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학생 보호가 우선…예방 차원서 필요"

"징계·처벌 위주로 주홍글씨 새겨선 안돼"

[시사이슈 찬반토론] 학교폭력 생활기록부에 적어야 할까요
학교폭력을 저지른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그 내용을 기록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을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최근 부쩍 늘어난 학교 폭력과 그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폭력 학생의 생활기록부에 그 내용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다. 가해 학생의 인권 침해와 낙인 효과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교과부의 지침을 거부하거나 유보하면서 일선 학교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교과부와 교육청이 상반되는 공문을 학교에 내려보내 혼선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이 문제는 정치권에까지 번져 야당 국회의원들은 올해 대입에서 학교생활기록부의 학교 폭력 가해 사실을 반영하지 않아야 한다며 이주호 교과부 장관에게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교과부 장관은 학교 폭력 학생부 기재에 대해 국회에서 논의해 법적 근거를 마련한 뒤 시행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중간 삭제 제도나 졸업 전 삭제 제도를 도입하라고 주장했다. 학교 폭력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여부를 둘러싼 찬반 양론을 알아본다.


찬성

교과부는 학생들의 행동발달 상황에 따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무성을 익히도록 하기 위해 학생부에 폭력도 기재토록 하자는 입장이다. 그 후에 행동 변화가 있으면 그 개선 사항까지도 기록해서 교육적으로 반영하자는 것이므로 낙인찍기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학생이니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게 되면 학교 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며 “사소한 학교 폭력도 범죄이므로 근본적인 정책으로 이를 뿌리뽑겠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이번 지시의 법적 근거에 대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는 훈령 등 행정규칙이라도 상위 법령의 위임이 있을 경우 대외적인 구속력을 갖는 법규명령으로 판시했다”며 “행정규제기본법도 법령에서 위임한 경우에는 규제 세부내용을 고시 등으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고 밝혔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 가족협의회 회장은 “학교 폭력을 학생부에 기재할 경우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일으켜 자연스럽게 학교 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부모에게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효과적이라는 견해도 제시했다. 조 회장은 가해 학생의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측에 대해 “학교 폭력 피해 학생이 평생 동안 고통받고 학업까지 포기하며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인권이라는 가치 아래 가해 학생을 보호할 게 아니라 다수의 피해 학생을 보호해야 한다. 생활지도를 체계적으로 하려면 문제학생에 대한 교사 간 정보 교환이 있어야 한다”며 찬성하는 입장이다.


반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가해 학생을 인생 실패자로 낙인찍고 국가가 학생의 내밀한 부분까지 사찰할 수 있다는 발상”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진보성향 교육감들 역시 학교 폭력의 학생부 기재에 반대하고 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학생부 기재 보류 조치와 이미 기재된 내용의 삭제 요청은 교육감의 정당한 지도감독권이라고 강조했다.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장관의 훈령으로 학생의 기본건을 제한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며 “학교 폭력보다 비행의 정도가 훨씬 심한 소년사범에 대해서도 소년법은 사건 정보를 외부 기관의 조회에 응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학교 폭력을 학생부에 기재토록 한 교과부의 지침은 소년법의 기본정신에도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가해 학생도 우리의 일그러진 교육제도가 만들어낸 피해자일 수 있다”며 “피해 학생에게는 치유를, 가해 학생에게는 치료의 기회를 주도록 노력해야지 교과부가 나서 징계와 처벌 위주로 학생들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교과부 지침은 수단의 적정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했고 학생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자기정보 결정권을 침해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변은 이어 “개인 인격과 밀접히 연관된 민감한 정보를 수집, 보유하려면 법률의 명확한 수권이 필요한데도 교과부 지침은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며 법적 근거의 미비 문제도 꼽았다.


생각하기

한국교육개발원 설문조사에서 교장·교감의 86.6%, 학부모의 81.2%, 교사의 79.9%, 일반 국민의 78.2%, 학생의 68.9%는 학생부 기재가 학교 폭력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물론 다수가 원하는 것이 꼭 언제나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는 우리의 학교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학교폭력 생활기록부에 적어야 할까요
학교 폭력의 학생부 기록 여부는 이것이 아직 인격이 완성되지 않은 어린 가해 학생을 옥죄는 주홍글씨가 될 것인지, 아니면 학교 폭력도 줄이고 가해 학생을 효과적으로 계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를 비교 형량해서 결정돼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중요한 점은 학생부 기재 자체보다는 이를 사후적으로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설사 학생부에 기재하더라도 사후에 긍정적인 행동 변화가 있을 경우 이를 특기하는 식으로 하면 꼭 낙인으로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상급학교 교사 입장에서는 해당 학생의 특성을 파악하고 과거 폭력 사실이 있었다면 더 유념해서 지도할 필요성을 느낄 수도 있는 만큼 무조건 반대보다는 효율적 운영이 관건일 것이다. 특히 사후에 일정한 기간 학생의 행동에 괄목할 변화가 있다면 일정한 기준 아래 과거 기록을 삭제하는 식으로 운영한다면 꼭 비교육적인 처사라고만 볼 것은 아니다. 다만 대입전형에서 이를 활용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좀 더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