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票心 노린 '대기업 때리기'…경제성장 발목잡나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논란이 뜨겁다. 경제민주화는 우월한 지위를 가진 대기업 집단(그룹)이 부당한 방법으로 이익을 얻는 것을 방지하자는 게 기본 취지다. 이른바 ‘재벌’의 경제력 집중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을 막자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 모두 대선을 앞두고 경제적 효과보다는 정치적 목적에서 경제민주화에 접근하면서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정치권, "지배구조 바꿔라"

새누리당 의원들이 지난 5일 발의한 순환출자 규제법이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적 경제민주화 법안이다. 이 법안은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주식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순환출자란 A사는 B사, B사는 C사, C사는 A사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즉 A→B→C→A의 순환고리가 형성되는 투자 방식이다. 새누리당은 이 중 C→A의 순환고리를 끊도록 요구하고 있다. 민주통합당도 비슷하다. 신규 순환출자는 전면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는 3년 내 해소해야 하며 해소하지 못할 경우 해당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게 민주당의 당론이다. 여야 모두 순환출자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19대 국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순환출자 규제가 입법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이 이처럼 순환출자 규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룹 총수들이 순환출자를 통해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면서 경제력 집중,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순환출자 규제법을 대표 발의한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은 “1565개 대기업 계열사 중 86.2%가 총수 지분이 하나도 없고 주요 계열사 지분도 1%를 못 넘는데 (총수가)지배하고 있어 이를 정상화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 "투자·고용 위축"

하지만 순환출자 규제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따른다. 우선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게 되면 적은 지분을 가진 그룹 총수가 계열사를 지배하기가 어려워진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이는 경영권 위협이 커지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주요 계열사가 이 같은 위협에 노출되면 문제가 커지게 된다.

만약 그룹 총수 등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식을 매입하려면 막대한 돈이 들고 그만큼 투자에 쓸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 현대차그룹의 경우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데 드는 비용은 최소 6조5000억원가량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정몽구 회장을 중심으로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 등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가 형성돼 있는데, 이 중 기아차가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과 현대제철이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한다고 가정한 금액이다.

물론 어느 고리를 끊느냐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 또 매각 차익에 대한 법인세까지 감안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이 같은 이유로 재계에선 순환출자 규제가 투자 위축과 고용 창출 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는 수단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굳이 지배구조까지 건드리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소유구조엔 정답없어"

문제는 최근 경제민주화가 과도하게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순환출자 규제의 경우도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소급입법이어서 위헌 소지가 있다. 국내 상법은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에 대해 계열사 간 직접적인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있지만 순환출자는 불법이 아니다. 그동안 허용됐던 대기업 집단의 순환출자까지 모두 규제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재계는 물론 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해외 현실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덴소, 아이신 등 계열 부품사뿐 아니라 도요타자동직기, 동화부동산 등과도 순환출자 상호출자를 하고 있다. 독일의 도이체방크그룹, 루이비통으로 유명한 프랑스 LVMH그룹, 인도 최대 재벌인 타타그룹, 대만 1위 기업인 포모사그룹도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주주들이 선택한 지배구조를 외부에서 선악을 따지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기업 소유구조엔 정답이 없다는 것이 경영학계의 정설”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의 경제민주화는 순환출자 문제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이미 횡령 배임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는 반드시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과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막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정치권은 여기에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강화하는 법안,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물리는 방안 등을 예고하고 있다.

재계에선 이 같은 규제가 일방적인 ‘대기업 때리기’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총수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아야 하고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는 잘못이지만 ‘재벌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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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票心 노린 '대기업 때리기'…경제성장 발목잡나

순환출자 규제땐 자산 5조 넘는 15곳 '직격탄'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발의한 순환출자 규제법이 시행에 들어가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그룹) 15곳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상호출자가 금지되는 63개 그룹 중 24%에 해당한다. 재계 1위 삼성그룹, 2위 현대·기아차그룹을 비롯해 현대중공업 한진 한화 동부 대림 현대 현대백화점 영풍 동양 현대산업개발 하이트진로 한라 등의 그룹이 대상이다. LG그룹과 SK그룹 등은 지주회사 체제여서 순환출자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6월 발표한 ‘2012년 대기업집단 주식 소유 현황 및 소유 지분도 분석 결과’를 보면 이들 15개 그룹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출자 구조가 형성돼 있다. 또 모두 그룹 총수가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측이 “총수가 적은 지분을 가지고 여러 기업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대표적이다.

순환출자 해소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재계 전문 사이트인 ‘재벌닷컴’은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해소 비용은 4조3290억원, 현대·기아차그룹은 6조860억원이라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구소도 최근 순환출자가 존재하는 그룹 15곳이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매각해야 할 지분 가치를 9조6000억원 정도로 추정했다. 현대차가 6조166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현대중공업(1조5763억원), 삼성(1조2185억원)의 순이었다. 하지만 모 대기업 관계자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주식 추가 매입,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험도 상승 등 간접 비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런 부분을 감안하면 최소 십수조원 이상이 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