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서울대, 없애야 할까요
"대학 서열화·학벌 사회 없애려면 불가피"


"오히려 일류대학이 더 많이 나오게 해야"

서울대 폐지론이 또다시 등장했다.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이 이달 초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2017년까지 서울대라는 명침을 없애고 전국 주요 국립대학을 서울대 캠퍼스로 만들겠다”고 밝히면서 본격화됐다. 이 정책위의장은 이후 “언론이 앞서 갔다” “지방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국립대학 연합체제 구축 방안”이라며 한발 물러났지만 서울대 폐지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서울대를 없애자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6년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제기한 이래 많은 지식인과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등이 이 문제를 들고 나왔었다. 서울대 폐지론의 근거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가 학벌문제라는 데서 시작한다. 명문대 간판을 따기 위해 거의 전 국민이 비정상적인 교육 열풍에 매달려 있고 이것이 결국 사회 전체를 병들게 만드는데 그 맨 꼭대기에 서울대가 있다는 것이다. 학벌과 간판이 우선시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서울대를 폐지하는 것이 이런 부작용을 없애는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서울대 폐지를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학벌과 간판을 중시하는 관행을 없애려면 대학서열화와 줄세우기를 없애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서울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대 국회의원 중 26%, 행정기관 국장급 이상 1~3급 고위 공무원단 중 29%, 그리고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 중 34%가 서울대 출신인데 사회 각 분야 최고 결정권을 갖고 있는 이의 3분의 1이 한 대학 출신인 셈이다. 미국의 경우 상원의원과 최고경영자의 출신 대학 중 가장 많은 학교 비중이 10%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지나치다는 분석이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해 한 줄로 서 있는 대학 서열체제는 대한민국 교육 폐해의 상징적 시스템”이라며 “과도한 입시경쟁 등을 양산해 온 이 같은 대학체제의 개혁 없이 우리나라 교육혁신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구상 중인 안은 프랑스 파리 1~13대학 처럼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들이 공동의 입학전형을 실시하고 공동학위를 따도록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국립대 서울캠퍼스, 경북캠퍼스 등으로 하자는 것이다.

권영길 통합진보당 전 국회의원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되려면 학벌 없는 사회가 돼야 하고, 대학의 서열화를 폐지하려면 국가재정으로 대학을 운영해야 한다. 그래서 나온 공약이 서울대 폐지”라며 “서울대 폐지야말로 서민이 주인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서울대 존치론은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학벌사회, 인재의 과도한 집중으로 인한 폐해를 그대로 두자는 논리와 뭐가 다르냐. 서울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이다. 국가 차원에서 우리나라 전체의 대학경쟁력 강화와 국가발전을 위해 서울대 학부 폐지는 얼마든지 검토돼야 할 사안”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반대

반대론자들은 서울대를 폐지한다고 학벌 위주 사회의 병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울대가 없어진다고해도 명문 사립대로 불리는 대학들이 있고 이들 대학과 다른 대학들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데 서울대만 달랑 없앤다고 대학 서열화가 없어진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서울대뿐 아니라 모든 대학이 같은 수준이 될 때까지 상위권 대학을 계속 없애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이는 말이 안된다는 지적이다.

함인석 경북대 총장은 “전체 국립대 가운데 서울대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 편중현상이 심각하다. 일례로 서울대는 정원의 130%에 가까운 교수들을 충원하는 데 반해 경북대는 70% 수준에 그친다”며 “서울대 해체보다 각 지역 거점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지원을 보장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벤치마킹 모델로 삼는 프랑스의 경우 대학 평준화를 시도했다가 대학들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수월성 중심 교육으로 체질개선에 나선 점을 들어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대학서열화는 관습적ㆍ문화적ㆍ사회적 차원이 얽힌 복잡한 문제다. 문제해법을 신자유시장적 경쟁논리 극복으로만 보는 것은 단순논리에 갇힐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반대 입장의 한 누리꾼은 “한국이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대학과 기업이 몇 개 안 된다. 솔직히 말해 겨우 삼성 현대 서울대 정도 아닌가. 서울대를 없앨 것이 아니라 그런 일류대학이 더 많이 나오게 해야 한다. 차라리 지역의 경쟁력 있는 대학을 국가가 집중적으로 지원해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국가와 지역발전을 위해 더 도움되는 일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생각하기

서울대 폐지론은 “서울대는 만악(萬惡)의 근원이니 당장 없애 버려야 한다”거나 “서울대를 없애려는 자들은 나라를 망치려는 세력”이라는 등 감정적이며 비논리적으로 치우친 점이 적지 않았다. 이 논의가 1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서울대, 없애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서울대 폐지와 학벌사회 병폐 근절을 과연 같은 차원에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울대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다. 법인화도 그래서 진행된 것이고 법인화 이후에도 여전히 과제가 산적하다. 하지만 서울대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과 서울대를 없애면 학벌 지상주의가 근절될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별개 이야기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학벌 지상주의 풍조는 분명히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서울대를 없앤다고 이런 풍조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는 것 또한 분명하다. 국내에는 KAIST 포스텍 등 서울대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춘 대학들도 있다.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논리라면 이들 대학 역시 우수하다는 이유만으로, 입시과열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없애야만 한다. 서울대 폐지와 학벌 사회의 병폐를 없애는 작업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