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뜨거워지는 '센카쿠' 분쟁…꿈틀대는 中·日 민족주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홍콩 시위대에 이어 일본 우익단체들이 잇따라 센카쿠열도에 기습 상륙하면서 양국 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당초 일본 정부는 이번 사태를 가급적 조용히 처리하길 원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5일 상륙한 홍콩 시위대를 일본 검찰에 넘기지 않고 발빠르게 강제 송환함으로써 문제를 조기에 매듭지으려 했다. 하지만 일본 내 우익 세력이 격렬히 반발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갈수록 악화하는 중국 내 여론도 센카쿠열도의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석유매장 가능성…분쟁 격화

센카쿠열도는 대만과 일본 오키나와 사이에 있는 5개의 무인도와 3개의 암초로 구성된 지역이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서남쪽으로 400㎞, 중국 대륙에서는 동쪽으로 350㎞, 대만에서는 북동쪽으로 190㎞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중국·대만과 일본 사이 해역의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셈이다. 그만큼 이 지역을 차지하면 넓은 해역을 자국 영토로 삼을 수 있다. 또 해양교통로 한가운데에 있어 국가 안보에서도 전략요충지다.

원래 이 지역은 주인 없는 무인도들이었다. 일본이 자국 영토에 편입한 시기는 청일전쟁 직후인 1895년이다. 일본은 1885년 오키나와에 살던 민간인 고가 다쓰시로가 발견한 뒤, 주인 없는 땅임을 확인하고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한다. 1972년 미국이 관리하던 오키나와를 반환받은 뒤 계속 점유하고 있다.

이 지역이 국제분쟁지역으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1969년 유엔(UN) 산하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가 일대 해역을 탐사한 뒤 석유매장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면서다. 이름 없는 섬이 자원의 보고가 된 셈이다. 대만 정부는 1970년 해양유전탐사 및 체굴조례를 통과시키면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일본, 대만은 이 일대 대륙붕에 대한 공동 개발에 합의한다. 중국도 1970년부터 센카쿠열도가 자국령임을 주장했다. 이후 중·미, 중·일 수교를 계기로 중국이 유일한 합법 정부로 간주되면서 대만은 이전 대륙붕 공동 개발 협정에서 제외되고 중국과 일본의 영유권 분쟁은 본격화되었다. 이 일대 자원이 분쟁의 근원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효지배'흔드는 중국의 공세

중국 측은 1863년 청나라가 작성한 지도에 푸젠성에 속한 댜오위다오로 표시되어 있다는 것을 영유권의 근거로 삼고 있다. 일본은 실질적으로 영토로서 점유권을 행사하는 ‘실효적 지배’를 굳히기 위해 가급적 조용한 대응으로 일관해왔다. 불과 100년 전에 무인도에 말뚝을 박은 셈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이 지역을 19세기 영국 해군이 붙인 ‘피너클 아일랜드’란 명칭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국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긴장이 조성되고 국제사회에 분쟁지역으로 인식되는 게 유리하다. 중국 어민들이 해당 수역에서 어로 행위를 하다 일본 측에 나포되는 등의 방식으로 분쟁이 진행되는 원인이다. 중국측 전투기나 어업지도선이 인근 해상에 접근하는 일도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분쟁은 2000년대 들어 빈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분쟁의 수위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2010년 9월에는 센카쿠열도 인근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이 일본 순시선을 들이받고, 일본이 해당 어선을 나포하자 중국 전역에서 반일 시위가 일어났다. 중국 정부는 시위를 막기는커녕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보복했다. 최근 양국의 긴장이 높아진 직접적인 계기는 15일 홍콩 시민단체가 센카쿠열도에 상륙하면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국의 정치·경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성장한 민족주의가 밖으로 분출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중국이 영토 문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회주의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역으로 민족주의의 영향력이 커지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Global Issue] 뜨거워지는 '센카쿠' 분쟁…꿈틀대는 中·日 민족주의

#무능한 日정부가 극우파 키워

일본 내에서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일본의 우익단체 소속 의원 8명과 지방 의원, 유족 등 150여명은 19일 센카쿠열도에 ‘맞상륙’했다. 대표적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일본 정부가 “약체 외교로 중국에 아첨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고 비난하며 “도쿄도가 나서서 센카쿠열도를 매입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본 내 강경 기류는 일본 정부의 집권 기반이 허약한 것이 큰 원인이다. 최근 일본 정부는 내각 수반인 총리가 잇따라 단명하면서 외교 사안에서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취약한 정권 기반을 보완하기 위해 대외 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 결국 극우파 정치인들이 외교 문제를 이끌어가는 형국이 조성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응이 또다시 중국 측의 민족주의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일본 극우파의 맞상륙 이후 중국 25개 도시에서는 반일 집회가 열렸다. 센카쿠열도 문제의 해결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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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둘러싼 한·일 갈등 '고조' … 냉각기 오래 갈듯

“보복 카드를 가능한한 많이 준비하라. 다만 행동은 한국의 대응을 보아가며 하자.”

일본 정부가 지난 21일 노다 요시히코 총리 주재로 각료회의를 열고 결정한 공식적인 행동지침이다. 노다 총리는 이날 각 부처가 마련해온 ‘보복카드’를 면밀히 검토했다. 한·일 통화스와프(금융위기 때 통화교환) 규모 축소 등 경제 보복 조치는 유보했다. 하지만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자고 제안하는 방안은 확정해 공식 외교서한을 전달했다. 그리고 장·차관 등 각료급 회담을 무기한 중단시켰다.

이 같은 지침은 즉각적인 보복 조치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한국 측과의 정례적인 외교 접촉을 중단하고 독도 문제를 장기화해 일종의 ‘냉전’에 들어가겠다는 전략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당사자인 두 나라가 모두 재판을 받는 데 찬성해야만 절차가 진행된다. 한국 측의 추가적인 반응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될 수 밖에 없다.

일본 내 여론은 강경일변도다. 대표적 친한파 의원으로 꼽히는 마에하라 세이지 민주당 정조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죄요구 발언은) 무례하기 짝이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중에 한일관계를 우호적으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극우파 정치인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아예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 방문에 이어 “일왕이 한국에 오려면 먼저 사과해야한다”고 발언하면서 여론이 크게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영토와 일왕이 동시에 공격받으면서 최근 들어 싹트고 있는 ‘민족주의’ 정서를 한껏 자극한 셈이 되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