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눈 위에 서리가 내리는 '스태그플레이션'
‘설상가상(雪上加霜)’은 눈이 내린 위에 서리가 더해졌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불운하거나 힘든 일이 연거푸 계속 일어날 때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 ‘설상가상’의 유래는 중국 송나라 시대 도원이 지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라는 불교서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덕전등록 제8권의 ‘대양화상’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이(伊) 선사가 문안을 왔을 때 대양화상이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앞만 볼 줄 알지 뒤를 볼 줄 모르는구려.” 그러자 이 선사가 대답했다. “하얀 눈 위에 흰서리를 더하는 말씀입니다(雪上更加霜, 설상갱가상).”

다른 사람의 눈이 없을 때에도 수양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에 ‘알아서 할 테니 참견하지 말라’는 의미로 설상가상이라고 답한 것이다. 이렇듯 설상가상은 원래 ‘쓸데없는 참견’ 또는 ‘중복’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변해 좋지 않은 일이 연속해서 발생하는 경우를 빗대어 표현할 때 사용되고 있다.

저성장속 고물가'설상가상'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가 침체하여 생산 활동이 위축되고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저성장과 고물가라는 불행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경제의 ‘설상가상’인 셈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말은 영국 재무장관을 지낸 레인 매클라우드가 1965년 의회 연설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는 물가와 실업 간에 역(-)의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필립스는 1958년 발표한 논문에서 임금상승률과 실업률은 역사적으로 서로 상충되는 관계를 보여왔다고 역설했다. 임금상승률이 높았던 해에는 실업률이 낮았고, 임금상승률이 낮았던 해에는 실업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필립스는 이러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실업률이 높다는 것은 경기 침체로 총수요가 줄어 고용사정이 좋지 않고, 이로 인해 노동시장에 유휴인력이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이때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수요가 창출되어 경기가 살아난다. 동시에 통화량이 증가하여 이자율이 하락하고 기업의 투자는 증대된다. 결국 수요와 투자가 확대되어 실업률은 점차 감소하게 된다. 한편 생산이 증가하면 노동 수요가 늘어 기업은 임금인상 압박을 받게 된다. 기업은 임금 인상을 받아들이는 대신, 이를 상품가격에 전가하여 물가상승을 촉발한다. 결론적으로 실업률은 하락하고 물가는 상승하게 된다. 즉, 실업률을 잡기 위해서는 물가 상승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필립스의 주장 이후 각국 정부는 경제 성장을 추구할 것인지 물가 안정을 우선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해왔다. 두 정책목표는 동시에 달성할 수 없고, 어느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쪽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각국 정부는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필립스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현실에서 발생한 것이다.

1970년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의 생산량을 감축하자 배럴당 4달러 안팎이던 원유가격이 3배 이상 급등하였다. 1970년대 후반에는 원유가격이 심지어 배럴당 4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다. 원유는 운송수단의 연료에서부터 난방, 취사 등 그 쓰임새가 생활 전반에 걸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따라서 당시 원유가격의 상승은 생산비용과 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소비가 위축되고 판매가 감소하자 기업들은 긴축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신규 채용은 꿈도 못 꾸었고 기존의 직원들도 해고되어 실업률은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물가가 상승하는 국면에서 경기가 침체되고 실업률도 높아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딜레마

스태그플레이션은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난 문제다. 따라서 필립스의 이론을 굳게 믿던 당시 주류 경제학계에 스태그플레이션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오일쇼크가 있기 전에는 수요의 변화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공급에 비해 수요의 증가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문제의 원인이 수요에 있다고 생각하다보니 해결 방안도 수요의 측면에서 모색했다. 경기가 위축되어 있을 때는 세금을 감면하거나 정부지출을 늘려 수요를 증대하고, 경기가 과열되면 시중통화량을 줄여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은 수요에 기인한 인플레이션과는 그 태생부터가 달랐다. 원유가격의 상승은 기업의 생산비용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수요가 아닌 공급 측면에서 충격이 발생한 것이다. 공급 충격이 발생하면 총공급은 감소하기 마련이다. 그 결과 물가는 오르고 산출량은 줄어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수요의 관리를 통한 해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물가와 실업률이 모두 높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상황을 개선하면 다른 쪽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 때문이다. 발생의 원인이 공급 측면에 있으므로 공급 충격을 상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최우선일 수 있다.

생산기술의 발달은 생산비용을 절감하여 재화의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가격이 떨어지면 시장 수요가 늘어 경기가 차츰 활발해진다. 경기가 회복 국면에 들어서면 기업의 투자가 늘어 일자리가 생겨난다. 즉, 생산기술의 발달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장막을 걷어낼 수 있는 방책인 셈이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눈 위에 서리가 내리는 '스태그플레이션'
예측하기 힘든 경제의'운명'


우리는 흔히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다’고 한다. ‘사람의 운명은 좋을지 나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말을 할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경제도 인생과 같이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새옹지마’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운명은 개척해나가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주어진 소임을 다한다면 장밋빛 인생도 결코 허황된 꿈은 아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고 상황에 맞게 대처한다면 스태그플레이션도 결코 극복하지 못할 대상은 아닐 것이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 용어 풀이☞스태그플레이션 (stagflation)

경기가 침체하여 생산 활동이 위축되고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의 고공행진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정체 또는 침체를 뜻하는 단어 ‘stagnation’과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inflation’을 합성한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