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 우려로 잔뜩 움츠려있던 글로벌 금융시장에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경기회복 지연 등으로 그간 전 세계의 돈은 안전자산으로 몰렸다. 채권 인기의 급상승으로 미국 국채 금리는 역사상 최저점을 경신하기도 했다. 최근 돈의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단초는 선진국 채권 금리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선진국 국채 금리가 상승세로 전환했다. 채권은 인기가 많으면 가격(가치)이 상승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락한다. 채권의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채권 값이 오르면 금리는 내려간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유럽 중앙은행(ECB)과 미국 중앙은행(Fed)이 조만간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감에 투자자들의 위험 감수 성향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Focus] 글로벌 자금, 채권서 증시로…일시적? or 추세전환?
#글로벌 증시 낙관론 고개

지금까지 유럽 증시의 발목을 잡아온 건 헤지펀드들의 공매도였다. 앞으로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주식을 빌려 미리 고가에 매도한 뒤 예상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싼 가격에 다시 사들여 빌린 주식을 갚아 차익을 얻는 방식이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취약국들이 주가가 폭락할 때마다 공매도를 금지해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블룸버그통신은 헤지펀드들이 2009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공매도했던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쇼트커버링’에 나섰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범유럽지수인 유로스톡스600지수 편입 종목 중 빌린 주식으로 이뤄지는 거래의 비중은 지난 5월 3.4%에서 최근 2.9%로 줄어들었다.

헤지펀드들이 쇼트커버링에 나섰다는 건 더 이상 주가가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정치인들과 중앙은행들이 위기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다음달 6일 ECB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스페인 이탈리아의 국채를 매입할 수 있다”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발언을 지지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ECB가 국채를 매입하면 국채금리가 낮아져 자금조달이 쉬워진다. 벤 버냉키 Fed 의장은 최근 강력한 경기부양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부실기업채권 정크본드도 인기

주식뿐 아니라 투기등급 기업채권인 ‘정크본드’에 까지 돈이 몰리고 있다. 바클레이즈 고수익채권지수에 따르면 투기등급 회사채인 정크본드의 평균 금리가 연 6.6%까지 하락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이는 사상 최저치에 가깝다.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정크본드 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정크본드 금리는 대개 연 10%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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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분석업체 코버넌트리뷰의 애덤 코언 회장은 “재무상태가 취약한 기업들이 연 4~5%대 금리에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며 “이는 과거 엑슨모빌, 펩시 등 우량기업들에나 가능했던 금리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상황이 좋아지자 투기등급 기업들은 앞다퉈 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최근 추세대로라면 올해 정크본드 펀드엔 사상 최대 자금이 몰릴 전망이라고 NYT는 전했다.

#국채 인기 꼭지 찍었나

반면 그동안 안전자산으로 인기를 모았던 국채에 대한 투자 열기는 식어가고 있다. ECB가 지난달 금리를 인하한 것을 계기로 독일에 이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덴마크 등의 2년 이하 단기 국채 금리가 차례로 마이너스권으로 진입했지만 최근에는 “채권시장이 꼭짓점을 찍은 게 아니냐”는 버블론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기 시작한 건 독일 국채(분트)다. 독일이 스페인 등 취약국에 대한 구제금융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취약국들을 돕기 위해선 독일이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분트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기관투자가들은 이미 분트를 매각하기 시작했다. 메릴린치 웰스매니지먼트의 요하네스 주스트 수석전략가는 “제로 금리 국채에 투자하는 것에 회의적”이라며 “작년 말부터 포트폴리오에서 분트 비중을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채권시장 큰손인 피델리티, 핌코, BNP파리바 등도 분트 매각에 나섰다.

#"장기투자땐 주식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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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도 주식투자를 권유하고 나섰다. 인덱스펀드 창시자인 존 보글 전 뱅가드그룹 회장은 “앞으로 10년간 채권시장은 끔찍할 것(terrible)”이라며 “장기 투자자라면 주식을 보유해야 다른 어떤 대체자산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글은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자들이 안전한 국채에만 몰린 데다 중앙은행들이 경쟁적으로 금리를 인하한 탓에 채권 가격이 치솟았다”고 경고했다. 채권시장이 꼭지를 찍고 내려올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주식투자의 종말을 선언했던 ‘채권왕’ 빌 그로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도 한발 물러섰다. 그는 이달 초 미국 경제전문채널인 CNBC와의 인터뷰에서 “주식시장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단지 지난 20~30년간 두 자릿수의 수익을 올리는 데 익숙해진 투자자에게 그런 것은 이제 과거의 일이라는 점을 지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남윤선 한국경제신문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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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자산 金 인기 '시들'…전세계 2분기 수요 7% 감소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던 금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세계금위원회(WGC)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올 2분기 세계 금 수요가 990t으로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금 수요가 감소한 주된 이유는 전 세계 금 수요의 절반가량(45%)을 차지하는 인도와 중국의 수요가 부진했던 탓이다. 금 수요 1위국인 인도는 4~6월 181.3t을 사들여 전년 동기 대비 25% 감소했다. 중국도 같은 기간 7% 감소한 144.9t을 사들이는 데 그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도와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를 금 수요가 감소한 주된 배경으로 분석했다. 최근 1년간 인도 루피화 가치가 달러 대비 25%가량 떨어지면서 인도의 구매력이 감소한 것도 한 이유다. 투자 목적의 금 수요가 23% 줄어들어 감소폭이 가장 컸다.
[Focus] 글로벌 자금, 채권서 증시로…일시적? or 추세전환?
경기침체로 물가가 안정세를 나타내면서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한 금 투자의 장점이 희석되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 투자자들의 성향이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금값 하락의 이유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중장기적으로는 금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와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인 존 폴슨은 금 투자를 늘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폴슨은 세계 최대 금 상장지수펀드(ETF)인 ‘SPDR 골드트러스트’ 보유주식을 2분기에 2180만주로 늘렸다. 전 분기 대비 26% 증가한 것이다. 작년 1분기 해당 자산을 대부분 처분했던 소로스도 1분기 31만주였던 보유주식을 88만주로 2배 이상 늘리며 금값 상승에 베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