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유대인이 전세계 금융을 지배한 까닭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융인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으로서 국제 거래의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달러에 대한 발권력을 갖고 있는 미국연방준비은행(Fed)의 의장 벤 버냉키는 물론이고, 미국 재무장관 가이트너 역시 유대인이다. 국제 경제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창설된 기구인 IMF 총재 역시 얼마 전까지 유대인이었으며, 세계은행 총재 또한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이 본격적으로 금융업에 종사하게 된 것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기독교인들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죄악시했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준 고리대금업자들은 파문을 당했고, 이들이 성지에 묻히려면 돈을 교회에 반환해야만 했다. 유대인들 역시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일은 금기였다. 하지만 구약성서 신명기에 나오는 “타인에게 이자를 받을지라도 네 형제들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한 구절 덕분에 그들은 금융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즉 유대인은 이 구절을 같은 유대인에게는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되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빌려줘도 된다는 것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금융업에 뛰어든 유대인

이러한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유대인들은 중세 이후 유럽 각지에서 금융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이방인인 자신들의 권리와 위치를 확보해 나갔다. 유럽 역사에 있어서 가장 번성했던 상업도시들의 경로가 유대인이 이주한 경로와 일치한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윌리엄 3세가 스튜어트 왕가의 제임스 2세를 왕위에서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윌리엄 3세는 당시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했던 유대인들과 손잡았고, 그 대가로 화폐발행권을 얻어낸 유대인 상인들은 1694년 발권력을 가진 잉글랜드 은행을 설립했다. 이후로 유대인들은 영국 내 금융권을 장악했고 유대인이 영국의 수상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소수인종이자 이방인에 불과한 유대인들이 어디서든 자신들의 권리를 확보하고 막대한 영향력까지 행사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질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들이 금융분야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금융이라는 것이 국민경제에 있어 도대체 어떤 역할을 수행하기에 유대인들이 불리한 환경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걸까?

금융의 가장 원초적 기능은 자금을 빌려주고 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이유는 그러한 행위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갖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돈이 없어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이 돈을 빌려 물건을 산다면 그의 후생은 증가할 것이다. 그 물건이 지금 당장 꼭 필요한 물건일 경우 더욱 그렇다. 정말 번뜩이는 사업 아이디어가 생겼지만, 돈이 없어 이를 실현시킬 수 없는 사람이 돈을 빌려 사업을 수행하고 큰돈을 벌게 된다면, 이는 돈을 빌린 당사자의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가시키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후생을 증가시키는 금융

이익을 거두는 것은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유 자금을 단순히 방 한 구석에 보관만 하고 있다면 아무런 이득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물가 상승을 고려할 경우 손해다. 이 때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여유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면 쉽게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금융업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사회 구성원들의 후생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산업이다. 유대인은 바로 이러한 금융의 기능을 꿰뚫고 있었던 셈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은 물론이고 귀족과 왕족에게 필요한 돈을 빌려주어 그들의 후생 증대에 기여했으며, 새로운 형태의 상업이 번성할 때 이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점차 중요성이 커지던 금융업을 장악한 유대인들은 국민경제에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신들의 부와 권리, 입지를 굳혀온 것이다.

금융거래가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고 희망하는 자금 거래 규모와 거래 방식이 비슷한 상대방을 찾아야 한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거나, 빌려달라는 금액과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금액에 차이가 있다면 돈이 있어도 빌려주지 못한다. 하지만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개인 단위로 금융의 기능을 수행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금융기관이다.

금융기관은 원하는 방식으로 금융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금 공급자의 경우 자신의 여유 자금이 아주 소규모라 적절한 자금 수요자를 찾지 못할 수 있으며 자금 수요자 역시 원하는 만큼의 자금을 빌려주려는 사람을 직접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금융기관은 자금의 공급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자금이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금액을 빌려주기 때문에, 각 경제주체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거래 상대를 직접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금융기관은 금융거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거래할 경우 자금 수요자가 돈을 갚지 않을 수 있다는 위험을 자금 공급자 개인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금융기관은 자금을 빌려주려는 다수의 공급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다수의 수요자에게 빌려주기 때문에 금융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이 여러 사람에게 분산된다.

금융이 중요한 이유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유대인이 전세계 금융을 지배한 까닭은?
금융기관을 통한 금융거래는 금융거래비용을 낮춰준다는 장점도 있다. 금융기관은 금융거래에 필요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거래 당사자들을 대신해 거래 상대방의 신용 정도와 거래 이후 신용 변동까지 확인해 주기 때문에 거래 당사자가 직접 상대방을 감시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준다. 또한 금융거래 체결 시 필요한 각종 법률서비스도 제공해 주기 때문에 금융거래에서 발생하는 직접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국민경제를 인간의 신체에 비유한다면, 금융은 몸 안에 흐르는 피에 비유할 수 있다. 피가 원활하게 돌지 않으면 신체의 각 부위가 제 기능을 담당할 수 없듯이, 금융을 통해서 필요한 곳에 적절히 자금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 역시 정상적인 작동이 어려울 것이다. 금융기능과 금융기관이 비단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금융

금전을 융통하는 일을 말한다. 자금을 융통하는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이자가 붙어 자금의 융통이 이루어지는데, 이로 인해 금융을 흔히 일정 기간을 정하여 앞으로 있을 원금의 상환과 이자지급에 대해 상대방을 신용하고 자금을 이전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