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인 ‘demokratia’는 ‘국민’을 의미하는 ‘demos’와 ‘지배’를 뜻하는 ‘kratos’가 합쳐진 단어다. 바로 이것이 민주주주(democracy)의 어원이며, 민주주의가 ‘국민의 지배’를 의미한다고 해석되는 이유다. 국민의 지배는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힘과 권리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참정권으로 표현된다. 대의 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투표권이 나라를 운영하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된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민주국가가 대의 민주제(간접 민주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태동한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제였다.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가 비합법적으로 독재 권력을 잡은 참주(tyrant)를 몰아내고 모든 시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민주제를 도입했다. 직접 민주제란 모든 국민이 참여하여 토론함으로써 한 나라의 정책을 직접 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대의민주주의와 정보의 비대칭성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경제가 성장해갔고, 인구 규모가 점차 커졌다. 이에 따라 논의해야 할 문제들이 늘어났으며, 모든 사람이 모여서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편익보다 더 큰 비용을 수반하게 되었다. 비용-편익 분석에 기초한 경제적 문제가 대의 민주제를 탄생시키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의사결정을 대신해줄 대표자를 뽑아 그들에게 우리의 결정권을 위임함으로써 의사결정의 비용을 현저히 감소시키는 기막힌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주인 무시하는 대리인의 변심

기막힌 작전이 먹혀들어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크게 개선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선거가 끝나면 늘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표자, 우리 의사를 위임받은 대리인들이 선거공약을 공염불로 만들면서 주인인 우리의 의사를 무시하는 행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대리인들의 감추어진 행동이 드러나면서 이른바 ‘주인-대리인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대리인이 변심했다며 그들의 도덕성만을 가지고 비난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경제학에서 주인-대리인 문제의 본질은 도덕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기인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본질상 주인-대리인 문제가 상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계약관계에서 권한을 위임하는 사람을 주인(principal)이라고 하며 권한을 위임받는 사람을 대리인(agent)이라고 한다. 주인은 대리인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면서 주인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약속받고 그에 따른 보상 계약을 맺는다. 문제는 대리인의 최선 노력 여부를 주인이 파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것은 대리인의 감추어진 행동이나 감추어진 노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리인이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대해 대리인 자신은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주인은 그렇지 않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 미래의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문제는 정말 모호해진다.

정보의 비대칭과 도덕적 해이

정치인 A가 복지를 확충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이 되었는데, 임기를 마칠 즈음에 복지수준이 악화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A의 임기 중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경제가 위축되고 나라 전체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면, 복지수준의 악화가 A의 노력 부족에서 온 것인지, 불확실한 미래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미래 불확실성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대리인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주인 모르게 그럴듯한 변명의 기회를 얻는다. 이는 이기적 인간이라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유인이 누구에게나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모습을 경제학에서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고 한다. 주인-대리인 문제란 이와 같은 도덕적 해이 현상을 일반적인 경우로 확대시켜 나타낸 것이다.

대리인이라면 누구나 ‘숨겨진 행동과 노력’을 이용할 유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어느 누가 정치를 하더라도 정치인 A와 같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다시 말해 대리인 입장에서 도덕적 해이는 주어진 환경(제약조건)에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한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행동이지 도덕성의 문제와 무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정치인들이 매번 공약을 무시하는데도 합리적 선택의 결과물이라며 마냥 놓아둘 수는 없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록 합리적 선택일지라도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사라지도록 정치인을 완벽히 모니터링하는 것인데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유인 제약'이 차선의 방책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대의민주주의와 정보의 비대칭성
따라서 차선의 방책으로 정치인들이 대리인의 임무를 더 잘하도록 유인제약을 잘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회사라면 대리인인 근로자가 더 노력하도록 기본급을 낮추고 성과 보너스를 지급하거나, 시장 임금보다 높은 수준에서 효율임금을 지급함으로써 위험을 분담한다. 정치인에게 성과 보너스란 다음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공약집을 제시하고 다음 선거에서 공약 달성률에 따라 공천이나 선거에 가점을 주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대리인에게 유인을 제공한다는 것은 정보가 완전할 경우와 비교해서 주인이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이다. 유인제약을 만들어 주인-대리인 문제를 완화하는 것을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차성훈 <KDI 전문연구원 econcha@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주인- 대리인 문제

계약관계에서 권한을 위임하는 사람을 주인(principal)이라고 하며 권한을 위임받는 사람을 대리인(agent)이라고 한다. 이때 주인은 대리인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면서 주인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약속받고 그에 따른 보상을 해주기로 계약을 맺지만,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대리인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효율성이 달성되지 않는 문제로 이러한 모습을 경제학에서는 도덕적 해이라고 부름.