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급등하는 곡물가격…4년전 식량파동 재연되나
글로벌 식량파동 우려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주요 곡창지대인 미국과 러시아 등에서 가뭄 등 기상이변으로 곡물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서 옥수수 밀 등 주요 곡물 가격이 연중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이른 시일 내에 곡물가를 안정시키지 못하면 자칫 곡물 가격이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촉발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agriculture+inflation)뿐 아니라 2007~2008년 제3세계 국가들을 덮쳤던 식량파동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곡물값 급등으로 개발도상국에선 지난해 ‘아랍의 봄’과 같은 정치 불안이 확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밀·옥수수값 한달새 40% 급등

지난 18일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서 12월 인도분 옥수수 선물 가격은 부셸당 7.84달러를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인 지난해 6월의 7.99달러에 근접했다. 지난달 15일 부셸당 5.10달러에서 한 달 사이 가격이 45%가량 급등했다. 밀과 콩 가격도 오르고 있다. 9월 인도분 밀 가격은 부셸당 8.85달러로 10개월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밀 가격 역시 한 달 만에 40%가량 뛰었다. 11월 인도분 콩 가격도 16달러에 근접하며 6월 초에 비해 20%가량 상승했다.

곡물값 급등은 주요 생산국의 올해 작황 부진 탓이다. 옥수수 콩 밀의 최대 수출국인 미국은 이상고온과 가뭄으로 올해 농산물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미 농무부는 올해 미국 옥수수 경작지 1에이커(4046㎡)당 수확량 예측치를 146부셸로 지난달보다 20부셸 낮췄다. 하향 조정폭(12%)은 농무부 집계 사상 최대다. 옥수수 재고량도 이전 예측치보다 37% 하향한 11억8300만부셸로 잡았다. 러시아 농림부는 건조한 기후로 올해 국내 밀 생산이 전년보다 9.6%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질도 좋지 않다.

옥수수와 콩은 식품뿐 아니라 가축 사료로도 쓰인다. 곡물 가격 상승이 육류 등 식료품 가격 전반에 파장을 미치는 구조다. 때문에 2007~2008년 세계를 강타했던 식량대란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또 옥수수와 콩은 바이오에너지의 원료로 쓰이는 만큼 에너지값 상승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옥수수와 콩에 비해 신흥국의 주식인 쌀과 밀은 아직 폭등 수준은 아니지만 이상기후가 지속되면 가격이 뛸 가능성이 있다. 제프리 커리 골드만삭스 원자재 담당 수석 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콩 가격이 오르면서 중국에서 식품 물가가 치솟았다”고 지적했다.

#온난화 따른 이상기후 영향

최근 세계 각국은 이상고온과 가뭄 같은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런던올림픽 개막을 앞둔 영국은 연일 기록적인 폭우로 올림픽 관련 각종 행사와 공연이 취소됐다. 지난달 영국의 강우량은 145.3㎜로 1910년 이래 6월 강수량으론 최대였다. 일본 남부 규슈지역도 지난 12일부터 800㎜ 넘는 폭우가 쏟아졌고 비가 그친 후에는 이상고온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중국 광둥(廣東)성 등 남부 9개 성에선 지난달부터 시작된 집중호우로 70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반면 중국 내륙지역은 5월 말 이후 두 달 가까이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 기상센터와 미국 해양대기청은 공동 보고서에서 “미국의 이상고온과 가뭄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이상기후는 7월부터 9월 사이 발달할 엘니뇨의 전조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엘니뇨는 중부 및 동부 적도대의 태평양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으로 기상이변을 야기한다. FT는 “올해 대규모 엘니뇨가 발생하면 2007~2008년 아르헨티나와 호주를 강타한 가뭄처럼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상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Global Issue] 급등하는 곡물가격…4년전 식량파동 재연되나

#국내 물가 오를까 전전긍긍

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기상 상황이 앞으로도 미국 옥수수·콩 작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돼 국제곡물 가격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세계적 곡물 가격 인상이 국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도록 수입 콩의 정부 판매가를 ㎏당 1020원으로 고정하고 밀과 옥수수의 할당관세를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밀 자급률을 2015년까지 10%로 확대하기 위해 군 급식용 수입 밀 9000여t을 우리 밀로 공급하는 방안을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 농협 매장 내 우리 밀 제빵코너인 ‘빵굽는 마을’을 연내 3개에서 80개로 확대하고 내년에는 주정용 우리 밀 2만5000t을 공급할 방침이다. 또 올해 국산콩 14만t을 생산하기 위해 재배면적을 7만2000㏊로 늘릴 계획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업체들이 가격 상승 전 국제곡물 4~5개월분을 확보했기 때문에 하반기에 수급 불안이 없겠지만 내년 초에는 물가가 오를 것”이라며 “사료 원료용 옥수수의 할당관세를 계속 적용하고 밀은 필요하면 할당관세를 인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윤선 한국경제신문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