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74) 승자도 때로는 불행해진다
경쟁이 일상화돼 버린 현대사회에서 승리와 패배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때로는 승자가 패자가 되고, 패자도 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이 경쟁이고 인생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아동문학작가 마이클 모퍼고(Michael Morpurgo)의 소설 ‘워 호스(War Horse)’에는 패자가 될 뻔했던 승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14년 어느 날, 주인공 앨버트가 사는 마을에 조이라는 이름의 경주마가 태어난다. 조이의 탄생을 지켜보던 앨버트는 가난한 처지의 자신은 평생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경주마 조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얼마 후 소작농인 앨버트의 아버지 테드가 밭을 갈 쟁기를 끄는 말을 사기 위해 마시장의 경매에 참여한다. 테드는 그곳에서 조이를 보게 되고, 아들 앨버트와 마찬가지로 첫눈에 반해버린다. 테드의 친구는 조이 대신 다리가 굵고 힘이 좋은 농사에 적합한 말을 살 것을 권유하지만, 테드는 조이의 거칠고 야성미 넘치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다.

분수 넘치는 경매에 참여

조이가 경매에 부쳐지자 테드는 호기롭게 가장 먼저 값을 부른다. 이때 또 한명의 사나이가 경매에 뛰어든다. 테드가 농사짓고 있는 땅의 지주인 라이온스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지주를 한번 이겨보고 싶은 테드는 친구의 만류에도 그와 경쟁을 펼친다. 1기니(guinea·영국의 옛 화폐단위)에서 시작된 경매는 농사짓는 말에게는 최고 가격인 11기니를 넘어서도 계속된다. 마침내 라이온스가 25기니를 부르자 사람들은 지주에게 터무니없는 돈을 쓰게 한 테드를 멋지다며 되레 칭찬한다. 하지만 그 순간 테드가 30기니로 맞받아친다. 조이를 가지고 싶고, 라이온스를 이기고 싶은 마음에 테드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을 부른 것이다. 예상치 못한 테드의 입찰에 주위는 조용해졌고 조이는 테드에게 낙찰된다.

사람들은 경매에서 승리한 테드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지만, 그의 친구는 무슨 짓을 한 것이냐며 테드를 닦달한다. 경매인으로부터 조이를 건네받은 테드의 모습에서도 승자의 환희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깨가 축 처진 것이 패자에 가까운 모습이다. 차라리 테드에게 모자를 벗어 조롱하듯 경의를 표하는 지주의 표정에서 승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온 테드는 농사를 짓기 위해 조이에게 쟁기를 씌워 땅을 개간하려 하지만 황량한 땅을 개간하기에는 조이의 발목은 너무 가늘고 힘이 없어 보인다. 지주는 고집불통 테드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며 조롱하고, 테드의 부인조차 조이를 돈으로 물러오라고 몰아세운다. 테드는 괜한 객기를 부려 농사도 짓지 못하는 말에게 지나친 돈을 지불한 꼴이 되어버렸다.

경매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상품을 낙찰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과도하게 비용을 지불해 사후적으로 승자가 손해를 보거나 곤경에 빠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또한 상품의 실제 가치보다 가격을 높게 부르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대했던 것만큼 이익이 발생하지 않아 승자가 상실감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가리켜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한다.

'승자의 저주'부른 낙찰

승자의 저주는 미국 석유회사 엔지니어인 케이펜, 클랩, 캠벨 등이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멕시코만에서의 석유 시추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석유회사들은 이곳에서의 석유 시추가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하며 막대한 자금을 들여 채굴권을 따내기 위해 열을 올렸다. 하지만 시추가 진행돼도 기대했던 만큼의 수익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가장 높은 금액으로 입찰에 응한 기업이 비록 채굴권은 따냈지만 결과적으로는 막심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여 쟁취한 승리가 저주로 끝난 셈이다.

케이펜과 동료들은 석유 채굴권 경매에서 발생한 이와 같은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들은 석유 시추 기술이 부족했던 당시의 상황에 집중하였다.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석유가 어느 곳에 매장되어 있고, 또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측정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기업들이 예상한 석유매장량은 실제와 다를 수밖에 없다. 평균적으로는 석유회사들의 예상치가 실제 매장량에 상당히 근접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경매에서 승리한 회사의 예상치가 과대평가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비록 경매에서 승리는 하였지만, 실제로 시추하여 얻게 되는 이익은 경매에 들어간 비용을 한참 밑도는 수준에 그쳤던 것이다.

소설 ‘워 호스’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조이는 처음에는 쟁기를 쓰는 것조차 거부했지만 결국에는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하는 데 성공한다. 앨버트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훈련시킨 덕도 있지만, 조이는 태어날 때부터 훌륭한 쟁기말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테드가 조이의 능력을 처음부터 알아본 것이고, 결코 입찰에서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결국 테드는 애초부터 승자였던 셈이다.

승자의 저주는 처음에는 경매의 승자가 손해를 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M&A와 같이 다양한 사회적인 현상에도 적용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경쟁에서 승리하고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M&A를 시도하고 있다.

성공적인 M&A로 한 단계 도약하는 기업도 있지만, 때로는 기업의 운명에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는 것이 M&A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인수대금 지불 문제로 자금줄이 막혀 워크아웃 절차에 들어갔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시장은 금호그룹이 승자의 저주에 빠져들었다고 평가하였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74) 승자도 때로는 불행해진다
양날의 칼과 같은'M&A'


이와 같이 M&A는 양날의 검과 같다. 성공하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잘못하면 관련자 모두 휘청거리게 될 수도 있다. M&A를 시도하는 기업들이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테드와 같은 안목이 필요하다. 인수하려는 기업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고 그에 맞는 인수대금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잘 살피고, 기업의 자금여력은 충분한지도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승자의 저주 (Winner's Curse)

치열한 경쟁 속에 승리를 쟁취했지만 그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을 지불해 위험에 빠지거나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말한다. 승자의 저주는 경매에서 주로 사용되는 말로, 입찰가격을 너무 높게 불렀거나 취득한 재화로부터 얻은 이익이 예상보다 낮은 경우가 승자의 저주에 해당한다. 무리한 확장정책을 펼친 도요타와 지나친 M&A로 워크아웃을 경험한 금호그룹이 대표적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