디플레이션 시대였다면 기독교인도 이자를 주고받은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이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안토니오의 분산투자와 한계점, 베사니오의 빚지는 소비와 이를 상환하는 자세, 노예의 거래, 공정한 계약과 불공정 계약의 무효 사유, 포셔의 행동에서 나타난 생산자잉여의 거부행위 등 곳곳에 많은 경제교육 소재가 많이 숨어있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차성훈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연구원 econcha@kdi.re.kr>


경제용어 풀이 - 명목 이자율과 실질 이자율

명목이자율은 계약서상에 나타난 이자율이며 실질이자율은 계약자 상호간에 실제로 지불한 이자율이다. 실질이자율은 명목이자율에서 물가상승률을 빼서 구하며, 이것을 피셔방정식이라고 부른다. 장기에 실질이자율이 대체로 일정하고, 이 경우 명목이자율과 물가상승률은 1:1의 관계에 있다. 이는 피셔효과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