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경제의 중심축' 글로벌 제조업 휘청…유럽은 빈사상태
“환율전쟁, 수출기업 법인세 감면, 국산부품 사용 의무화….”

경기가 어려워지면 국내외 신문에 나오는 얘기다. 이 정책들의 공통점은 제조업 지원책이라는 것이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 등의 여파로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세계 각국은 제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달러를 매입,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준다. 해외에 있던 공장을 폐쇄하고 본국으로 돌아오면 지원해주는 각종 정책도 마련하고 있다. 제조업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용 창출 및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한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잘 버틸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제조업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 동반 침체

최근 세계 제조업 경기는 급속히 위축됐다. 유럽 재정위기 영향이 가장 크다. 재정위기로 유럽에서는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다. 실업률이 20%를 웃도는 나라도 많다.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 각국 정부는 앞으로 지출을 줄일 것이다. 그러면 실업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돈을 쓸 사람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물건을 만들어 유럽시장에 내놔도 사서 쓸 사람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세계 제조업 경기가 나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럽 제조업은 이미 빈사 상태다. 유로존(유로화사용 17개국) 제조업 상황을 보여주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8월 45.1로 13개월 연속 위축세를 이어갔다. 이 지수는 50을 밑돌면 경기위축을, 웃돌면 경기확장을 의미한다. 13개월 연속 경기가 위축됐다는 것은 불황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재정위기에도 비교적 잘 버텨온 것으로 평가받았던 독일의 제조업 경기도 나빠졌다. 독일의 8월 제조업 PMI는 44.7로 6개월째 위축세를 보였다. 독일은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다. 따라서 독일 제조업 경기가 위축됐다는 것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수요가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상황도 심각하다. HSBC가 집계한 중국 제조업 지수는 10개월 연속 위축되며 3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럽에서 난 불은 미국으로도 옮겨 붙었다. 미국 제조업 상황을 보여주는 공급관리협회(ISM) 8월 PMI는 49.6으로 세 달 연속 경기확장 기준선인 50을 밑돌았다. 이는 금융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2009년 7월 이후 최저치다.

#한국도 불황형 흑자

한국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7월 경상수지는 61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사상 최대 흑자였다. 제품을 잘 팔았단 얘기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달라진다. 수출입이 모두 감소하면서 발생한 흑자이기 때문이다. 수출 감소폭보다 수입 감소폭이 더 컸던 것이다. 이를 ‘불황형 흑자’라고 부른다.

7월 흑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수지 흑자는 6월 50억달러에서 53억달러로 늘었다. 이 가운데 수출은 466억달러로 6월(468억)보다 소폭 줄었다. 전년동기에 비해서는 4.1% 감소했다. 선박 수출이 급감한 데다 정보통신기기, 석유화학제품의 수출단가가 떨어진 영향이 컸다. 수입은 413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8% 줄었다. 지역별로는 중남미와 동남아시아로의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유럽연합(EU), 중국에 대한 수출도 계속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제조업은 중산층 양성소

제조업 위축을 걱정하는 이유는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제발전 역사가 제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미국 경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60년대까지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기반은 제조업이었다. 자동차, 전자 등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제조업 경쟁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조업 경쟁력은 미국을 중산층의 나라로 만들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계속 올라 이들이 소득을 기반으로 소비에 나서는 탄탄한 중산층이 됐다. 제조업이 중산층 양성소가 된 것이다. 어떤 사회든지 중산층이 두터워야 안정적이다. 이 때를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미국 제조업체들은 공장을 해외로 옮기기 시작했다. 임금과 땅 값이 싼 나라를 찾아 떠난 것이다. 중국과 동유럽 국가들이 주요 생산기지가 됐다. 한국도 하청기지 역할을 했다.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하자 미국내 제조업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중산층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제조업의 공백을 메운 것은 금융과 정보기술(IT) 산업이었다. 그러나 두 산업 모두 대량으로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은 아니었다. 특히 IT 산업이 발달할수록 사람이 할 일을 로봇이나 컴퓨터가 대신해 제조업 고용 창출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런 흐름은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다. 그해 당선된 버락 오마바 대통령은 금융위기 수습에 나섰다. 수습책으로 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으로 눈을 돌렸다. 높은 실업률을 떨어뜨릴 유일한 방법이 제조업 고용 확대였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한국 독일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전설리 한국경제신문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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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PMI 보면 글로벌 제조업 현황이 한눈에…

[Focus] '경제의 중심축' 글로벌 제조업 휘청…유럽은 빈사상태
세계 1위 경제국인 미국의 제조업 현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제지표는 미국 공급관리협회(ISM·Institute for Supply Management)가 발표하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Purchasing Managers’ Index)다. ISM이 매월 미국의 400명 구매관리자들에게 해당 산업의 제품가격, 신규주문, 출하, 생산, 재고, 고용 상황에 대해 설문 조사해 이 지수를 산출한다.

이 지표는 경제 전반의 상황을 잘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설문조사 대상자인 구매관리자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 가장 경기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제품이 잘팔리면 구매관리자들은 즉각 제품 또는 자재 주문을 늘린다. 제품이 준비돼 있지 않아 팔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제품이 잘 안 팔리면 바로 줄인다. 재고와 원자재가 쌓이면 그만큼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지표는 매월 초 월별로 발표되는 다른 지표들보다 먼저 공개돼 경기선행지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장 빨리 발표되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시점의 경제상황을 확인해볼수 있단 얘기다. PMI는 50을 경기 확장과 위축을 판단하는 기준선으로 삼는다. 지수가 50을 밑돌면 경기위축을, 웃돌면 경기확장을 의미한다.

세계 2위 경제국인 중국의 주요 제조업 지표로는 HSBC가 매월 발표하는 PMI가 가장 많이 인용된다. 중국 국가통계국도 PMI를 발표하지만 조작 가능성이 있어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떨어진다. 한국은 PMI를 따로 산출하지 않는다. 비슷한 지표로 한국은행, 산업은행,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에서 조사, 발표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Business Survey Index)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