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유로존 다시 길을 잃다…그리스 '벼랑끝으로'
“여름 휴가는 끝났고 불확실한 미래만이 남았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최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에 대해 내린 평가다. 유로존이 그리스의 긴축재정 시한 연장 요청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그리스는 유로존 탈퇴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스페인은 다음달 중 전면적 구제금융을 받게 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경기 침체로 재정적자 감축계획이 차질을 빚게 되면서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로이카 보고서에 달린 운명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그리스의 긴축 기간 연장요청을 사실상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는 당초 내년부터 2014년까지로 예정된 115억유로 규모의 긴축재정 시한을 2016년까지 연장해달라고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과 독일, 프랑스 등에 요구했었다. 지난해 9.1%이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을 2014년까지 3%로 낮추라는 구제금융 조건을 맞출 수 없으니 시한을 더 늦춰달라는 것이다.

그리스의 긴축재정 시한을 연장해줄 경우 독일 프랑스 등 지원국들의 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수가 부족한 데다 국채 금리가 더 오르면 그리스 정부로선 갚아야 할 돈이 늘어나 지원국들이 부담해야 할 자금이 200억유로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메르켈 총리가 지난달 24일 안토니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유럽연합(EU)과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 실사단의 그리스 조사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다. 최근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그리스에 돈이나 시간을 더 준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고 재확인했다. 그러면서도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에는 반대했다. 그는 “그리스를 유로존에 잔류시키는 것이 독일 정부의 숙원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사마라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후 “그리스는 유로존에 남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그리스는 구제금융 선결조건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 “트로이카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그리스의 운명은 10월 나올 예정인 트로이카 보고서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실사 결과 그리스가 재정적자 감축을 핵심으로 한 구제금융 조건을 지키지 못할 경우 그리스는 2차 구제금융 중 일부인 312억유로를 지원받을 수 없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

#그리스, 유로존 잔류 가능할까?

시장 전문가들은 그리스에 대한 추가 지원 및 채무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특히 추가 지원 및 채무조정은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선 그리스가 침체를 극복하고 성장세로 돌아설 수 있을지의 문제다. 그리스의 국가부채비율을 GDP의 12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현재 그리스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60% 수준이다. IMF는 2014년으로 예정된 그리스의 부채감축 계획이 비현실적이라고 판단, 2020년까지 부채를 줄일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 경제가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특히 올해 7%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부채 비율은 오히려 높아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예산 삭감도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그리스 정부는 2013~2014년간 예산을 115억유로 추가 삭감한다는 계획이지만 이것이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기에 그리스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200억~300억유로의 예산을 추가로 삭감하는 초강도 긴축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형편이다.

그리스가 부채비율 감소와 예산삭감 등을 성공적으로 해낸다면 그리스는 성공적으로 유로존에 잔류할 수 있을 전망이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부활보다 벼랑 끝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스페인, 포르투갈도 위험 고조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스페인이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 다음달 중순 이후 전면적인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는 10월 만기가 돌아오는 280억유로의 국채를 상환하려면 구제금융 수혈이 절박하다는 분석이다. 이 보고서는 “이미 은행권 구제금융을 요청한 스페인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에 전면적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전에 ECB가 국채매입을 재개할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포르투갈도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이나 긴축재정 시한 연장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예상보다 경제 상황이 나빠져 재정상태가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FT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포르투갈의 세수는 전년 동기 대비 3.5% 줄었다. 법인세가 15.6%나 줄어드는 등 산업 침체가 뚜렷해지고 있다. 포르투갈은 올해 재정적자 감축 목표치인 4.5%를 달성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지난달 28일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만나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여부와 스페인 국채 매입 방안 등을 논의한다. 지난달 29일과 30일에는 메르켈 총리 및 올랑드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ECB의 국채 매입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임기훈 한국경제신문기자 shagg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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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뼈 깎는 긴축에도 유럽은 '시큰둥'

[Global Issue] 유로존 다시 길을 잃다…그리스 '벼랑끝으로'
그리스가 국유재산까지 팔아치우는 등 눈물겨운 긴축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를 비롯한 재정위기국 구제에 대한 유럽의 입장은 그리 우호적이지 못하다. 추가적으로 돈을 주는 것도 국채를 매입하는 것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유럽 재정위기 해결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최근 국방비 삭감을 위해 국유 제트기 3대 중 1대를 매각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리스 정부는 매각 대금을 그리스 군 예산으로 충당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최근 국방 예산을 줄이고 지방정부 소유의 자산들을 매각해 190억유로 규모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의 일부다.

이 같은 긴축에도 그리스나 스페인 등 재정위기국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독일 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서 국채 매입 등 구제안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6일 유럽중앙은행(ECB) 회의에서 양적완화책이 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재정위기국 국채 매입 재개는 돈을 찍어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는 ECB 권한 밖의 일”이라며 “ECB의 국채 매입은 마약처럼 중독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도 “그리스에 추가 구제금융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며 “우리는 그리스를 두 번이나 도와줬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돈줄’인 독일과 네덜란드가 반대할 경우 ECB가 추진하고 있는 양적완화 정책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투자자들은 6일 ECB 통화정책회의에서 국채 매입, 장기대출프로그램(LTRO) 등 양적완화 조치가 발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