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위험 덜고 내수부양 위해 필요"

"사업 망한다고 나랏돈으로 도와주는 격"

[시사이슈 찬반토론] 정부 재정 동원한'하우스푸어'대책 옳을까요
새누리당이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 소위 ‘하우스푸어’ 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 재정을 동원해 하우스푸어의 집을 나라에서 사들인 뒤 그대로 눌러살 수 있게 전세나 월세로 임대해 주는 방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들 하우스푸어가 나중에 형편이 좀 나아지면 나라에 팔았던 자신의 집을 우선적으로 되살 수 있는 환매권을 함께 준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주로 상업용 건물의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값비싼 건물을 타인에게 판 뒤 이를 빌려서 쓰는 소위 ‘세일 앤드 리스백’(sale and lease back) 방식을 일반 주택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마치 부실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제해 주는 것과 유사하다. 다만 부실기업의 오너에 대해서는 공적자금이 투입될 경우 경영권을 내놓는 등 일정한 책임을 물리는 데 반해 하우스푸어 주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을 물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새누리당은 조만간 당정협의를 거쳐 하우스푸어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빚에 쪼들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우스푸어 대책을 둘러싼 찬반양론을 알아본다.


찬성

새누리당을 비롯해 하우스푸어를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필요성을 역설한다. 우선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가장 위험한 요소로 꼽힌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작이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이었는데 이게 바로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문제였던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재 150만가구 정도가 하우스푸어로 추정되고 있는데 혹시라도 이 중 상당 수 가계들이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을 갚지 못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연달아 담보로 잡은 집을 경매에 부칠 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가뜩이나 약세를 보이고 있는 집값이 더욱 급락할 수도 있다는 논리다. 이는 다시 대출부실-가계부실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며 우리 경제도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부동산버블이 꺼지며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우스푸어 지원을 찬성하는 측이 내세우는 또 다른 이유는 꺼져가는 내수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우스푸어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만 덜면 상당한 구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산층인데, 이들이 좀 여유를 갖게 되면 소비 등이 다소라도 회복돼 가뜩이나 수출과 내수의 동반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제가 조금이라도 활력을 띨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것보다 하우스푸어를 지원하는 것이 더 경기진작에 효과적이라며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다.


반대

새누리당과 달리 정부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런 식으로 하우스푸어를 정부 돈으로 구제해주면 신용대출 연체자, 학자금대출로 곤란을 겪는 학생 등 부채를 갚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든 사람들이 ‘나도 어려우니 나랏돈으로 도와달라’고 나설 텐데 이를 어떻게 다 감당하겠느냐는 것이다. 경제는 기본적으로 자기 책임인데 빚을 내서 집을 샀다가 집값이 떨어졌다고 나라에서 도와준다면 빚을 내서 사업을 하다 망해도 도와줘야 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하우스푸어가 과연 정부 지원 대상인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하우스푸어는 어쨌든 내집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진자’로 볼 수 있는데 이들을 도와준다는 것은 무주택자들을 두 번 울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찬성론자들이 하우스푸어가 주택담보대출뿐만 아니면 상당한 구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산층이라고 했는데 그런 상당한 구매력이 있는 중산층을 왜 나라에서 도와주냐는 말이다. 집이 안 팔린다지만 이는 집값이 내린 걸 인정하지 않고 크게 손해보지 않고 팔려고 하니까 그렇지 싸게 내놓으면 왜 집이 안 팔리겠느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시급한 것은 하우스푸어 지원이 아니라 아직도 내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무주택자들, 다시 말해 ‘하우스리스 푸어’(houseless poor)에게 최소한의 주거권을 확보해주는 일이라는 견해도 같은 맥락이다.

재원 확보 방안도 마땅치 않다. 하우스푸어를 150만가구로 볼 때 가구당 집값을 평균 2억원으로 잡아도 모두 300조원이 든다. 이는 거의 1년치 나라 예산 규모에 해당하는 거금인데 이 돈을 구할 마땅한 방법도 없다.


생각하기

하우스푸어 대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경제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는 나라에서 국민들에게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빚내서 집을 산 결과 집값이 오르면 정상이고 집값이 떨어지면 비정상이라고 간주하는 식이다. 부동산 투기에 성공하지 못하면 나라가 집을 사주고 집값이 다시 오를 때까지 갖고 있겠다는 것이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시사이슈 찬반토론] 정부 재정 동원한'하우스푸어'대책 옳을까요
만약 빚을 내서 집을 샀는데 집값이 떨어져 애를 먹는 사람들을 정부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면 빚을 내서 집을 산 결과 집값이 크게 오른 사람에게는 그 차액만큼을 징수해 무주택자를 도와줘야 형평성이 유지될 것이다.

물론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다. 주택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의 터전인 만큼 다른 자산투자와 같은 차원에서 논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다. 집값이 떨어져 원리금 상환에 애를 먹는 사람들의 딱한 심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가계부채 문제는 상환기간 연장처럼 부채에 대한 본인 책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한 수단으로 어려움을 경감시켜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 최소한의 국민 주거권이 걱정된다면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보다는 무주택자부터 돌봐야 하는 게 순서다. 하우스푸어의 집을 나랏돈을 동원해 사 주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포퓰리즘이다. 이런 식의 대책이 이어지면 자기 책임의 원칙과 금융질서는 뿌리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