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한국 국가신용등급 한단계 상향…일본과 '어깨' 나란히
알파벳과 숫자 몇 개에 대한민국이 흥분으로 들썩였다. ‘Aa3’. 한국이 지난달 27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에서 받은 역대 최고 신용등급이다. 일본 중국과 같은 급이다. 신용등급이 높다는 것은 국가 재정이 튼튼하고 경쟁력이 높아 투자할 만한 국가란 의미로 국제 무대에서 ‘노는 물이 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투기등급까지 추락했던 한국 경제가 이제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다.

#한국경제, 외부 충격에 강하다


무디스는 이날 한국의 신용등급을 ‘A1’에서 ‘Aa3’로 한 단계 높이고 등급 전망도 ‘안정적(stable)’으로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Aa3는 무디스가 매기는 21개 신용등급 가운데 네 번째로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무디스로부터 받은 역대 최고 등급이다. 일본 중국 벨기에와 등급이 같다.

기존의 신용등급 A(싱글A)는 ‘신용도는 높지만 예외적으로 금전적 의무(채무를 갚는 등) 이행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한 단계 올라간 ‘AA(더블A)’는 금전적 의무 불이행 가능성을 배제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돈을 빌려줬거나 투자했을 때 떼일 염려가 매우 적다는 뜻이다.

무디스는 신용등급 상향의 이유로 양호한 재정건전성을 꼽았다.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과도한 빚 부담을 진 스페인, 그리스 등과 달리 위기관리를 잘해왔다는 것이다. 외환보유액이 많고 국가부채도 상대적으로 적어 비상시 외부 충격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수출 경쟁력을 바탕으로 높은 경제활력을 유지하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복원력이 크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은 그동안 재정건전성과 높은 경제성장에도 상대적으로 낮은 신용등급을 받았다. 북한에서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경제가 어느 정도 타격을 받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같은 리스크 때문에 늘 점수를 짜게 받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의 특수성 때문에 실제보다 낮게 평가되는 현상)’란 단어까지 생겼다. 하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달랐다. 무디스는 한국이 북한의 김정은 체제 이행 과정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번 신용등급 상향에서 북한 리스크 완화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례적인 등급 상향

[Focus] 한국 국가신용등급 한단계 상향…일본과 '어깨' 나란히
한국의 신용등급 상향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주요국의 신용등급이나 등급 전망이 줄줄이 떨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A’ 등급 이상인 국가 가운데 올 들어 신용등급이 오른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무디스가 지난 6월 터키의 신용등급을 올린 적은 있지만 ‘Ba2’에서 ‘Ba1’으로 올린 것이었다.

A등급 이상을 받아오던 나라들은 최근 수난 시대를 겪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의 근원지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초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두 단계 낮췄다. 피치도 ‘A+’에서 ‘A-’로 내렸다. 스페인에 대해선 S&P가 4월에, 피치와 무디스가 6월에 신용등급을 2~3단계 하향했다.

프랑스와 일본 등 전통적인 선진국들도 신용등급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S&P는 올해 1월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트리플에이)’에서 한 단계 아래인 ‘AA+’로 낮췄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PI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의 채권을 많이 갖고 있어 향후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일본은 누적된 공공부채 때문에 굴욕을 맛봤다. 피치는 지난 5월 일본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두 단계 내렸다.

#다른 신용평가사도 등급 올릴까

우리도 신용등급 강등으로 쓴맛을 본 적이 있다. 한국은 1997년 10월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호주 스웨덴 등과 함께 AA-, A1의 신용등급을 유지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투기등급까지 추락했다. 지급 능력이 불확실한 ‘투자부적격’ 국가로 낙인 찍힌 것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의 군살을 빼면서 조금씩 등급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웠던 2007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무디스는 그해 7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A3’에서 ‘A2’로 높인 데 이어 2010년 4월엔 ‘A1’으로 다시 상향했다.

다른 글로벌 신용평가사들도 등급 상향에 가세할지가 관심사다. 피치는 한국을 중국 일본과 같은 ‘A+’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희망적이다. 등급 전망이 긍정적이면 6개월에서 1년 내에 등급을 상향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S&P는 2005년 7월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올린 뒤 아직 변화가 없지만 일각에선 ‘A+’로 상향 가능성을 높이 친다.

국가 신용등급이 올라가면 외국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이자 부담이 적어진다. 정부는 대외 채무에 대한 이자비용을 연간 4억 달러(약 4500억원)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적 실익보다 더 소중한 것은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은성수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국장은 “건전 재정과 가계부채 종합대책 등 정부의 경제 운용이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며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경제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유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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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얼마나 잘 갚을수 있는지 점수로 매긴 것

국가 신용등급이 뭐지…

신용등급이란 개인이나 기업, 국가가 빚을 졌을 때 얼마나 잘 갚을 수 있는지 점수를 매긴 것이다. 국가 신용등급이 높은 나라는 재정이 건전하고 경제 활력이 높은 선진국들이 많다.

한 국가가 돈이 필요해 외국에서 채권(외채)을 발행할 때는 신용평가사가 매긴 신용등급에 따라 이자율이 결정된다. 높은 등급의 국가들은 채무반환 능력이 높다고 인정돼 싼 이자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돈을 떼일 염려가 적은 ‘투자적격’ 국가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이 선뜻 자금을 조달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금 조달과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뜻이다. 경제적 타격을 입을 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에도 마이너스다. 국내 금융사나 기업도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 국가 신용등급의 영향을 받는다.
[Focus] 한국 국가신용등급 한단계 상향…일본과 '어깨' 나란히
국가 신용등급을 매기는 글로벌 신용평가사들로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Moody’s), 피치(Fitch)가 유명하다. 이들은 국가별로 재정수지와 외환보유액, 부채규모, 경제성장률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신용등급은 주로 알파벳과 +, -로 표기된다. 무디스는 최고 등급을 Aaa로, S&P나 피치는 AAA로 표시한다. 투자 위험이 커 등급을 매기기 어려운 나라는 ‘투기등급’으로 분류한다. S&P는 지난해 8월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절대 안전을 뜻하는 트리플A(AAA)에서 한 단계 아래인 더블A+(AA+)로 낮췄다. 막대한 국가부채가 문제였다. 경제대국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은 70년 만에 처음이어서 글로벌 투자심리가 급격히 냉각됐다. ‘신용평가사 3형제’가 글로벌 경제의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